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로비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시초가를 확인한 뒤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주주 손해가 큽니다. 대주주만 이득 보는 분할 상장을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됩니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뜨거운 관심 속에서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첫 날인 지난달 27일 공모주 매도로 차익을 실현한 투자자들은 "명절 소고기 값을 벌었다"고 환호한 반면, 모회사인 LG화학 온라인 종목 토론방에는 이처럼 분통을 터뜨리는 주주들의 글이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LG제품은 사지 않겠다" 등의 불매 글도 많았다.
기업공개(IPO) 사상 최대어로 주목받아 온 LG엔솔 상장 흥행의 명과 암이 대조되는 장면이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가속화 기류와 맞물린 국내 증시 하락장 속에서도 LG엔솔은 화려하게 데뷔하며 코스피 시총 2위 기업으로 단숨에 올라섰지만, 그 이면의 후유증도 '역대급'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LG엔솔 흥행' 그림자…母기업 'LG화학' 주가 추락
LG에너지솔루션. 연합뉴스LG엔솔은 지난 2020년 10월 LG화학의 전지사업본부 분사 확정으로 그해 12월 물적 분할돼 설립된 LG그룹의 배터리 사업 법인이다. '배터리 대장주'로 각광받던 LG화학에서 알짜사업 부문을 떼어내 만든 회사로, 분할 결정 때 개인주주들은 반발했지만 이들의 지분율은 10%에 불과해 힘을 받지 못했다. 마찬가지의 지분율을 확보했던 국민연금도 반대의사를 표했지만, 오너 일가와 외국인·기관의 힘에 밀렸다.
당시 소액주주들의 주된 반발 원인이었던 '앙꼬 빠진 LG화학의 가치하락'은 현실화 됐다. 지난해 1월14일 장중 105만원까지 올랐던 LG화학의 주가는 긴 시간 추세 하락기를 이어왔다. LG엔솔이 상장 전 국내외 기관 수요예측과 공모주 일반 청약 과정에서 역대 기록들을 줄줄이 갈아치운 지난달 둘째 주와 셋째 주 LG화학 주가는 두드러진 낙폭을 보였고, 상장일에는 장중 60만5000원까지 밀리면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고점 대비 40% 넘게 하락한 가격이다.
반면 LG엔솔은 이날 시초가 대비 하락하긴 했지만, 공모가 30만 원 대비 68% 이상 주가가 뛰었고 종가기준 시가총액은 118조 1700억 원을 기록해 삼성전자(425조 6455억 원)에 이은 코스피 시총 2위에 안착했다.
LG화학 주주들 사이에서 "대주주 잔치에 개미들은 독박을 썼다", "LG엔솔 시총이 모회사의 2배를 넘어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한탄이 나온 배경이다. 이런 와중에 그룹 내부에선 우리사주를 받은 LG엔솔 직원들에 비해 성과 보상이 미흡하다는 LG화학 직원들의 불만도 감지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손해 주주들의 마음은 한층 더 착잡해지는 모양새다.
국내 증시 추락기에 겹친 LG엔솔發 '수급 부담'
국내 전기차 배터리 선두 기업의 '쪼개기 상장(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은 모회사 주주 뿐 아니라 추락하는 국내 증시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최근 두드러지는 코스피의 약세의 핵심 원인으로는 긴축 기조로 돌변한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이 꼽히지만, 국내 요인으론 LG엔솔 상장에 따른 수급 왜곡 현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집중 거론돼 왔다.
실제로 상장일에는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20조 5488억 원)의 40%에 육박하는 8조1553억 원이 LG엔솔 한 종목에 쏠렸다. 외국인들은 이날 하루 2조700억 원 어치 주식을 순매도 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조 5천억 원 어치가 LG엔솔이었다. 단기 차익을 노린 이런 투매 여파로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5% 하락했다.
이 과정에서 연기금은 외국인의 매도 금액보다 비싼 가격에 LG엔솔 주식 2조 1080여억 원 어치를 사들인 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등은 팔아치운 것으로 파악돼 대형주 주주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개미들 '부글'…"국내 시장 신뢰 어려워" 비판도
LG에너지솔루션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연합뉴스이처럼 인기 기업 쪼개기 상장이라는 단수 변수가 불러온 혼란상이 극심하다보니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선 "국장(국내 시장)은 믿을 수 없다"며 시장 신뢰성과 공정성에 물음표를 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도 쪼개기 상장에 따른 시장 신뢰 실추 논란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적분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후에 분할 회사를 상장하는 부분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기존 모회사 주주들 입장에선 본인들의 권리가 훼손당하는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황세운 선임연구위원도 "예컨대 배터리 부문의 수익성을 보고 LG화학에 투자한 주주들 입장에선 그 부문이 분리된 뒤 상장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 팔려가는 걸 보면서 도둑맞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쪼개기 상장은 기업 입장에선 분할된 사업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고, 대규모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회사 소액주주들이 이를 견제할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개선 지점으로 거론된다.
황 연구위원은 "미국 같은 경우는 이런 분할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금지규정은 없지만 기관 투자자들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고, 집단 소송도 활발하기 때문"이라며 "반면 우리나라는 대주주의 힘이 강력하고, 기관 투자자들은 목소리를 별로 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모회사에서 물적분할한 자회사까지 중복상장시키는 행위에 대해선 엄격한 규정을 마련하는 방식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단 LG엔솔 뿐 아니라 SK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등 쪼개기 상장이 최근 IPO 트랜드처럼 자리 잡는 조짐을 보이자 한국거래소도 신년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로 '확고한 시장신뢰' 확보를 꼽으면서 이 문제와 관련한 투자자 보호방안 검토를 세부 과제로 꼽았다.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은 "(분할 회사) 상장 심사 때 모회사 주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는지를 심사 내용에 포함시키는 건 당장 법 개정 없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실행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