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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단독]반려견 '보리' 손 들어준 법원…"사물 아닌 정신적 교감 생명체" (계속) |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며 동물병원 의료사고 분쟁도 꾸준히 논란이 되는 가운데 동물과 보호자에게 있어 의미심장한 판결이 나왔다.
2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법원에서 동물의 생명을 다루는 수의사에게도 인간을 다루는 의료인에게 적용되는 법리를 유추 적용해야 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현행 민법상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돼 의료과실이 밝혀지더라도 손해배상 액수가 미미하거나 위자료를 높게 책정받지 못하는 등 수의사의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었다. 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치료의 경우 의료법에 따라 의사가 환자의 병력과 치료 내용 등을 적은 진료기록부를 발급해야 하지만, 동물병원은 수의사법상 진료부를 보호자에게 발급할 의무가 없다.
이에 동물병원에서 의료사고를 당해도 피해자가 권리를 주장하거나 법적 증거 자료 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 법원이 수년간 사람과 교감한 반려견은 '사물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며 의료법 판례에 따라 보호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중성화 수술 후 몸속에 스테이플러 심이 남아있는 보리 엑스레이(X-ray) 사진. 보호자 측 제공충남 아산시 A동물병원 B원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과 경기도 등 지역을 옮겨 다니며 동물병원 개·폐업을 반복하고, 의료 사고를 낸 뒤 책임을 회피한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가 2019년 말부터 운영한 A동물병원에서만 피해자 10여 명이 나왔다는 사실이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지난 8일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아산시법원 제2민사부(최병준 부장판사)는 A동물병원 수술 피해자 중 1명이 2020년 9월 B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원고가 재산상 손해로 주장한 금액(219만2천원)과 위자료(200만원)가 전액 인정됐다.
원고 김성태(36)씨는 2020년 7월 A동물병원에 반려견 '보리'(폼피츠 암컷, 사건 당시 6살)의 발바닥 피부병 치료를 맡겼다가 원장의 권유로 중성화 수술까지 받았지만, 반려견의 수술 부위가 두 번이나 벌어져 피부와 조직이 괴사되는 피해를 입었다.
중성화 수술 후 술부가 개복된 보리 사진. 보호자 측 제공판결문에 따르면 B원장은 보리가 살충제에 중독돼 발바닥이 부어올랐다면서 보리를 입원시키고 약물 및 주사 요법으로 치료했다. 이후 중성화 수술까지 해주겠다며 입원 기간을 늘렸는데, 수술 사흘 뒤 퇴원한 보리는 수술 봉합 부위가 벌어지고 피고름이 나 다시 입원했다.
재차 입원하고 4일쯤 지나 퇴원하는 날, B원장은 자신이 병원에 없다며 보리를 데려갈 때 문단속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배에 있는 붕대는 다음 주에 풀겠다는 문자를 김씨에게 보냈다. 그런데 김씨가 집에 데려와 확인한 보리의 수술 부위는 다시 벌어져 있었다. 보리는 그날 오후 다른 병원에서 피부와 조직이 괴사·감염됐다는 진단을 받고 피부 봉합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B원장이 수술 부위를 제대로 봉합하지 않은 데다가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반려견의 상태를 면밀히 주시하지 않고 '넥카라'를 씌우지 않는 등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로 인해 보리가 수술 부위를 핥아 염증이 생기고 살을 잡아주는 스테이플러도 삼켰다는 것이다.
B원장은 보리의 2차 퇴원날 김씨가 보리의 상태를 보고 항의하자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오면 뱃속은 다 아물었으니 외부 피부만 스테이플러로 다시 집어 수술하면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퇴원 후 갑작스레 반려견 상태가 악화한 원인은 전적으로 김씨의 임의 퇴원과 이로 인한 김씨의 관리 부주의에 기인했다"고 반박했다.
반려견 보리 보호자와 A동물병원 원장이 보리 1차 퇴원 무렵 나눈 문자. 보호자 측 제공재판부는 B원장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보고 "(B원장이) 수의사로서 반려견의 수술 부위 개방, 피부 괴사, 감염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적절히 치료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며 김씨 측 손을 들어줬다.
이어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손해 발생의 직접적 원인이 의료 과실 때문인지 여부는 전문가인 의사가 아니면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며 "피해자 측이 일반 상식을 바탕으로 의료 과실 행위를 입증하고 결과와 의료행위 사이에 다른 원인이 없다면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의사는 비록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의료인은 아니지만 '동물의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수의사의 진료행위도 의료법상 의료인에게 적용되는 위와 같은 법리를 유추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생명체인 반려견의 객관적 교환가치를 산정할 수 없고, 6년 동안 보호자와 교감하고 생활해온 반려견을 시장에서 연령이 비슷한 견종으로 구입해 대체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B원장 측은 김씨가 청구한 손해배상 액수가 과하다며 "이 사건 반려견은 사물(물건)에 해당하고 견종인 폼피츠 견령 6년생에 대한 시중 분양가는 15만원 내지 40만원 범위이므로 위 분양가 금액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 부부가 6년여 동안 함께 생활하며 서로 육체적, 정신적 교감을 해온 생명체인 사건 반려견을 시장에서 돈 주고 구입해 대체할 수 있다는 피고의 주장이나 사고방식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동물의 상처나 질병을 보듬는 치료행위를 업으로 하는 수의사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게다가 재판부는 해당 판결에서 중성화 수술 과정에 들어간 전신마취 등 주사 처치 비용도 손해배상 책임 범위에 포함했다. 수술 후 발생한 손해뿐만 아니라 수술 과정에 들어간 비용까지 책임을 지운 건 사실상 '제대로 된 수술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담당 의사는 환자의 치유를 위해 주의 의무를 가지고 의학 수준에 비춰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 조치를 다 해야 할 채무가 있는데, 그 같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 불가능하게 손상됐다면 치료행위는 진료 채무의 본지에 따른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B원장은 해당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