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위기의 X'에서 'a저씨' 역을 연기한 배우 권상우. 웨이브 제공배우 권상우의 근본은 '코미디'에 있다. 그를 지금의 스타로 만든 대표작 '동갑내기 과외하기' 역시 로맨스의 탈을 쓴 '코미디' 영화였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위기의 X'는 그런 권상우의 특기가 유감 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40대 중년 남성 'a저씨'는 희망퇴직, 주식 '떡락'(갑작스러운 하락세), 집값폭등까지 잇단 위기를 맞이하자 인생의 반등을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의 줄임말)에 나선다. 권상우는 주인공 'a저씨'를 맡아 그야말로 위기에 빠진 중년 남성들의 현실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탐정' 시리즈를 시작으로 권상우는 코미디 장르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나이를 거슬러 자기 관리로 완성된 몸, 여전히 잘생긴 얼굴. 사실 권상우의 외양은 망가져야 완성되는 코미디 연기와는 대척점에 서있다. 그럼에도 타고난 센스와 코미디에 다채로운 감정을 입힐 줄 아는 '스킬'은 모든 '약점'과 '편견'을 깨고 '권상우표' 코미디란 수식어를 탄생 시켰다.
결정적으로 권상우는 솔직하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과거의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자신이 가야 할 길도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매 작품마다 간절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가속할 때와 감속할 때를 아는 배우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다음은 권상우 그리고 'a저씨'의 '아내' 역을 맡아 권상우와 호흡한 배우 임세미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웨이브 오리지널 '위기의 X'에서 'a저씨' 역을 연기한 배우 권상우. 웨이브 제공Q 권상우표 코미디 장르가 생긴 것 같다. 코미디 작품들은 늘 타율이 좋은 편인데 '위기의 X'는 어떻게 느꼈나A 권상우(이하 권)>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딱 두 달 촬영을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없고 매일 너무 재밌게 촬영을 했다. 그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작품에 나온 거 같다. 제 나이대(40대)에 할 수 있는 가장 재밌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저도 모르게 권상우표 코미디에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제 무기가 될 수 있는 장르가 생긴 거 같다. 배우라면 한 가지 캐릭터에 갇혀있기 싫고 다양한 걸 하고 싶기 때문에 대본에 나온 것보다 신을 잘 보이게 현장에서 마무리하면 그 때 오는 성취감이 좋다. 사실 코미디가 제일 힘든 거 같은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게 축복이다. 현장의 즐거움을 더 알게 됐던 작품이었고, 열심히 연기하고 보여드리면 관객들이 알아주는 순간이 온다, 그런 걸 알게 된 현장이었다.
Q 'a저씨'의 속 터지는 '아내' 역을 맡았다. 아직 미혼인데 어떤 식으로 캐릭터에 공감했는지, 첫 코미디 연기 소감은 어떤지 궁금하다A 임세미(이하 임)> 아내로서 욱하는 상황들이 많았다. 'a저씨'가 5천만원을 잃었을 때는 누가 이렇게 넘어가 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한다면 남편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은 따뜻한 역할이었다. 아내 입장에서 보기에 'a저씨'는 짠하고, 보듬어주고 싶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던 거 같다. 대본상에서 'a저씨'는 문제가 생겨도 말없이 혼자 꿍하게 앓고 있다. 그런 부분들이 짠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코미디 연기의 경우, 권상우 선배를 보면서 웃기려고 과장하거나, 웃기려고 하면 안된다는 정의가 하나 생겼다. 누군가 경험했을 법한 일들, 그런 공감에 충실히 다가가야 코미디가 새롭게 다가오더라.
Q 아무래도 현실에서 '위기를 맞은' 40대 남성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라 중년 남성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거 같다. 본인도 중년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가진 고민들을 공감했나 A 권> 2030 여성 분들 타깃이었는데 빗나갔다.(웃음) 아마 배우 권상우라 공감을 못할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청약을 하지 않아도 되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벌만큼 번다, 뭐 이런 부분들. 하지만 다른 문제다. 어릴 때부터 데뷔해서 많은 사랑을 받은 시기도 있었지만 저 같은 경우는 허세도, 폼도 없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연기하지만 나한테 최고의 작품이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작품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위기감도 있다. 더 잘나갔을 때는 명품 브랜드에서 연락도 많이 오고 그랬는데 나이 먹으니까 연락 안 오고….(웃음) 어떻게 보면 일반 직장인보다 더 위기의 순간이 많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래서 'a저씨' 역할을 할 때 문제가 없었던 거 같다. 아무리 잘 나가는 배우라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다 위기에 놓인, 똑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위기의 X'에서 'a저씨' 역을 연기한 배우 권상우와 '아내' 역을 연기한 배우 임세미. 웨이브 제공Q 두 사람의 부부 호흡은 어땠는지A 권> (임)세미가 현장을 즐거워 했던 거 같다. 자기 역할을 잘해줬다. 주변에서도 둘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제가 봐도 잘했던 거 같다. 주변에서 세미에 대한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들어서 좋았다. 나와 호흡해서 나를 밟고 세미가 올라갈 수 있다면 즐거운 현상일 거 같다.(웃음) 정말 뿌듯했다. 세미가 앞으로도 섭외가 많이 되겠지만 '위기의 X'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됐으면 하는 파트너다.
