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민정수석실' 폐지, 득보다 실이 컸다 ②'국민과 가까이' 용산시대 초심 어디로…대통령실에 '장벽'이 생겼다 ③선명한 '親美'로 복귀…新냉전구도 편입의 빛과 그림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선은 한 마디로 명약관화(明若觀火)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과는 대비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철학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 가치에 기반한 국제사회의 연대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군사·안보의 동맹을 넘어 기술·경제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한미 동맹으로의 격상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이를 토대로 한 대북 정책 그리고 북한 문제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글로벌 현안에서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부지런히 움직였다. 취임 11일 만에 한미정상회담을 했다. 역대 대통령 중 취임 후 가장 빠른 한미회담이었다. 이 회담을 통해 양국은 기존의 군사 동맹을 넘어 경제와 디지털·반도체·청정에너지 등 기술 분야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진화했다고 당시 대통령실은 평가했다.
이어 지난 6월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고, 이곳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4년 9개월 만에 열린 회담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의 재개를 알리는 자리였다. 그리고 세 정상은 5개월 만인 지난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다시 만나 대북 확장억제 강화와 북한 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 등을 발표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지난 11월 한일 정상회담을 하며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지난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이러한 일련의 외교 노선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윤 대통령은 프놈펜에서 자유·평화·번영을, 3대 협력 원칙으론 포용·신뢰·호혜를 제시하며 한국판 '인·태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면서 그 대척점에 있는 북·중·러와는 외교적으로 대립각을 가지게 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이른바 신(新) 냉전구도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이 명확히 정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상하는 중국…한미일 공조는 단단할까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한국이 일본과 더불어 동북아시아의 전초기지 역할을 자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에게 "진정한 다자주의를 함께 만들어 세계에 더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안정성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중심의 '단극주의'에서 벗어나라는 표현을 에둘러 한 셈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2016년 경북 성주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당시 현대·기아자동차의 중국 판매량은 급감했고, 롯데마트는 중국 내 점포 대다수가 문을 닫았다.
한미일은 지난 11월 '프놈펜 성명'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 안보 등 포괄적으로 모든 이슈에 3국 연대를 공고히 해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합의나 프로세스가 발표된 것은 없다.
지난달 13일 프놈펜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연합뉴스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전문가는 "프놈펜 성명이 구체화된 절차와 과정에 대한 합의로 이어지지 않으면, 자칫 말뿐인 성명이 될 수 있다"면서 "그 부분에서의 성과가 윤석열 정부 외교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新냉전구도 속에 더욱 꼬인 北문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한 강력한 대북 압박이 동북아시아의 긴장 수위를 높인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북한은 동.서해상에서 포격을 하며 무력 시위를 하는가 하면, 지난달 18일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 일본에는 한때 대피 경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북한은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친 상황이어서 언제든지 핵실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담대한 구상'은 이명박 정부 시절 발표됐던 '비핵3000'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우리 측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함께 전폭적인 경제 지원을 해준다는 큰 틀에서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만, 담대한 구상의 이행이 △초기조치 △실질적 비핵화 △완전한 비핵화 등 3단계로 구분돼 있어, 초기조치부터 협상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비핵3000'과 차이가 있다.
조성렬 전 국가전략안보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 구도에서는 북한 문제를 더 풀기 어렵게 돼 있다"면서 "한미일과 북중러 대결 구도에서 남북 간 갈등은 북측이 더욱 중국과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비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日방위비 2배 증액… 동북아 군비 경쟁 가속
일본은 지난 6월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에서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 기본방침'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올해 5조4005억 엔(약 52조원)인 방위비는 2027년에 10조 엔(약 1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번째 국방비 지출이 큰 나라가 된다. 동북아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작년 11월 27일 도쿄 네리마구 등에 있는 육상자위대의 아사카 주둔지에서 병력을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일본 방위비 증액과 관련해 "일본 열도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는데 국방비를 증액 안 하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는 외교부의 입장과 다소 차이가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인 지난 5월 24일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방위비 증액 관련 "정부는 일본의 방위 안보 정책이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오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이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군비 증강을 큰 폭으로 하는 상황"이라면서 "주변국에 대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안보 체계와 국방력 강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