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3개 선착장 바로 뒤에 있는 배후부지 중 A구역 모습. 이곳에 대한 소유권은 법인을 대상으로 한 분양 낙찰 이후 대기업 대표이사 등 다수 개인들의 지분으로 쪼개졌다. 박철웅 PD평택·당진항 동부두 민간투자사업이 일부 기업인 등의 땅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공공재 성격이 강한 항만 배후부지의 토지소유권을 개인에게 인정해준 평택시의 '부실행정'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입찰자격 없는 '개인' 소유권 허가한 평택시
15일 해수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06년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3개 선착장 바로 뒤에 있는 축구장 17개 규모의 배후부지(12만 1299㎡)를 A·B·C구역으로 나눠 민간에 분양했다.
당시 '매각입찰안내서'를 보면 입찰 자격은 '개별법인 또는 2개 이상 법인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으로 제한됐다. 항만·물류로 국한된 부지용도에 적합한 업종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그러나 지침과는 달리, 대부분 땅은 법인이 아닌 '개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1.2.3) 항만배후부지 매각 입찰안내서 2006년 11월 6일 평택아이포트. 문서 캡처문제는 이 같은 과정에서 관할 지자체인 평택시가 토지 매입 주체의 적정성 등을 면밀히 검증하지 않고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줬다는 점이다. 부두 바로 뒤 공간이라는 특수성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땅을 민간에 넘기면서 항만 업종이 입찰에 참여해야 하고, 개인이 아닌 법인에게만 분양해야 된다는 입찰 조건이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실제 2010년 6월 1일, 해당 배후부지의 한 필지에 대한 평택시청 안중출장소의 '토지거래계약허가 처리 알림'에는 한 기업인의 토지 매입 신청 건에 대해 "토지거래 신청내용을 검토한 바 이용 목적에 적합해 토지거래계약 허가증을 교부한다"고 적혀 있다.
이런 토지거래 허가를 통해 2010년 평택 동부두 내항이 문을 연 직후, 이 배후부지의 상당수 토지 등기자는 낙찰기업이 아닌 특정 개인들로 뒤바뀌었다.
지난 2010년 평택시가 해당 배후단지 내 일부 토지거래(개인 명의)에 대해 허가를 알리는 공문. 문서 캡처당초 A구역은 항만하역·화물물류 보관 전문업체 영진공사, B구역은 평택동방아이포트 주주사인 두우해운·남성해운·범주해운·태영상선, C구역은 오케이물류·SKC·국원이 각각 낙찰 받았다.
하지만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이 가운데 A, C구역의 소유권은 범현대가 3세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회장, 최신원 전 SKC 대표이사 회장의 매제인 박장석 전 SKC 고문을 비롯해 평택동방아이포트 주주사인 ㈜동방 전직 임원들의 부인, 해수부 간부 출신 공무원의 부인 등 개인 지분으로 쪼개졌다.
평택시 "토지거래허가 기준 따랐을 뿐"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거점 마련을 위해 추진한 사업이 이처럼 사실상 일부 개인의 땅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준 것 자체가 행정 실책이라는 지적이다. 사업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해수부는 물론, 사업부지에 대한 개인 토지 소유권을 무분별하게 허가내준 평택시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입찰안내서에 명시된 입찰 자격이나 업종 조건, 부지용도 등을 고려했다면 부동산 등기 신청의 적합성 여부를 따져볼 수 있었겠지만, 시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평택시청 관계자는 "부동산 등기 신청이 들어오면 부지용도에 맞는지 담당부서 확인을 거치기 때문에 타당하다고 결론이 나서 허가가 나갔을 것"이라면서도 "그 시기 법인으로 자격제한을 한 입찰 안내서까지 검토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고, 신청서 등 관련 서류는 보존기한인 10년이 넘어 폐기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당시 허가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제대로 처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감사원 조사 필요성도…전문가들 "모니터링 했어야"
일각에서는 해수부가 민간기업의 투자비를 보전해주고 항만운영을 돕기 위한 배후부지 분양의 취지를 외면한 채, 지자체 등과 공조해 특혜분양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시가 몰라서 과실을 범했는지, 알고도 묵인한 것인지는 향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종건 평택지역의 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는 "과거 담당 공무원들의 직무태만이나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다"며 "감사원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성을 지닌 항만 배후지역으로서 입찰 주체가 법인으로 한정돼 있는 만큼, 토지거래 행위에 대한 허가권을 쥔 지자체가 보다 철저히 관리를 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입찰 자격이 법인으로 명시돼 있다는 것은 낙찰 이후에도 개인으로 무단 양도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평택시가 일정 기간 면밀히 모니터링 했어야 됐는데 이를 등한시 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도 "공적영역인 바다 매립지를 민간개발로 추진한 것부터가 잘못인데 개인 소유로까지 이어졌는데도 아무 제약이 없었다"며 "지자체에서 사업자가 제안한 부지 용도에 맞게 제대로 활용되는지 등을 엄격히 감시했어야 됐다"고 강조했다.
개인 손에 넘어간 알짜 항만부지…투기 정황 뚜렷
평택·당진항 배후단지 전경. 박철웅 PD앞서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3개 선석 배후부지 분양사업의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HDC)은 2006년 입찰공고 때 최저 분양 기준금액을 ㎡당 15만 4천원을 제시, 이후 ㎡당 16만 원을 낸 업체들이 낙찰됐다.
이 분양가격은 준공 시점인 2010년 6월 기준, 주변 시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현장조사 없이 서류만으로 추산했던 탁상감정가격인 ㎡당 33만~37만 원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투기를 의심케 하는 정황은 또 있다. 용지 매매계약서 초안에는 양도 시 10년간 토지의 전매금지 조항이 명시돼 있었지만, 실제 최종 계약서에는 삭제됐다. 양도 시 사업시행자에게 동의 받는 절차도 생략하고 서면통지로 간소화됐다.
항만법상 항만 배후단지를 개발할 때는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차단을 위해 10년간 양도가 금지되지만, 이번 사업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 적용돼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수부가 고시(2006-51호)를 통해 사업 성격을 항만법이 아닌 민간투자법을 따르는 '부대사업'으로 규정하면서다. 특히 항만 배후 지역에서 부대사업 형태로 항만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더욱이 배후부지 매각 입찰 일정을 보면, 입찰공고가 이뤄진 2006년 11월 3일부터 신청서·사업계획서 접수와 우선협상자 선정을 거쳐 매매계약 체결까지 보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는 점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토지거래 이후 12년이 지난 현재, B구역에 대형 온라인 쇼핑몰의 물류센터가 들어서고 몇몇 부지에 공장이 지어진 것 외에는 개발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부동산등기를 마친 토지 소유주들은 평택·당진항 항만사업과 연계된 독점적 지위를 갖는 알짜 항만 배후부지를 시세에 맞춰 양도해도 최소 3배의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