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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에도 여전히 '두려운' 치매…슬기로운 대응방법은?

보건/의료

    초고령화에도 여전히 '두려운' 치매…슬기로운 대응방법은?

    치매극복의 날(9월 21일)·노인의 날(10월 2일) 기념 전시회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클리닉 진료환자 4명 그림 15점 선보여
    주치의 임선진 과장 "몸 아픈데 이상없다? 노년기 우울증일 수도"
    "기억력 떨어진다고 다 치매 아냐…'가성치매'가 동반되는 경우多"
    '할 수 없는' 일 정해놓기보다…가용범위內 운동·고른 食생활 중요
    "지역사회 치매인프라, 고령화 속도 못 따라잡아…인식개선 교육必"

    강희경씨가 그린 '라벤더 바닐라 꽃'. 강씨는 "휴지 포장지 그림이 화사해서 그렸더니 꽃 선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내 마음도 부드러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은지 기자강희경씨가 그린 '라벤더 바닐라 꽃'. 강씨는 "휴지 포장지 그림이 화사해서 그렸더니 꽃 선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내 마음도 부드러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은지 기자
    반 고흐의 붓꽃(아이리스)과 매우 흡사한 정물화부터 기대 이상이었다. 딸이 한 박스째 보낸 사과를 베어 물었더니 단물이 너무 많아서 그렸다는 '꿀사과', 곽휴지 포장지에서 빼온 라벤더 바닐라가 강렬했다면, 고향의 빨래터와 나무 그네까지 깨알같이 담아낸 그림에선 천진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서울 광진구 중곡동 소재 국립정신건강센터(갤러리 'M')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사랑은 삶을 꽃피우네>
    (그림 15점)에 최다 출품한 강희경씨의 작품들이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해도 충분히 감탄할 만한 완성도였다.
     
    4명의 전시작가 중 유일한 남성인 강호현씨는 숲 속 물가에 은은하게 빛이 스며든 풍경을 섬세한 유화로 그려냈다. 해바라기 이파리를 베고 평화롭게 잠든 고양이의 모습은 "해바라기의 열정과 고양이의 여유로움을 통해 우리 모두 정신세계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변(辯)이다.
     
    전시작가 4명 중 유일한 남성인 강호현씨의 작품.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열정과 귀여운 고양이와 같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통해 우리 모두 정신세계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은지 기자전시작가 4명 중 유일한 남성인 강호현씨의 작품.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열정과 귀여운 고양이와 같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통해 우리 모두 정신세계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은지 기자
    그런가 하면 유치원 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김은숙씨는 동해 해변의 조개껍질을 소재 삼아 어린이들과 봄날의 목련꽃을 묘사했다. 충남 서산 해미읍성이 고향 집이었다는 한순자씨는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를 연상케 하는 색감과 화풍으로 꽃과 나무·새 등을 선보였다.
     
    전문화가 못지않은 실력들이지만, 사실 이들은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클리닉에서 노년기 우울증·치매 등으로 진료를 받아 온 환자들이다. 센터는 9월 21일 '치매 극복의 날' 및 오는 2일 '노인의 날'을 기념하고 노인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명(名)은 희경씨의 시 한 구절("희망의 부푼 마음은 삶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언젠가는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우리")에서 따왔다.
     
    한순자씨가 그리고 색을 입힌 '나의 살던 고향'(왼쪽). 집 근처 뒷동산의 꽃과 나무, 새가 어울리는 모습을 담았다. 오른쪽은 유치원 교사로 살아온 김은숙씨가 조개껍질을 이용해 구성한 '어린이들'. 이은지 기자한순자씨가 그리고 색을 입힌 '나의 살던 고향'(왼쪽). 집 근처 뒷동산의 꽃과 나무, 새가 어울리는 모습을 담았다. 오른쪽은 유치원 교사로 살아온 김은숙씨가 조개껍질을 이용해 구성한 '어린이들'. 이은지 기자
    각각 65세 이상인 이들의 숨겨진 예술성을 끌어낸 당사자는 센터의 임선진 노인정신과장이다. 네 환자의 주치의기도 한 임 과장은 지난달 25일 '모두 전공자신 줄 알았다'는 기자의 말에 "그렇게 보이신다니 다행"이라며 활짝 웃었다. 호현씨를 제외하곤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평소 그림이 취미였던 분들도 아니라고 했다.
     
