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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동안 명예의 전당 입성을 거부했던 NBA 전설 빌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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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년 동안 명예의 전당 입성을 거부했던 NBA 전설 빌 러셀

    1950~1960년대 NBA 레전드 빌 러셀, 88세 일기로 타계
    전무후무한 통산 11번의 우승, 역대 최고의 팀 플레이어
    흑인 인권 위해 노력…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유 훈장 수여
    NBA는 애도의 물결…실버 총재 "평등과 존중의 상징"

    2011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훈장을 수여받는 빌 러셀. 연합뉴스2011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훈장을 수여받는 빌 러셀. 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이 1일(한국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5번의 NBA 정규리그 MVP 등극, 12번의 NBA 올스타 선정, 미국 대학농구(NCAA) 우승과 하계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NBA 우승을 모두 경험한 선수. 독보적인 NBA 최다인 무려 11번의 NBA 우승을 차지했던 레전드.

    1950~1960년대 NBA 무대를 주름 잡았던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은 1975년 미국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흑인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흑인 선수에게는 높은 벽과도 같았지만 빌 러셀의 경력을 돌아보면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빌 러셀은 명예의 전당 기념 반지를 받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 측에서 준비한 기념 반지 수령을 거부했다. 그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빌 러셀이 지난 2019년 SNS를 통해 직접 그 이유를 밝히기 전까지는 누구도 몰랐다.

    빌 러셀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발표된 지 무려 44년이 지난, 왜 하필 2019년이었을까.

    2019년은 NBA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 농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해다.

    미국에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지난 1950년 흑인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NBA 드래프트의 벽을 뚫고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은 척 쿠퍼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해다.

    빌 러셀은 '흑인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라는 타이틀을 척 쿠퍼에게 양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빌 러셀은 2019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명단이 발표된 후 자신의 SNS에 "지난 1975년, 난 최초의 흑인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나보다 먼저 그 명예를 누려야 하는 인물이 있었다. 척 쿠퍼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모습을 보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빌 러셀이 어떤 인물이고 그가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코트 안에서의 빌 러셀은 레전드 그 자체다. NBA 역사상 최고의 팀 플레이어, 가장 위대한 승자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한다. 적어도 우승과 관련한 부문에서는 그의 위상에 근접할 선수가 없다.

    NBA 파이널 MVP에게 수여되는 트로피의 공식 명칭은 그의 이름을 딴 '빌 러셀 트로피'다. 빌 러셀이 직접 코트에서 수여하는 NBA 파이널 트로피의 무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1950~1960년대에는 윌트 채임벌린이라는 '괴물 센터'가 있었다. 그는 전무후무한 한 경기 100득점 기록을 세웠고 한 시즌 평균 50득점 이상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두 선수가 맞붙을 때마다 언론은 '배틀 오브 타이탄스'라는 제목을 썼다. 개인 기록은 윌트 채임벌린이 압도했다. 그는 맞대결 평균 28.7득점, 28.7리바운드를 기록했고 빌 러셀은 14.5득점, 23.7리바운드에 머물렀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건 늘 빌 러셀이었다. 통산 142번의 맞대결에서 빌 러셀이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가 87승을 챙겼다. 8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는 7번을 이겼다.

    배틀 오브 타이탄스. 연합뉴스배틀 오브 타이탄스. 연합뉴스
    지난 1999년 세상을 떠난 윌트 채임벌린은 과거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리 팀은 늘 졌고 빌 러셀의 팀은 늘 이겼다. 내가 질투를 느끼는 게 당연해보이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행복했다. 그는 종합적으로 봤을 때 최고의 선수였고 나로 하여금 최고의 기량을 끌어내게 하는 라이벌이었다"고 말했다.

    두 선수가 활약한 1960년대는 어떤 프로스포츠보다 흑인 선수들이 많은 NBA조차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였다. 일부 호텔은 흑인 선수들의 투숙을 금지했고 코트에서는 야유가 자주 쏟아졌다. 흑인에게 주어지는 낮은 연봉 때문에 길거리 코트에서 '돈 내기' 농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선수도 있었다.

    빌 러셀은 1966년부터 보스턴 셀틱스의 감독을 맡았다. NBA 역사에서 처음으로 흑인 감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는 선수 겸 감독으로서 팀을 두 차례 더 우승으로 이끌었다(1957년, 1959~1966년 8연패, 1968~1969년 2연패).

    그리고 빌 러셀은 흑인 NBA 선수, 더 나아가 미국 사회의 흑인들의 인권과 처우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지난 2011년 그에게 자유의 훈장을 수여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에 "러셀은 코트 안에서 농구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이었고 코트 밖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시민권을 개척해나간 인물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수십 년 동안 온갖 모욕을 견뎌내면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빌 러셀의 농구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글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빌 러셀은 스포츠보다 더 위대한 싸움을 해왔고 평등과 존중의 DNA를 NBA에 심었다"고 전한 애덤 실버 NBA 총재를 비롯해 NBA 커뮤니티 전체에서 깊은 애도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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