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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김일성 따라하다 다시 김정일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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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북한

    北 김정은, 김일성 따라하다 다시 김정일 방식으로?

    핵심요약

    권력승계 후 선군정치 선 긋고 당 중심 통치체제 복원
    하노이 노딜·코로나 이후 비상체제 가동으로 新 선군양상
    軍 역할 대폭 확대, 국방만이 아니라 경제 주요 분야 투입
    김정은 올해 공개 활동 중 절반 이상이 군사 분야
    김정은 시대 軍은 여전히 활용되고 통제되는 '객체'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정당화되는 선군 '핵 강화해야 경제발전'
    김일성 김정일과 다른 김정은 통치방식, 관건은 경제성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일을 하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제목이 '동지애의 노래', 김정은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노래라고 했다. 노래를 다 부른 뒤 앞에 있는 간부들에게 아버지 김정일에 대해 언급했다.
     
    김정은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 노래를 제일 사랑 하신다"며, "노래에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장군님의 선군영도를 받드는데서 가는 길 험난해도 시련의 고비를 함께 넘고 불 바람이 휘몰아쳐 와도 생사를 같이하여야 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서 한번 다진 맹세를 절대로 변치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선군영도'를 계승해야 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북한 인민들의 교양교재인 노동신문 3월 14일자가 전한 일화이다. 
     
    사실 김정은은 지난 2012년 권력을 승계한 뒤 김정일의 정치방식인 선군정치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었다. 반면 김정은을 대표하는 직함은 현재 당 총비서이다. 김정은은 권력승계 뒤 군을 '혁명의 주력'으로 앞세우는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처럼 당 중심의 통치체제를 복원시켰다. 당 대회, 당 정치국 회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등 당 회의체가 부활됐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김일성이 아니라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 선군영도를 연상시키는 흐름이 생겼다. 군이 국방만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건설, 경제건설, 농사, 비상방역 등 사회 전 분야에 투입됐다. 
     
    기점은 지난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로 비상체제가 가동되면서이다. 하노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결렬로 대북제재 해제의 길은 차단됐다. 제재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스스로 국경의 문을 닫아 대외무역이 단절됐다. 외부 자원조달이 막히자 북한은 자력갱생을 외치며 경제를 재집권화하고 장마당을 통제했다. 90년대 쓰였던 '고난의 행군'구호가 다시 나왔다. 
     
    80년대 말 사회주의권 붕괴로 국제 원조가 끊기고 한소·한중수교에 따라 외교적으로도 고립되는 위기 상황에서 당 조직의 역할이 무력화되자 군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한 것이 바로 김정일의 선군정치이다. 군은 국가보위만이 아니라 각종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사회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으로 '혁명적 군인 상'이 제시되면서 통제 역할도 담당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김정은은 지난해 5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십만 명의 발열환자가 발생하는 등 통제 불능의 위기에 처하자 특별명령으로 군을 투입했다. '인민군대 군의부문'으로 하여금 민간에 의약품 공급을 하게 한 것이다. 비상체제가 가동되는 한 군대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북한도 그렇다. 당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에서도 90년대 선군정치의 기시감이 드는 이유이다.
     
    김정은 시대 군의 역할을 잘 보여준 회의가 지난 13일 한미 자유의 방패 훈련 직전에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이다. 핵과 경제를 병진하는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다. 
     
    한미훈련에 대응해 전쟁 억제력을 공세적으로 활용하는 '중대 실천조치'를 결정하는 한편 "농촌진흥과 지방건설, 사회주의 대 건설을 가속화하기 위한 인민군대의 활동방향과 구체적인 임무"도 확정했다. 한미의 대규모 연합훈련이 진행되는 기간에도 군대를 도시와 농촌건설, 경제건설, 농사 등 생산 현장에 파견하는 조치를 결정한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 바로 핵과 경제의 병진논리이다.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핵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기존의 재래식 군대는 경제 현장에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 회의에서 인민군대를 한껏 치켜세웠다. 인민군대가 "온 사회를 선도"해야 하고, "사회주의 농촌건설과 경제발전의 성스러운 전구에서 인민군대는 마땅히 투쟁의 주체가 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강조국 건설의 맨 앞장에 인민군대를 또다시 세워"줬다는 북한의 평가는 이른바 '선군'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회의 이후 북한의 청년 140만 명이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군 입대와 재 입대를 신청했다는 것도, 한때 줄였던 북한 남녀의 군 복무기한을 다시 3년 더 늘렸다는 것도 최근 확대되고 있는 군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북한 "21~23일 핵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시험". 연합뉴스북한 "21~23일 핵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시험". 연합뉴스
    김정은은 연합훈련기간에 화성17형 ICBM 발사훈련, 핵 반격 종합전술훈련, 핵 어뢰 수중폭발시험 등 전쟁 억제력을 공세적으로 활용하는 군 대응을 진두지휘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정은은 올 들어 최근까지 20회의 공개 활동을 했다. 이 중 군사 분야가 11회로 절반을 넘는다. 경제 분야가 2회, 사회문화 2회, 정치 분야가 4회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총 104회의 공개 활동 중 군사 분야가 40회로 가장 많았다. 정치 분야가 38회, 사회문화 12회, 경제 9회, 기타 4회, 대외 분야가 1회에 그쳤다.
     
    이처럼 김정은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군사 분아였다. 군사를 중심으로 하는 김정은의 공개 활동 추이는 사실 하노이 노딜 파문과 코로나 19로 비상체제가 가동되면서 이미 노정된 일이었다. 
     
    물론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와 다른 점이 아직은 훨씬 많다. 군대의 위상과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군은 활용되고 통제되는 '객체'이다. 승승장구하던 박정천은 올 들어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서 해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무리 김정은의 신임을 받는 군 실세라고 해도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이다. 김정일 시대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총 정치국장의 위세는 이제 없다. 북한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 5인 중 군 관련 인사는 전략무기를 담당하는 리병철 1명뿐이다. 
     
    김정일 시대와 가장 큰 차이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력한 뒷배가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처럼 남북협력이 없어도 중국으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을 수 있고, 러시아로부터 다양한 첨단무기 기술을 얻어 핵 국방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 냉전 구도가 강화되는 가운데 진영의 후원 속에서 장기적인 생존과 함께 중장기적 발전 전략을 도모할 수 있다. 김정은이 표출하고 있는 자신감의 근원이다.
     
    선군, 선군영도와 같은 레토릭으로 군을 사회를 선도하는 '선봉장'이자 '본보기'로 내세우고 있지만 기본은 인민대중제일주의다. 핵 국방력을 갖췄기 때문에 군대의 각종 자원을 경제로 돌려 인민의 생활개선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민의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인내하며 핵 국방력을 더 강화해야할 이유를 역설적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에서 찾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향후 군 정찰위성 발사, ICBM 정각발사, 7차 핵실험 등 강력 도발을 이어간다고 해도 이는 한미에 대한 적개심만이 아니라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정당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일과도 다르고 김일성과도 다른, 양자를 섞어놓은 것 같은 이런 통치방식은 후일 '김정은 주의'로 명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관건은 성과일 것이다. 북중러의 진영 속에서 핵 무력을 강화해 생존에 성공해도 결국 경제발전과 인민들의 생활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군을 앞세우는 비상체제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고, 결국 아버지 시대의 선군정치로 퇴행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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