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장관. 황진환 기자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취임한 지 하루 만에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부활했다. 여러 사건 수사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신라젠 주가 조작 사건과 라임 펀드 환매 중단 사건 수사부터 재개하지 않겠냐는 의견들이 적지 않다.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만 무성한 채 수사가 진행되다가 합수단 폐지와 남부지검장 교체 등으로 수사가 멈춰섰기 때문이다.
합수단 폐지·남부지검장 거듭 교체로 수사 멈춰서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은 18일 기존 금융·증권범죄 수사협력단 체제를 개편해 합수단을 새로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한 장관이 전날 취임사에서 합수단 부활을 선언한 지 하루 만이다. 합수단은 검사와 수사관, 특별사법경찰 등 전문 인력 총 48명의 인원으로 운영된다. 지난 2013년 합수단 최초 설립 당시 규모에 준한다. 합수단은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2020년 1월 검찰 직접 수사 부서를 축소하겠다며 폐지됐다가 박범계 전 법무부장관이 수사 공백이 우려된다며 지난해 9월 협력단으로 개편됐다. 하지만 검사가 수사를 지휘할 뿐 직접 수사를 할 수 없어 한계가 있다는 평이 나왔고, 다시 합수단 체제가 됐다.
당장 법조계에서는 신라젠 의혹과 라임 사태 수사부터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라젠 의혹과 라임 사태 수사를 하고 있던 합수단을 폐지하고 이를 넘겨 받은 남부지검의 수장이 계속해서 바뀌면서 수사가 멈춰섰다는 지적이 많아서다. 합수단이 해체하면서 서울 남부지검 금융조사1부가 신라젠 의혹을, 형사 6부가 라임 사태 수사를 이어 받았다. 당시 합수단이 해체하자 신라젠 주가는 급상승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일 당시 남부지검에 금융 범죄 수사 검사를 파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부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다시 출범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서울남부지검은 "기존 금융증권범죄 수사협력단 체제를 개편해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을 새롭게 출범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 모습. 황진환 기자
하지만 같은 해 7월 신라젠과 라임 수사 책임자인 송삼현(사법연수원 23기) 서울남부지검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법무부가 사퇴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신라젠 의혹과 라임 사태 등에 대해 고강도 수사를 진두지휘해 보복성 사퇴 압력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왔다. 송 전 지검장이 사퇴한 이후 의정부지검장을 지낸 박순철(24기) 검사장이 새롭게 남부지검장이 됐지만, 3개월 만에 또 다시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며 추 전 장관에 반발했다.
이후 이정수, 심재철 검사장이 차례대로 남부지검장을 맡으면서 수사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남부지검 최대 현안 사건이었던 라임이랑 신라젠은 계속해서 남부지검장이 바뀌어 수사가 한 치도 전진하지 못했다"면서 "수사를 하다 말았으니 마무리 하는게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신라젠·라임 수사 어디까지 밝혀졌나
연합뉴스신라젠 주가 조작 의혹 사건은 신라젠 일부 임원이 개발 중이던 항암치료제 '펙사벡'의 무용성 평가 결과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각해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 골자다. 2016년에 상장한 신라젠은 한때 바이오 기업 유망주로 떠오르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지만 2019년 '펙사벡' 임상 중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폭락했고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이때 신라젠의 고속 성장 과정에 민주당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일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 모임인 노사모 출신 이철 전 VIK 대표가 2014년 거액을 투자하고,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도종환 의원 등이 VIK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신라젠 경영진의 자본시장 범죄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끝났다. 검찰은 주가 조작 의혹이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실체가 없다는 발표를 했다.
라임 사태 수사도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밝히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1조원 이상 투자자 손실을 낸 라임 사태는 펀드의 불건전 운용과 불완전 판매 부분에서는 주요 경영진을 모두 재판에 넘기면서 성과를 보였지만, 정관계 로비에서는 아직 의혹을 규명하지 못했다.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금품을 받고 금융감독원 내부 문서를 누설한 혐의와 이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까지 밝혀냈지만 성과는 거기까지였다.
연합뉴스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의 재판에서 이 전 대표를 통해 강기정 전 청와대 수석에서 5천만원을 건넸다는 취지로 증언해 파장이 일었지만, 검찰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 전 수석을 입건하지 않고 종결 처분했다. 강 전 수석도 이 전 대표를 만난 사실은 있지만 돈을 받은 적은 없다면 의혹을 부인했다. 이외에도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 기동민·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이름이 나왔지만 검찰 수사는 진전되지 못했다. 라임 펀드 관련 로비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고 수감 중이던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아 풀려났다.
이외에도 옵티머스 사태 등 합수단 폐지 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사건들도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논란이 된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테라USD(UST) 폭락 사태'에 대해 남부지검 내부에선 문제점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나·UST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도 발행사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를 남부지검이나 경찰에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합수단이 설치된 남부지검장에는 양석조(29기) 대전고검 인권보호관이 임명됐다. 고검 검사급인 합수단장은 기존 박성훈(31기) 협력단장이 일단 맡는 가운데 합수1, 2팀장은 이승학(36기) 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부부장검사, 이치현(36기) 기존 협력단 부부장검사가 각각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