해상풍력발전. 자료사진최근 인천 앞바다에서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국내·외 업체들이 사업 추진을 위한 법적 조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않았는 데도 허가를 내주는 등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특혜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의 논란은 관할기관이 제대로 어민이나 주민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 추진을 허가해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어민들이 사업 추진에 대해 직접 반대를 해도 이를 무시하고 허가를 내줘 '초법적 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옹진군이 주민간 싸움 부추겨"…인천 섬 어민들, 항의서한 제출
인천 옹진군 자월면 주민과 어민들로 구성된 '자월면 해상풍력사업 어민협의회'는 최근 옹진군에 "해상풍력사업 찬성 서명부 회수 및 지역갈등 재발방지 요청"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냈다.
이들은 이 문서를 통해 인근 해상에서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한 업체가 발전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 주민들로부터 '사업 찬성 서명부'를 받으면서 허위 사실 유포 등을 통해 주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옹진군에 사태 해결을 요구했다.
주민들이 문제를 삼은 업체는 덕적도와 자월도 서방 해상 등에서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5개 업체다. 서울과 경기, 부산, 강원, 세종 등 전국 각지에 본사를 둔 이들 업체는 최근 덕적도와 자월도 주민들에게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풍황계측기 설치를 동의해달라는 내용의 동의서를 받았다.
풍황계측기는 해당 지역이 풍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장비다. 풍량과 풍속, 풍향 등을 측정한다. 풍력발전의 사업성 평가와 실제 발전단지 건설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장비로, 풍력발전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계측결과를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어민들은 해당 5개 업체가 법적 권리자인 어민들이 풍황계측기 설치를 반대하자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주민들을 설득해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옹진군이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업체들이 주민 동의서를 받기 위해 해당 사업을 마치 정부가 지원할 것처럼 홍보하고, 이를 토대로 미성년자 혹은 실제 섬에 거주하지 않지만 주민등록상 주소를 섬에 둔 사람들에게 동의서를 받아 주민들끼리 다투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지원한다" 속여 동의서 받은 업체들
이 업체들은 자신들의 사업에 스페인과 프랑스가 합작한 에너지기업 '오션윈즈'가 1억달러(한화 1192억원)을 1차 투자한 뒤 2차로 8조원을 추가 투자하는 등 모두 8조 1192억원 규모를 투자한다고 홍보했다.
이들이 주민들에게 배포한 설명자료에는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이 스페인을 방문할 당시 인천 앞바다에 1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감사 표시를 해 국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는 문구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오션윈즈가 국내 바다에 해상풍력 발전사업 투자를 한다는 신고서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제출할 당시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참석해 "이번 투자 신고를 계기로 양 국간 재생에너지 상호 투자가 더욱 촉진되길 희망한다"며 지지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오션윈즈 측 업체들이 인천 덕적도와 자월도 주민 등에게 배포한 사업 설명자료. 문재인 대통령,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해당 사업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꾸며져 있다. 독자 제공국내업체 앞세워 해상풍력 발전사업 추진한 스페인기업
실제 이들 5개 업체의 지분 절반이 최근 오션윈즈로 옮겨졌다. 대표이사 등 임원들도 스페인과 프랑스인으로 교체됐다. 결국 해당 사업은 오션윈즈가 추진하지만 풍황계측기 설치 허가 작업은 국내 업체들을 내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업체들의 자본금 규모는 100만~5천만원으로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규모다.
어민들은 5개 업체들이 해당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우리 정부가 지지하는 사업인 것처럼 알리면서 주민 간 다툼이 벌어졌고 갈등의 원인을 옹진군이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들 업체는 옹진군으로부터 어민들의 동의서를 받아오라는 안내받고 어촌계 등 어민 단체와 접촉했지만 동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옹진군이 입장을 바꿔 주민동의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하자 섬 주민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동의서를 받았다. 이들 업체가 받은 주민 동의서는 전체 섬 주민의 4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월면 해상풍력사업 어민협의회 관계자는 "오션윈즈가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바다는 법정 꽃게어장이고, 섬에서 어업은 전체 경제활동의 절반을 넘는다"며 "지역 경제의 절반이 날라가게 됐는데 옹진군이 이해관계가 없는 일부 주민들의 서명을 받게 해 마치 어민들이 지역 이익을 반대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섬 주민의 절반인 어민들이 반대하지만 풍황계측기 설치 단계에서 주민 30%나 찬성했으니 허가를 내주고 발전사업 허가 단계에서는 주민 절반 가량이 동의했다며 허가를 내줄거냐"며 "근본 문제는 외면할 꼴"이라고 강조했다.
