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 '대한민국 길을 묻다 : 도전과 전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한반도에 욱일기가 걸릴 수 있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민주당은 북한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
철 지난 종북론과 친일론이 아무렇지도 않게 횡행하는 곳, 2022년 국회다. 분절된 민심의 장에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각 당의 고육지책이지만, 낡은 프레임 싸움으로 군사안보 관련 실질적 논의는 실종되고 염증만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한반도에 욱일기 걸릴 수도" vs 국힘 "극단적 친북 경계해야"
불을 댕긴 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한미일 동해 합동훈련 실시에 대해 "극단적인 친일 국방"이라고 지적한 것을 시작으로 연일 비판 메시지를 냈다. 지난 10일에는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발언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여권이 반발하자 "시대착오적 종북몰이와 색깔론 공세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했던 행태"라고 수위를 끌어올렸다.
국민의힘도 질세라 종북론 카드를 꺼내 들며 맞섰다. "한반도에 인공기는 걸려도 괜찮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극단적 친북(성일종 정책위의장)"이라고 받아치면서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게 아니라 내부에서 썩어 문드러졌다'고 주장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민주당은 정 위원장이 '전형적인 식민사관'을 갖고 있다며 맹폭을 가했다.
해당 논란은 '친일 족보 캐기'까지 이어지면서 점입가경인 모양새다. 민주당 임선숙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정 위원장의 조부가 창씨개명한 사실을 언급하며 공세를 폈다. 그는 "(정 위원장 조부는) 만주사변에서 공을 세운 것으로 조선 총독부가 공적 조서까지 작성해 준 사람"이라며 정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 위원장은 "식민사관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대표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글을 게재한 것에 대해서는 "역사의 진실을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받아쳤다. 민주당은 '외교·안보 긴급대책기구(가칭)'까지 꾸려 집중 공세에 나설 계획이다.
구태담론에 실질 논의 실종…"양 당이 정치역사 80년 전으로 되돌려"
국회사진취재단여야가 이토록 색깔론에 매진하는 이유는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친일, 종북 구도가 형성되면 거대 양당 입장에서는 사실 손해는 아니다"라며 "이 때문에 서로 선명한 목소리를 내려다보니 수위 높은 발언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야가 진영논리에 매몰되면서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문제나 실질적인 군사 운용 관련 논의는 사라진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건양대 윤형호 군사학과 교수는 "시대착오적인 담론이 오고가면서 실제 우리나라 안보를 위해 어떤 군사적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줄 지 논의해야지 피아식별 논의만 하는 것은 안보에 도움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색깔론을 벗어난 목소리는 당 외곽에서만 나오는 실정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1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개최한 외교·안보 전문가 행사에서 "중국의 군사 굴기와 북, 중, 러 북방 3각 연대의 부상에 따라 한, 미, 일 남방 3각 연대의 가동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정 위원장의 '조선 붕괴론' 발언을 겨냥해 "이재명의 덫에 놀아나는 천박한 발언"이라고 직격했다. 그러나 당내에 영향은 미미한 상태다.
광운대 진중권 교수는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민주당이) 친일파가 아니다 이러면서 해방 전후사를 쓰고 있다"며 "(일본과 전략적 교류로) 서로 윈윈하면 될 문제지 이걸 가지고 욱일기가 어쩌고저쩌고 이런 얘기하는 것은 정말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 발언에 대해서도 "뉴라이트 망언이다. 식민사관이고"라며 "양 당이 지금 우리나라 역사를 8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하대 박상병 정책대학원 교수는 "색깔론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양당이 적대적 공멸관계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이 프레임 속에서 민생은 사라질 수밖에 없고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친일·종북 논란이 국정감사장으로 확전하며 제대로 된 감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 민주당이 '윤건영 의원이 수령님께 충성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냐'며 과거 발언을 문제 삼자 "그런 점도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회의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빚어졌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은 "(민주당은) 우리에게 친일이라고 했다. 우리도 모욕감을 느꼈다"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