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야간 및 휴일 진료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 북부의 달빛어린이병원은 튼튼어린이병원을 포함해 두 곳뿐이다. 이은지 기자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은 의원급인 박승남 소아과와 함께 경기 북부를 책임지는 유이(唯二)한 '달빛어린이병원'이다. 경증 소아환자가 심야나 공휴일에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당직을 세우고 정부 지원을 받는 공공 심야 어린이병원을 이른다.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10%대로 급락하고 병원 문 열기만을 기다리며 번호표 전쟁을 치르는 '소아과 오픈런'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정부가 내세운 카드가 '달빛어린이병원 지정 확대'다.
'진료 사각지대 해소'라는 취지는 좋지만 현장에서는 달빛어린이병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이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는 얘기
가 나온다. 소아과 전문의 5명과 가정의학과 전문의 1명(야간 당직)이 근무하는 튼튼어린이병원은 월요일인 지난 24일 오후에도 로비가 거의 만석이었다. 수액을 달고 소파에 누워있는 아이들과 안내데스크의 '호명'을 기다리는 보호자들의 초조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미 터진 폭탄을 수습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자꾸 우리 보고 '뭘 더해라', '24시간 진료해라'라고 하는 거예요. 저희 병원이 아침 9시에 여는데 밤 12시에 와서 입원하겠다고 병원 복도에서 주무세요. 그래야 자기 차례가 빨리 되니까…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럼 다른 데는 입원이 가능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그런 아이들은 (빨리) 치료를 안 하면 위중증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치료만 딱 하면 2~3일이면 (상황이) 끝나는 거예요." 대한아동병원협회 최용재 학술부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이 24일 오후 '전국 아동병원 소아 응급환자 진료실태 조사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대한아동병원협회 학술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용재 튼튼어린이병원장은 이날 병원 부설 의학연구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튼튼어린이병원은 베드(병상)가 50여 개인 병원급이긴 하나, 몇 백 개 이상의 병상을 보유한 상급종합병원에는 당연히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정도 규모 병원이 입원·진료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하다 보니 중증도가 있는 응급환자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아동병원협회는 이날 전국 아동병원 대표 원장 등을 대상으로 지난달 초 실시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케이타스(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분류된 환자의 진료가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KTAS는 캐나다의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CTAS(Canadian Triage and Acuity Scale)를 국내 의료상황에 맞게 변형·개발한 지표다. 단순히 응급실 내원 환자의 진료순번을 정하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병원 전(前) 단계를 아우르는 응급의료체계를 구성하려는 취지였다.
통상 3등급 이상은 응급이자 중증 환자군으로 보고, 1등급에 가까울수록 중증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4~5등급은 비(非)응급·경증 환자군에 해당한다.
대한아동병원협회 제공117개 아동병원 중 90개 병원이 설문에 응한 가운데,
전체 81%(73곳)는 KTAS 3등급에 속하는 응급환자가 내원할 경우, 진료시간에는 직접 처치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19%(17곳)만이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중증 응급'인 2등급에 대해서는 절반(51%·46곳)이 '내가 보던 환자에게 이런 증상이 생기면 직접 처치한다'고 답변했고, 외부 환자더라도 직접 보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18%(16곳)였다. 약 70%의 아동병원이 KTAS 2등급도 진료가 가능하다고 밝힌 셈이다.
중증도가 가장 심각한 1등급의 경우에도 49%(44곳)가 환자를 보겠다고 밝혔다. 타 병원 이송을 택한 비중(51%·46곳)과 큰 차이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경증인 4등급(준응급)과 5등급(비응급)은 내원환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답한 병원이 각각 77%(69곳), 88%(79곳)로 훨씬 많았다.
이번 설문 조사를 진행한 최 부회장은 "대학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 등이 소아의 방문조차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아동병원이 응급 소아환자를 직접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골든타임'을 지키려면 1시간 이내 병원에 도착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데, 아동병원이 응급진료체계에서 이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부회장은 지난 5월 급성 폐쇄성 후두염(크룹)으로 10곳의 병원을 전전하다 숨진 고(故) 오정욱군(사망 당시 5세)을 들어 소아 응급진료체계가 개편되지 않으면, 치명률이 3만 명당 1명 수준인 후두염으로도 사망하는 아이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아동병원은 전문의가 소아환자를 보는 즉시 진료 가능여부가 판별되고 유기적 진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거점별 응급의료센터와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정부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공정한 경쟁(fair competition)이 안 된다"고도 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여름철 이례적인 독감 유행으로 소아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이같은 분위기라면 소아응급 환자 뺑뺑이 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이은지 기자
결국
'소아환자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현재 응급환자 진료에 시간과 인력을 투입 중인 아동병원에 대한 손실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 상태로는 추가지원이 어렵다고 하니,
소아응급의료체계에 아동병원을 정식으로 편입시켜 관련 지원을 해달라는 의미다. 중증응급환자를 보느라 대기하던 일반 환자의 진료가 밀리고 민원이 발생하는 데 따르는 소모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최 부회장은 "소아진료 체계란 게 18세 이하 아이들을 소아과 전문의가 보든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보든 현재로선 진찰료가 똑같다"며 "아동병원은 수액도 맞히고 특히 응급실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를 다 하고 있으니 그 진료에 상응하는 수가를 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럼 '(결국) 돈 얘기냐'라고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앞으로 3~7년간은 소아과 의사가 (더) 안 나온다. 그럼 있는 의사를 잘 배분해 '있는 병원'들이 안 쓰러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사치스럽게 선진의학을 내놓거나 공부할 때가 아니다.
KTAS 3~5등급의 소아환자를 안정적으로 보지 못하면 다 죽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동병원협회는 하반기 개최 예정인 추계학술대회에서 이 조사결과를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현장에서 당장 사망률이나 유병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중증 대응역량 강화 교육도 강화하기로 했다. 협회는
"지역 아동병원이 참여하는 새로운 소아 응급환자 진료시스템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며 당국의 움직임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