    변화의 계기는 비교적 최근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더 잘해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거나, 외출이 불가했던 코로나19 유행시기 '너무 지루해서' 등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그림이 단순한 소일거리를 넘어 치료적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호현씨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다. 이런 그림 요법을 (다른 환자들도) 해봤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 했고, 순자씨의 남편은 이같은 활동으로 배우자가 얻은 행복감에 대해 "참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연령층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의 치매환자는 내년에 100만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에 비례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지만, 아직 올바른 정보와 인식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것도 현실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소재 국립정신건강센터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중인 임선진 노인정신과장. 이은지 기자지난달 25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소재 국립정신건강센터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중인 임선진 노인정신과장. 이은지 기자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는 당초 성인정신과의 하위분과로 존재하다가 지난해 독립했다. CBS노컷뉴스는 전공의 수련시절부터 전문의가 된 2007년 이후에도 쭉 센터를 지켜온 임 과장과 치매를 중심으로 노인 정신건강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 직전까지 입원환자 회진을 돌고 왔다는 임 과장은 매일 50명 가량의 외래환자도 받고 있다.

    -자녀 입장에서 더 이상 치매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주로 어떤 환자들을 보나.
    ="노인정신과에서만 볼 수 있는 환자군이라면 치매를 포함한 인지장애 환자들이다. 노년기에 발생한 우울증이 있으신 분들도 저희한테는 아주 중요한 환자들이다. 하지만 그 외 정신과 질환도 노령기에 다 발생할 수 있기에, 정신과의 거의 모든 질환에 대해 진료하고 있다."
     
    -'노인 우울증'과 치매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더 환자 비중이 높은가.
    ="비슷한 것 같다. 그만큼 노년기 우울증이 굉장히 많고, 이와 겹치는 부분이 그 시기 생기는 불안장애다. 어르신들은 증상이 겹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의학적으로) 구별을 깨끗이 하기가 어려운 케이스가 많다. 노년기 우울증 환자들을 계속 진료하다 보면 하나로만 분류되는 환자군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노년기 우울증의 일부는 치매로 진행되기도 한다."
     
    -고령층 우울증의 구별된 특징이 있을까.
    ="연세가 65세 이상인 분들의 우울증은 젊은이들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젊은 분들은 스스로 '너무 우울하다',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시지만, 어르신들은 그렇게 표현하시는 분이 별로 없다.
     
    대신 몸이 막 여기저기 아프고, 그런데 병원에 가보면 '문제없다'고 한다는 거다. 너무 피곤하다거나 어디가 계속 쑤시고 아프다, 어지럽다 등 신체적인 증상을 많이 호소하시는 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인지장애가 같이 생긴다는 점이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거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내원하실 때 '내가 기억력이 안 좋다'며 오시는데, (막상) 평가를 해보면 기억력은 생각보다 괜찮으시고 우울증 점수가 높게 나오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오시면 일단 우울증 치료부터 하고 호전되면 다시 인지기능 평가를 해보는데, 우울한 게 좋아지시면 인지장애도 같이 좋아지시더라.
     
    (흔히 생각하듯) 어르신들이 기억을 잘 못한다고 꼭 치매라는 보장은 없다는 거다.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그럼 노년기 우울증과 인지장애의 연관성은 입증된 건가.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노인기에 나타나는 우울증에 '가성 치매'가 잘 동반된다고들 이야기한다. 어설픈 전문가가 봤을 때는 '치매다' 싶어 치매약을 주시는 거지. 일단 우울증에 대한 약을 먼저 써보고 환자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게 사실은 맞다.
     
    치매는 뇌가 퇴행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우울증상이 좋아졌다고 해서, 갑자기 인지기능이 좋아질 수는 없다. (치매가 맞다면) 계속 나빠지게 돼있다."

     
    임선진 과장의 주(主) 전공 분야는 '노인 정신건강'이지만, 그밖의 성인 정신과 진료도 병행한다. 정신응급실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해마다 전공의 지원은 다 차지만, 전문의로 오겠다는 사람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적어도 공공의료에 있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은지 기자임선진 과장의 주(主) 전공 분야는 '노인 정신건강'이지만, 그밖의 성인 정신과 진료도 병행한다. 정신응급실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해마다 전공의 지원은 다 차지만, 전문의로 오겠다는 사람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적어도 공공의료에 있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은지 기자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 혹은 인생이 종착역에 근접했다는 생각으로 무기력해지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이에 대해 임 과장은 "그게 실은 함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연로하면 살짝 우울한 건 당연하다고 보시는 게 문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며 "같은 상황에서도 우울하신 분이 있고, 아닌 분이 있다. (실제 인식은 이와 다르다 보니) 노인 우울증은 유병률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관련)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노인 스스로가 본인들의 우울감을 노화에 따른 현상으로 여기다 보니 적게 보고되고, 가족 등 주변에서도 비슷한 생각으로 이들의 변화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임 과장은 "우울증을 판정하는 항목들과 대비해보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우울증으로 규정이 안 되는 것뿐"이라며 "유병률이 실제보다 상당히 낮게 나오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르신들은 조금만 기억이 흐릿해져도 '건망증', 더 나아가 치매를 의심하시는 것 같다. 꾸준한 운동과 대인 활동이 예방책으로 많이 거론되는데.
    ="맞다. 대개 어르신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많이 하시지 않나.  '나는 여기까지밖에 못 하겠지'라고 지레 정하지 않고, 하실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시는 게 아주 중요하다.
     
