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해 특정 지원자가 합격하도록 한 혐의로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온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이 11일 오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서부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하나금융그룹 함영주 부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는 절차를 코앞에 두고 재차 '사법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주 채용 비리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한숨 돌렸던 함 부회장은 14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징계 처분 취소 1심 소송에선 패소하면서 예기치 못한 변수와 직면한 모양새다.
함 부회장의 회장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는 이달 말 일정 변경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승소에 무게를 뒀던 그룹 내에서도 당황한 기류가 흐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김순열)는 함 부회장과 하나은행이 금융감독원 등 당국을 상대로 낸 중징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하나은행이 DLF 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자에게 상품 위험성을 충분히 안내하지 않는 등 불완전 판매를 했다고 보고 "(함 부회장 등의) 지위와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에 비춰 금감원과 금융위원회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부분은 없다"고 판단했다. 중징계 처분은 정당했다는 게 1심 판결의 골자다.
앞서 하나은행은 2016년 5월부터 영국과 미국 CMS 금리(장·단기 이자율 스왑)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하는 DLF를 판매했다. 그런데 2019년 하반기에 채권금리가 세계적으로 급락하면서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이 사태로 금융당국은 2020년 3월 하나은행에 '사모펀드 신규판매 업무 6개월 정지'라는 제재 조치와 함께 167억여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아울러 DLF 상품 판매 때 하나은행장이었던 함 부회장에게도 불완전 판매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문책경고'라는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그해 법원은 함 부회장과 하나은행 측의 해당 조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고, 징계 효력은 이번 소송 1심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 즉 다음 달까지 정지됐다.
지난달 하나금융그룹 차기 회장으로 내정돼 오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선임을 앞두고 있는 함 부회장으로선 이번 1심 패소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함 부회장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최대 사법 리스크로 여겨져 왔던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비리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회장 승계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당초 DLF 사태로 금감원으로부터 마찬가지로 중징계 처분을 받았던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징계 취소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한 점을 들어 같은 결과를 예상했던 하나금융그룹 내부에서는 선고 직후 "유감스럽다"는 입장이 나왔다.
하나은행 측은 "그동안 본 사안과 관련해 법적, 절차적 부당성에 대해 적극 설명하는 한편, 피해 회복을 위해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모두 수용해 투자자들에게 배상을 완료하는 등 최선을 다해 대응해 왔음에도 당행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중징계가 효력을 발휘할 경우 함 부회장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상 3년 동안 또 다른 임원으로의 직책이동은 불가능하다. 다만 효력이 되살아나는 시점이 내달인데다가, 항소 절차가 남아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주주총회는 일단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그룹도 주총소집 공고 관련 정정공시를 내고 "판결에 대해 항소할 예정"이라며 "기존 법원의 집행정지 효력은 1심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까지이므로 본 판결에도 불구하고 (함영주) 후보자가 회장직을 수행하는 데 제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밝혔다.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점에서 주총이 예정대로 열릴 경우, 이번 선고가 주주들의 의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한편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번 1심 결과에 대해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하며 판결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해 향후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