어민들 "'묻지마 허가'하던 옹진군, 이번엔 초법적 허가 유도"
그동안 옹진군은 인천 앞바다에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업체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옹진군이 이미 풍황계측기 설치를 승인했던 남동발전과 씨앤아이레저산업, 덴마크 기업 오스테드코리아 홀딩A/S한테는 어민이나 주민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옹진군이 풍황계측기 설치를 허가했던 이들 기업은 산업통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로부터 심의 보류 등으로 사업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어민들은 옹진군이 그동안 '묻지마 허가'로 기업들에게 특혜를 줬다면 이번에는 법적 기준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허가를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옹진군도 이같은 비판에 동의했다. 다만 당시에는 이같은 기준을 충족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지금은 반드시 어민과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인지했기 때문에 각 업체에게 주민동의서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항로표지 신청인 줄 알았다" 계측기 허가한 인천해수청도 문제
어민들은 옹진군뿐만 아니라 인천지방 해양수산청도 법적 절차를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앞서 인천해수청은 지난해 말 오션윈즈의 해상풍력 발전사업 구역 가운데 배타적경제수역 부분의 풍황계측기 설치 실시계획인가를 내줬다.
오션윈즈 측 업체는 당시 인천해수청에 풍황계측기 설치가 아닌 '사설 항로표지 설치' 허가를 명목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서류는 사설 항로표지 설치 허가서 양식을 따랐지만 설치 도면은 풍황계측기 도면이 담겨 있었다. 항로표지는 등광·색채·음향·전파 등으로 선박의 현재 위치와 장애물 위치 등을 알려주는 항행보조시설이다. 업체들은 해당 해역에 해양관측 등부표를 설치하겠다고 신고했다.
어민들은 당시 오션윈즈 측이 풍황계측기 설치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해당 계측기 실시계획인가 고시도 통상적인 온라인 고시가 아닌 관보 고시로 이뤄져 이같은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관보는 어떤 결정에 대한 요약본 형식으로 작성된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전문은 별도 고시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관보만으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인천해수청 측은 해당 풍황계측기가 항로표지 기능을 갖추고 있어 사설 항로표지 허가 신청을 받아들였고 이의가 없어 허가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인천해수청이 이같은 꼼수를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있다. 어민들은 해당 행정에 대해 감사 청구 등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오션윈즈 측 업체들이 제출한 풍황계측기 설치 허가 신청에 대해 관계기관에게 보낸 의견 조회 공문. 공문 제목에 풍황계측기가 아닌 '사설항로표지' 설치 허가 신청이라고 적혀 있으며, 설치 내용도 '해양관측등부표'라고 기재돼 있다.옹진군 "어민도 주민의 일부분…문제 없을 것" 해명
이번 반발은 오션윈즈 측이 꽃게어장에 풍황계측기 설치를 신청한 것에 대해 인천해수청에 이어 옹진군마저도 '이상한' 방식으로 허가할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불거진 것으로 풀이된다. 먼바다의 계측기 설치가 허가된 만큼 앞바다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옹진군은 지역 반발을 사전에 잠재우기 위해 당초 법적 기준보다 높은 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이 풍황계측기 설치 시에는 직접 이해당사자인 '어민'의 동의를 의무화하고, 해상풍력 발전사업 추진시에는 '주민' 동의를 의무화하는 만큼 계측기 설치 단계서부터 '주민 동의'를 받는 것으로 내부 지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어민도 주민의 일부여서 주민이 동의하면 그 중에 어민도 포함됐을 거라고 판단했다"며 "관련 업체를 불러 대화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고 있어 더 이상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