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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 '강제동원' 재판에 이제야 나온 일본…여전히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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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B컷] '강제동원' 재판에 이제야 나온 일본…여전히 당당했다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황진환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황진환 기자
    오늘 '법정B컷'이 전해드릴 재판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낸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일본 전범 기업 측이 11일 드디어 한국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강제동원 범죄에 대한 손해 배상을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을 통해 배상하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직후 일어난 모습입니다.

    다만 그들의 입장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강제동원 자체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더 나아가 재판을 진행해선 안 된다며 절차상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이 재판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1심에서 각하로 원고 패소 판결한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시간만 끌던 日기업이 재판에 나왔지만…"강제동원 없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기나긴 싸움. 우선 이번 소송의 시작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 송모 씨 등 80여 명은 지난 2015년 5월,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며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냅니다. 스미세키 마테리아루주, 미쓰비시 중공업, 닛산화학, 일본제철, 니시마츠 등 흔히 알려진 전범 기업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이 소송에 나설 수 있었던 것에는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1, 2심 판결을 뒤집는 반전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 취지로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1, 2심과 달리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사법부를 질타하며 일본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죠.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배상 등의 문제가 끝났다'는 일본을 포함한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청구권 협정에선 그러한 논의나 합의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기에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부 간의 정치적 합의일 뿐, 개인에 대한 손해 배상까지 포함하는 협정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2012.05.24 대법원, 日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선고 中
    재판부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 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외국 판결 승인 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판결 이유는 일제 강점기의 강제 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 질서에 위반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일본 판결을 승인해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한일청구권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 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중략)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反)인도적 불법 행위나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이 판결은 이후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됩니다.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손해배상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고, 일본 측에 배상 책임이 있음을 알린 유의미한 판결이었죠.

    일반적으로 대법원의 판결(판례)은 다른 법원이 결론을 내릴 때 고려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자 참고서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강제동원 피해자 송씨 등이 스미세키 마테리아루즈를 상대로 낸 소송도 결과가 밝을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하지만 2021년 6월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 심리로 열린 1심 재판은 시작 1분 만에 각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6년이 걸린 싸움의 답을 듣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겁니다.

    2021.06.07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 日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선고 中
    오후 1시 58분 재판부 입정

    재판장(김양호 부장판사)
    "판결문이 좀 길어요. 결론만 말하고 판결문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자들에게는 보도자료를 공보관실 통해 보내겠습니다. 개인의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곤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결론입니다. 


    "주문, 이 사건 소를 모두 각하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소송 모두 각하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오후 1시 59분 재판 종료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각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근거는 '비엔나 협약'이었습니다.

    2021.06.07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 日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판결문 中
    "비엔나협약 제27조 전단은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약을 체결한 당사국이 자국 내에서 제정한 법 또는 선고한 판결 등 국내적 법 사정으로 조약이행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면, 국제 질서의 혼란과 이로 인해 국제 평화를 위협하게 됩니다"

    "위와 같은 법리를 토대로 이 사건을 보면,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 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적 법 해석입니다. (중략) 따라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구속됩니다"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이 청구권 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피해자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즉각 항소합니다. 그렇게 이번 소송은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구회근 부장판사)에서 2심 재판이 열리게 됐습니다.

    2015년 시작된 1심 소송에는 80여 명의 피해자들이 참여했지만, 2021년 8월 제기돼 현재 진행 중인 2심 소송은 참여자가 10여 명 남짓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피해자들이 고령이다 보니 고인이 되신 분들도 있고, 소송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죠.

    일본의 2심 재판 전략은 철저한 시간 끌기, 무대응입니다. 보통 국가 간의 소송 서류는 각국 정부 기관을 거쳐 당사자들에게 전달됩니다. 이번 소송의 경우라면 한국 법원→ 법원행정처→ 일본 외무성→ 일본 법원→ 일본 기업의 순으로 서류가 오고 가야 하지만 일본 정부가 송달을 거부하면서 재판 자체가 멈춰버린 겁니다.

    그랬던 일본 기업들이 올해 4월부터 소송을 맡아 줄 변호인을 순차적으로 선임하기 시작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3월 6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을 통해 지급하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직후 기류가 바뀐 겁니다. 그리고 이달 11일 일본 기업 측 변호인들이 드디어 법정에 등장했습니다.

    "정치적 상황도 바뀌었으니"… 日 "자료가 없는데 뭘 냅니까?"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걷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걷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각계의 반발에도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며 '물 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 컵은 더 채워질 것이다'라고 말했죠.

