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식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윤창원 기자"저는 계속해서 학생의 신분에 멈춰 있고 성인이 될 줄은 몰랐는데 26살이 되어버렸네요. 제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쯤이면 조금은 진상규명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만하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네요. 저도 그만하고 싶어요. 항상 진상규명을 위해 힘들었고, 무서웠던 기억을 꺼내야 했는데 누가 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또 그만하겠어요, 소중한 내 친구들인데… ."
'세월호 참사'가 8주기를 맞는 2022년 4월 16일.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기억, 약속,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기억식에서 편지를 낭독하는 생존학생 장애진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이었던 생존 피해자, 장씨는 연단 위에 올라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 아빠와 다짐한 게 있었다. 왜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진상규명을 끝까지 같이 해보자는 것"이라며 "최소한 10년을 생각하고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벌써 8년'이 아니라 '아직 8년'이란 생각으로 시간이 흘러도 진상규명은 그대로지만
지치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가보려 한다"며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다.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한 건 사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20대 대통령 당선인이신 윤석열 당선인은 공정과 상식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모두가 안전한 나라는 세월호참사의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가능하다"며
"유가족의 여한이 남지 않도록 수사하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 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생사를 달리한 친구들을 향해서는 "꽃을 보고 봄이 돌아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보다 요즘따라 너희가 더 많이 생각나 달력을 보면 4월이더라. 많이 보고 싶다"며 "(참사 이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잘해내고 있는 것 같냐"고 되물었다.
그는 "병원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의 죽음을 접할 때 한 사람도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더라. 죽은 환자의 보호자가 우는 모습을 볼 때 부모님들의 모습이 겹쳐보여 많이 힘들었다"며
"부모님들의 꿈에 나와서 한 번 껴안아주고, 내 꿈에도 나와서 잘하고 있다고, 인사 한 번 해주고 가달라"고 당부했다. 장씨의 흔들리는 음성을 들으며 유족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여전히 의혹이 다 해소되지 못한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데엔 '니편, 내편'이 있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는 추도사를 통해 "8년 전 생애 마지막 순간을 맞은 304분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며 "4·16 이후는 그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믿음을 묵묵히 실천해 가는 시민들이 있어서 피해자들은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식에서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를 염원하는 시민 일동이 4월 16일 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또한 "검찰 특별수사단 등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가 여러 번 진행됐고 지금도 사참위(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진전도 있었지만
여러 한계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라며 "미래 세대인 아이들이 맘껏 꿈꿀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보수·진보가 따로 없고, 여야가 나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인재(人災)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재난·참사가 이어지고 있고 일터에서도 중대재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것마저 잊으면 우리 사회가 더욱 위험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수진 아빠',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 역시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성역 없는 진상규명, 피해자 처벌에 대해 방관이라 생각될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차기 정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과제를 완수하게끔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억식에 참석한 김부겸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여러분의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며 "정부를 대표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앞으로
어떤 정부에서도 사회적 참사를 예방하고 국가의 재난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라며 "피해지원에 있어서도 소홀한 부분이 없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참사 10주기인 2024년까지 화랑유원지에 건립 예정인 4·16 생명안전공원을 들어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미국 뉴욕의 '9·11 기념관' 등은 그 도시의 구성원들이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를 함께 껴안고, 기억하고, 위로하고 있으며 위대한 인류애를 가진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언급했다.
김 총리는
"4·16 생명안전공원이 추모와 치유, 화합의 구심점이 되도록 정부가 안산시와 함께 꼼꼼히 챙기겠다"며 "예전의 일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우리 모두는 부끄럽지 않은 동료 시민으로서 이날을 기억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6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개최된 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식 '기억, 약속, 책임' 포스터. 4·16재단 제공 이날 행사는 4·16 합창단의 추모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참사로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단원들은 검은 옷차림에 노란 스카프 등을 매고 '끝까지 책임자 처벌', '반드시 진상규명', '우리 모두는 세월호의 증인입니다' 등의 피켓을 위로 들어보였다.
한편, 이날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도 오후 4시 16분 참사를 기리는 사이렌과 함께 추모 음악예배가 열렸다. 인천에서는 인천가족공원에 있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옆 광장에서 일반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이 개최됐다.
2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세월호잊지않기 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는 세월호 선체가 보존된 전남 목포신항에서 8주기 기억식을 진행했다. 목포신항에서는 선체가 인양된 지난 2017년 이후 매해 4월 16일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