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저축은행을 떠나는 이고은. 한국배구연맹페퍼저축은행의 주전 세터로 활약한 이고은(28·170cm)이 친정팀 한국도로공사로 돌아갔다. FA(자유계약선수) 이적 후 한 시즌 만에 복귀했다는 점에서 의아한 대목이다.
한국도로공사는 26일 "박정아(30)의 FA 이적에 따른 보상 선수로 이고은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페퍼저축은행으로부터 보호 선수 명단을 받고 고심 끝에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박정아는 2022-2023시즌 도로공사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그런데 지난 17일 페퍼저축은행과 3년 총액 23억2500만 원에 FA 계약을 체결하고 도로공사를 떠났다. 흥국생명에 잔류한 '배구 여제' 김연경이 받은 여자부 보수 상한선인 7억7500만 원의 최고 대우를 받았다. 도로공사 입장에선 박정아의 이탈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이적에 따라 페퍼저축은행은 A그룹(연봉 1억 원 이상)에 속한 박정아의 전 시즌 연봉 4억3000만 원의 200%인 8억6000만 원의 보상금과 보상 선수 1명을 도로공사에 내줘야 했다. 도로공사는 페퍼저축은행이 정한 보호 선수 이외의 선수 1명을 지명할 수 있었는데, 페퍼저축은행이 이고은을 보호 선수로 묶어두지 않아 이번 이적이 성사된 것.
2021-2022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취득한 이고은은 연봉 3억3000만 원을 받고 도로공사를 떠나 페퍼저축은행에 새 둥지를 틀었다.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주전 세터로 활약, 33경기에 출전해 세트 4위(세트당 10.057개)를 기록했다.
한국도로공사로 돌아온 이고은. 한국배구연맹
이고은이 떠났지만 페퍼저축은행에 남은 세터는 박사랑(20·178cm), 이현(22·174cm), 구솔(22·181cm) 등 3명으로 부족하진 않다. 하지만 지난해 이고은을 여자부 세터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을 주고 데려왔음에도 너무 쉽게 놓아준 점은 의문이다. 현재 여자부 세터 연봉 1위는 이번에 FA 계약을 체결한 KGC인삼공사 염혜선(32·3억5000만 원)이다.
도로공사에는 올 시즌 챔피언 결정전 우승 주역인 이윤정(26)과 백업 안예림(22), 신인 정소율(19)까지 총 3명의 세터가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도로공사가 세터 포지션을 보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고은을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도로공사가 박정아의 보상 선수로 이고은을 지명해 적잖게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2018-2019시즌 남자부에서 성사된 세터 노재욱(31·삼성화재)의 이적 사례와 비슷하다. 당시 현대캐피탈이 아웃사이드 히터 전광인을 FA로 영입하자 한국전력은 보상 선수로 노재욱을 지명했다. 현대캐피탈 역시 주전 세터였던 노재욱을 보호 선수로 묶어두지 않은 것. 그런데 노재욱은 한국전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해 우리카드로 이적, 2020-2021시즌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화재로 적을 옮겼다.
페퍼저축은행은 큰 돈을 쓰고 국내 최고 아웃사이드 히터 박정아를 데려왔지만 주전 세터 이고은을 붙잡진 못했다. 올 시즌 이고은(122세트) 다음으로 팀 내 가장 많은 세트를 소화한 박사랑(78세트)이 다음 시즌 팀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박사랑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해 팀을 진두지휘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현재로서는 주전 세터를 잃었다는 점이 치명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2021년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최근 두 번째 시즌을 마쳤다. 막내 구단인 만큼 프로의 높은 벽을 절감하고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번 FA 시장에서는 통 크게 지갑을 열었지만 이고은을 놓치는 등 경험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주전 세터 없이 다음 시즌을 잘 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