    이를테면 '예전보다 무릎이 아프니까 운동을 못 한다'고 하시면, 제가 '(물속에서 하는) 아쿠아로빅을 좀 해보시라'고 말씀드리는 식이다. 아예 (운동을) 안 하시는 것보다는 맨손 체조나 스트레칭이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하시면 치매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된다.
     
    또 '치매를 막으려면 뭘 먹어야 되냐'를 많이들 물으신다. 한때 호두 등 견과류 열풍이 불기도 했는데, 제일 좋은 건 골고루 드시는 거다. 육류를 전혀 안 드시는 분들도 계신데, 물론 붉은색 고기가 암이나 고혈압·고지혈증의 원인이 된다고 하지만 너무 안 드시면 빈혈이 생길 수 있다. 빈혈은 인지기능 장애와 연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게 좋다.
     
    치아가 안 좋으시다고 대충 죽만 드셔도 안 된다. 씹는 것도 다 뇌로 자극이 가는 행동이다."


    아울러 임 과장은 최근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가 규정한 예방항목에 "청력 장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것"이 추가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력이 소실된다는 건 결국 환자의 오감(五感) 중 하나가 완전히 막혀있다는 뜻이라 그쪽을 통한 인지 자극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그는 "청력장애를 방치해 두는 것은 치매를 예방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라며 "이명이 생겼다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그럴 땐 청력 검사를 실시하고 보조기가 필요 없는지도 확인해보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가 통상 치매와 동의어로 착각하는 알츠하이머는 전체 치매의 '60~70% 이상'을 차지하며, 대부분 65세 이상에서 발생한다. 가장 많이 연구된 영역이고 사회적 관심도 높다 보니 진단이 더 잘 되는 편이다. 이외에도 전두측두엽 치매, 루이소체치매, 혈관성치매 등 다양한 치매가 존재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경. 이은지 기자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경. 이은지 기자
    임 과장은 데이케어센터 등 치매환자가 '살던 곳'에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치료의 초점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더디기만 한 지역사회 인프라 확충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국내 고령화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민·관이 치매환자를 '함께' 돌볼 수 있도록 인식 개선 교육 등도 시급하다고 봤다.
     
    "치매를 단순히 기억력만 떨어지시는 병인 줄로 알고, (관련) 정신행동 증상은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중기' 정도 이상이면 정신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증상이 다 나타날 수 있거든요. 그러니 치매 어르신들이 바깥에 나오셔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면 범죄자처럼 보거나 비난만 하게 되기도 하죠.
     
    가령 잠깐 산책을 나오셔서 길을 못 찾고 배회하다가 소변을 보고 싶으신데, 화장실을 못 찾으면 노상방뇨를 하게 될 수 있잖아요. 앞뒤 내용을 모르면 '할아버지가 추태를 부렸다'가 되는 거예요. 그런 이상행동을 봤을 때 '어쩌면 치매일 수도 있고 집을 못 찾아가는 걸 수 있겠다' 하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겠죠. 지금보다 인식이 좀 더 넓어져야 돼요."

     
    현재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광진구 보건소와 함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그룹형 인지재활 치료프로그램('씽씽 두뇌발전소')을 무료로 진행 중이다. 또 보건소가 발굴한 노인우울증 고위험군에게 전문의 진료를 제공하거나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연계하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임 과장은 "특히 보호자가 없는 독거 어르신들이 (치매) 고위험군"이라며 "어머님·아버님들이 자주 가시는 1차 의료기관에서 (내원환자가) 일정 연령이 되면 '스크리닝'을 할 수 있게끔 교육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임선진 노인정신과장이 센터를 방문한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를 안내하고 있다. 센터 제공국립정신건강센터 임선진 노인정신과장이 센터를 방문한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를 안내하고 있다. 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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