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국가산단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작성해온 근무일지에는 근무자와 작업 내용, 근무시간 등이 기록되어 있고 작성자인 하청 노동자와 원청 직원들의 검토와 확인, 승인 결재라인이 담겨 있다. 최창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단독]여수산단 BCK 블랙카본 실험실 '불법파견' 의혹 (계속) |
전남 여수국가산단 입주기업인 비를라카본코리아가 20년 넘게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직접 작업지시를 내리는 등 사실상 불법파견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동차 타이어의 주원료가 되는 카본 미세분말을 만드는 비를라카본코리아는 인도자본인 비를라가 운영하는 다국적기업이다.
비를라카본코리아 실험실에서는 석유 가공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오는 불순물인 블랙카본을 석유화학 업체들로부터 공급 받아 주원료와 가공 제품의 샘플을 확보해 품질을 검사하는 일을 해왔다.
CBS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한 비를라카본코리아 실험실 근무일지를 보면 원청인 비를라카본 직원들이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관리 감독하고 근무 지시를 내린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난해 1월에 작성된 '선진근무일지'에는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근무 시간과 작업 내용 등을 작성했다.
이 문서의 검토, 확인, 승인 등 결재라인은 모두 원청인 비를라카본코리아 소속 기장과 팀장 등 직원들로 채워져 있다.
20년 가량 비를라카본 실험실에서 근무한 A씨는 CBS노컷뉴스와 만나 "현장에서 생산이나 출하된 제품을 분석하는 일을 해왔다"면서 "6명의 하청 노동자가 실험실에 근무했고 원청 소속 기장이 근무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원청에서 추가되는 분석을 지시가 내려오면 서명을 했다"면서 "원청 직원과 한 공간에서 있었고 업무는 분리되어 있는데 원청이 해야할 일을 우리가 업무지시를 받아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산단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가운데 공장 안에 대형 트레일러들이 계속해서 드나들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창민 기자또 다른 근무자 B씨도 "실험실에서 분석 업무를 할 때 원청과 일대일로 근무를 했다. 원청 직원이 한 공간에서 바로 업무 지시를 내렸다"면서 "하청 회사에서는 우리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파견을 보낸 것 같다. 하청 회사에서 한 번도 업무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 5조 5항을 통해 불법파견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광주전남노동상담소 신명근 소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도급이라면 하청 직원의 근무 형태나 시간에 관여하면 안되는데 업무 일지 내용을 보면 근무 배치, 근무 시간 조절, 시간표 등을 원청이 관리감독하고 있다"면서 "이는 법률상 파견법의 불법파견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비를라카본코리아 관계자는 "실험실 근무 형태에 대해서는 노무사 자문을 받았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수산단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노조는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68일째 총파업을 벌이고 있으며, 두 명의 노동자가 지난 8일부터 공장 내 사일로 탱크 옥상을 점거하고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파업 노동자들의 최후의 투쟁 수단으로 여겨지는 고공농성이 시작된 가운데 원청의 불법파견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번 파업 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전남 여수국가산단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노조 지도부 2명이 지난 8일부터 40M 높이에 사일로 탱크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장 외부를 둘러싼 철조망에 핀 장미 꽃이 이들을 응원하는 듯하다. 최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