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과학 방역'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일선 의료기관에서 사용되는 감염예방·관리지침을 한 번도 업데이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지자체용 코로나19 대응지침은 단 한 차례만 개정했다.
해당 지침들은 해외입국자부터 지역발생 환자를 관리하는 당국의 원칙이자 기준이다. 일상회복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방역 실태에 맞는 지침을 때맞춰 내놓지 않는 것은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지자체 코로나 대응지침 13-1판을 낸 것은 지난 8월 15일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첫 번째 개정판이다.
지자체용 '코로나19 대응지침' 제·개정 내역.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제공그 이전의 최신판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나온 13판이다.
중앙 정부가 각 지자체, 보건소에 배포하는 '코로나19 대응지침'은 해외유입 사례와 관내 확진환자 관리 등을 총망라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유행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정부의 정책들이 즉각적으로 반영돼야 하는 문서라 할 수 있다.
국내 첫 확진자가 유입되기 전인
2020년 1월 4일 초판이 발간된 지자체 대응지침은 지난 4월 25일까지 총 26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코로나19의 특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발생 원년에만 무려 18번 제·개정됐다.
내용이 자주 가감될 수밖에 없는 유행 초기였음을 감안해도 정책 발표와 지침 반영 사이 시차는 대체로 2주를 넘기지 않았다.
반면 현 정부가 내놓은 13-1판은 발표시점부터가 이보다 한참 늦었다는 지적이다. 올 3월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부터 양성이 나오면 확진으로 인정된 신속항원검사 관련 부분이 단적인 예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14일부터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RAT)를 기존 PCR(유전자 증폭) 검사와 같은 진단검사로 간주했다.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검사량이 급증하자, 조금이라도 감염자를 빨리 가려내자는 '고육책'이었다. 정부는
지난 5월 13일까지 이 조치를 연장했고, 이후로는 사실상 동네 병·의원에서 받는 RAT 검사가 코로나19 검사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PCR 대상은 60세 이상 고령층 등 고위험군으로 제한됐고, 선별진료소·임시선별검사소가 서서히 축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 또는 응급용 선별검사(긴급사용승인 제품)가
'별도 안내 시까지' 확진자 감별에 쓰인다는 내용은 한시시행이 종료된 지 석 달 만에야 지침에 담겼다.
지난 6월 8일부터 시행된 '입국자 격리의무 해제'도 개정판에 명시되기까지 두어 달의 시차가 있었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부임한 5월 중순 이후로도 석 달이 걸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확진자들이 입원·내원하는 병원들에 배포하는
'의료기관 감염예방·관리'(통합본) 지침의 경우, 윤석열 정부 들어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의료기관 감염예방관리 지침 제·개정 및 배포 내역.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제공오미크론 변이가 국내를 휩쓸던 올 3월 8일 개정된 대응지침 제2판이 현행판으로 쓰이고 있다. 2판에서는 오미크론 대응체계 아래 코로나19 환자의 병실 사용, 수술·투석·분만 등 특수상황에의 환자 관리 등이 보완됐다.
문제는 이 지침이 현재의 방역상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일반 환자에 대해 △증상 유무(발열·기침·호흡곤란·인후통 등) △동거인 확진 여부 △예방접종 상태 등을 확인토록 한 규정을 들 수 있다.
접촉자의 격리의무가 사라졌고 '돌파 감염'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문진 항목을 일부 손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8일 개정된 코로나19 의료기관 감염예방·관리 지침(통합본) 2판에 명시된 '일반환자 관리' 내용 중 일부. 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제공요양병원·시설의 면회 관련 수칙도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쓸모가 없어진 쿠브(COOV·예방접종전자증명서) 애플리케이션이나 종이증명서로 접종완료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다. 정부는 전날부터 신속항원검사로 음성이 확인되면 접촉 면회가 가능하도록 감염취약시설의 방역을 완화했다.
신현영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방치 방역', '각자도생 방역'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당국은 지자체와 의료기관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코로나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방역지침을 '현행화'하는 일조차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역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니 의료기관이 알아서 지침을 만들고, 알아서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표방하는 '과학 방역'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입증됐다"고 밝혔다.
물론 집단감염이 더 큰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일반 다중시설보다 엄격한 관리지침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상급병원에서 환자의 확진 여부를 판별할 때 RAT를 쓰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각 병원의 재량권을 존중하되 조금 더 방역 상황에 맞는, '실효성' 있는 지침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 유행 초기만 해도 은평성모병원 등 원내감염에 대한 역학조사와 데이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본 통계조차 안 나와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지침이나 공문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현장에서 감염자가 얼마나 있었고, 근무에서 빠져야 했던 의료진은 몇 명이나 됐는지 등 데이터를 토대로 병원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