    하지만 이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일본 기업 측의 태도는 과거 그대로였습니다. 이날 동시에 진행된 '스미세키 마테리아루즈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과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임금 소송'에서 일본 기업 측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2023.05.11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 미쓰비시 강제동원 임금 소송 中
    피해자 측 "재판부도 아시겠지만 망인 등이 구체적으로 어느 회사, 어느 사업장에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배에 올라탔고, 심지어 조선국인지 일본국인지도 역사적으로 봤을 때 몰랐던 상황입니다. 장소를 일일이 특정하는 것은 오래전 일이고, 대부분 사망하신 분들이라 쉽지가 않습니다"

    재판부 "최소한의 연결 고리를 찾아야 일본 기업의 영향이 미치는 사업장에서 징용됐다는,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어야 인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혀 없으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략) "미쓰비시 중공업은 관련 자료를 찾아서 제출할 생각은 어떤가요?

    미쓰비시 측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갖고 있지 않을 것을 어떻게 제출하는지… 또 그때와 지금 기업은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기업입니다"

    피해자 측 "자료가 모두 일본 측 일본 기업이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증언자들이 이를 입증할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재판부 "제출 명령을 해도 피고(미쓰비시)는 똑같은 입장일 것 같고…(중략) 원고 측은 각 원고 별로 정리해서 미쓰비시에서 근무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자료가 무엇이 있는지 정리해 주세요. 미쓰비시는 일체 자료가 없다는 것이죠?"

    미쓰비시 측 "네"

    재판부 "변호인 주장인가요? 아니면 실제로 없다는 겁니까?"

    미쓰비시 측 "제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없다고 하니까요. 뭐"

    재판부 "확인하시죠. 그리고 미쓰비시가 일제 시대와 다른 회사라고 하는데, 대법원 확정 판결로는 그 회사가 그 회사라고 법률적 판단을 했습니다. 일본 전후 특별법으로 새 회사가 설립됐지만, 그래도 기존 자료는 이관된 것으로 압니다"


    무대응 전략으로 버티다 이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일본 기업 측은 강제동원도 없고, 그렇다 보니 이와 관련해 제출할 자료도 없다며 다소 고압적인 모습을 보였죠.

    '물 잔의 반은 우리가 채웠으니, 이제는 일본이 호응할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제3자 변제안이 발표된 후임에도 입장 변화가 전혀 없는 일본 기업 측에 재판부도 한 마디를 던집니다.

    2023.05.11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 미쓰비시 강제동원 임금 소송 中
    재판부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일본 회사들도 대리인 선임해서 재판에 임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자료를 찾아봐달라고 해보세요. 있으면 일본 기업 측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피해자 측 "저희가 신청한 원고들만이라도 일단 제출을… 또 지금 한일 관계에서 배상 문제는 어느 정도 정치적 결정이 내려진 상태라서요. 특별히 오래 끌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재판을 줄곧 무시하다 제3자 변제안 발표 직후 변호인을 선임한 일본 기업 측을 꼬집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느끼기엔 일본 기업 측은 당당했고, 오히려 우리가 '정치적 상황이 달라졌으니 자료 좀 제출해 달라'라고 매달리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러자 일본 기업 측은 이번엔 "2심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며 스미세키 마테리아루즈 손해배상 재판 절차에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2023.05.11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 스미세키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中
    일본 기업 측 "재판장님, 허락해 주시면 법률적 의견 하나만 말하겠습니다. 이 사건은 1심 재판부에서 첫 기일에 한일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각하 판결했습니다. 그래서 1심의 각하판결이 정당하다면 원고들의 항소는 기각해야 합니다"

    "만약 각하가 부당하다면 파기해야 합니다. 민사소송법 418조에 따라 전혀 심리가 안 된 사건입니다. (중략) 418조에 따라 환송해야 합니다"

    재판부 "법률적 의견을 주시면 판단하겠습니다"

    일본 기업 측 "중간 판결로 해결해야 합니다. 서면으로 정리하라고 하시니 이건 서면으로 내겠습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현행 민사소송법 418조(필수적 환송)는 2심 재판부가 1심 각하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취소할 경우엔 사건을 1심 재판부에 되돌려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2심 재판부가 판결할 수 있을 정도로 1심 재판에서 심리가 이뤄졌다면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2심 재판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1심 재판은 심리를 하지 않은 채 각하했기에 사건을 다시 1심으로 돌려보내 진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 겁니다. 2015년 시작된 소송이 다시 1심부터 시작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 발표 이후 열린 재판. 일본 측에 다소 변화가 있을까 했지만 해방 이후 80년이란 시간이 대신 증명해 준 것처럼 그들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100년 전 일', '과거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과거는 너무나 끔찍한 전쟁 범죄였습니다. 현재의 그들은 너무나 당당합니다. 그리고 미래로 가는 길을 막는 자는 누구일까요? 과연 피해자일까요? 이번 재판이 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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