임> 처음에는 선배님이 어려웠는데 너무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주눅 들거나 하지 않았다. 대선배로서가 아니라 오빠로, 아저씨와 아내 사이로 대화를 많이 했다. 있는 그대로 제가 하고 싶은 걸 잘 받아주셨다. 정말 존경스럽고 성실하다. 두 달 간 언제나 모이는 시간보다 30분 전에 현장에 와 있더라. 이런 선배님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성동일 선배와 다음에는 무슨 재밌는 걸 해볼까 아이디어 나누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다. 호흡을 걱정할 필요 없이 이런 (좋은) 결과물이 나올 줄 알았던 거 같다. 선배님 덕을 많이 봤고, 파트너가 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권> 맞다. (이런 선배님이) 별로 없다.(웃음)
Q '탐정' 시리즈에 이어 성동일과 이번에도 코미디 호흡을 맞췄다. '탐정: 더 비기닝'의 김정훈 감독님까지 세 명 조합이 남달랐을 것 같다. 또 다른 '평생의 파트너들'이 아닌가 싶은데A 권> 친한 동료 배우를 떠나서 가족 같은 형이고, 내가 어떤 대본을 받아도 (성)동일 형이 할 역할이 있으면 말씀드린다. 이번에도 형이 도와주셨는데 드라마 끝나고 좋은 반응이 오자마자 연락 드렸다. '함께 해주셔서 너무 신나게 연기했고, 감사 드린다'고 진지하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역시 답이 안 오더라.(웃음) 현장에서 만나면 함께 이 신을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배우를 하는 동안 평생의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성격에 맞는 작품을 만난다면 언제든지 같이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선배라고 생각한다. 코미디에 관해서는 천재인 거 같고, 보통 사람이 아니다.
감독님에게는 이미 신뢰가 있고 인품 자체가 저랑도 잘 맞는다. 사실 감독님과는 다른 작품도 개발하려고 이야기 중이다. 제가 영화 제작사를 만들었다. 내년에 공개 예정인, 직접 제작에 참여한 작품도 있고, 1순위로 감독님과 함께 하면 좋을 작품도 있다.
임> 감독님과 선배님 모두 코미디 장르를 많이 하셨다. 두 분 다 섬세하고, 웃음보다는 따뜻함과 공감이 일상에서 묻어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걸 선호하더라. 감독님은 디렉팅이 너무 섬세하고 자상하고, 좋은 분이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과학)'라고, 성동일 선배까지 세 분의 콤비가 참 부럽다. 반짝반짝하고 따뜻하고 재미난 관계다.
Q 코미디 장르에서 '망가짐'은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요소인데 스스로를 내려놓기 어렵진 않았나A 권> 배우가 작품 하면서 망가지는 건 거리낄 게 없다. 멋있는 역할을 안 해봤으면 모르겠는데 많이 했었다. 이 작품 안에서 내가 봐도 이렇게 해야 재밌을 거 같은데 표현을 하지 않는 건 배우로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망가져야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거라면 배우로서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 같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건 없다. 이 캐릭터를 사랑하고 즐겁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거 같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면 망가지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 또 다른 작품에서도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편해지고, 놓게 되고 그러면서 오는 여유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위기의 X'에서 'a저씨'의 '아내' 역을 연기한 배우 임세미. 웨이브 제공Q 6부작이라 아쉽게 마무리됐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많았다.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도 될까A 권> 공개 전부터 외부에서는 시즌2를 가자는 말이 나왔다. 반응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분노로 바뀌더라. '뭐야 이게 끝이야?'라면서. 사실 이 작품을 기다리는구나 싶어서 그 반응도 좋긴 했다. 또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우리에게 너무 많은 위기의 순간이 남아서 시즌2는 10부작 정도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 시즌2를 간다면 무조건 함께하고 싶다. 감독님과 선배님의 마음에 달려있다. 'a저씨'의 '아내' 역할을 마주했을 때도 저는 나무 한 그루였지만 제 안에 숲은 광대했다. 제가 생각하는 아내의 상을 혼자 풀어가고 상상하면서 작게 표현했지만 그날 그날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연기했었던 거 같다. 요즘 여성 위주 드라마나 작품이 많아서 여성들의 위기에 주목한 '위기의 Y'여도 좋을 거 같다. 이번 시즌에서는 아저씨가 중점이었지만 부부의 이야기 자체는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뭐가 됐든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Q 이제 한 장르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권상우가 생각하는 좋은 코미디란 무엇일까.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실패 가능성도 있는 제작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A 권> 코미디가 웃기려는 게 아니라 신에서 집중해서 나왔다, 들어갔다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코미디엔 따뜻함이 있어야 하고, 슬픔도 있다.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이 섞이는 작품처럼 사람들에게 깨우침도 있고, 웃긴 장면도 있고, 죽음으로 인해 눈물도 있고, 그런 작품들을 해보고 싶다. 제가 또 노력을 열심히 해서 재밌는 작품을 만들면 관객들이 대답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작품으로 많이 인사 드리고 싶다.
(작품 제작은) 이정재씨도 있지 않나.(웃음) 제가 당장 급하게 시작한 건 아니고 예전부터 시놉시스와 대본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갖고 있는 아이디어도 많고, 좋게 본 시나리오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내년에는 영화 '히트맨 2'를 먼저 찍고 그 다음 작품으로 인사 드릴 거 같다.
Q 제작발표회에서 "이번에 잘 안되면 은퇴할 각오"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매사 절박하게 작품에 임하는 거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A 권>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사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다. 한 두 작품이 잘돼도 지금 안되면 당장 온갖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생각을 해서 이번 작품은 무조건 잘돼야 한다, 어떻게든 재밌게 만들어보자, 벼랑 끝에 있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매 작품마다 위기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배우로서는 나이를 먹어 가면서 역할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심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한다. 가속과 감속을 조정해야 되는 타이밍인 거 같다. 제가 생각하는 과속은 들어온 작품을 잘 선택하는 거고, 감속은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참여해도 캐릭터의 좋은 요소를 보여주는 거다. 그런 속도를 잘 조절해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액션도, 코미디도 잘하면서 멜로도 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