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저녁 6시 정규 3집 '집'을 발매한 가수 자이언티. 자이언티 공식 페이스북"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았어요. 모두 흩어져서 때로는 숨어있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태어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죠.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열 곡 중에 단 한 곡이라도 데리고 키울 만한 노래가 있기를 바라며 작업을 마무리했어요. 다시 한번, 들어주셔서! 제가 계속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번째 정규앨범 '집'(Zip)을 내며, 자이언티(Zion.T)는 아티스트 노트에 이렇게 썼다. 2011년 4월 싱글 '클릭 미'(Click Me)로 데뷔한 자이언티는 '뻔한 멜로디' '미스 김' '양화대교' '꺼내 먹어요' '노 메이크업'(No Make Up) '5월의 밤' '선물을 고르며' 등 주로 싱글을 내며 활동해 온 솔로 가수다. 첫 번째 정규앨범 '레드 라이트'(Red Light)는 2013년, 두 번째 정규앨범 'OO'는 2017년에 나왔다. 지난 6일, '집'이 공개됐다. 전작과의 간격이 7년에 가깝다는 것을 헤아리면,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았"다는 자이언티의 설명이 절로 이해가 간다.
정규앨범은 여전히 가수에게 특별한 의미이지만, 막상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싱글이나 미니앨범과 비교해 훨씬 더 많은 곡을 모아야 하니 제작 기간이 길어진다. 직접 곡을 쓴다면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 가창과 연주, 곡 전반의 완성도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포기하지 않느냐 혹은 타협하느냐도 중요한 부분이다.
'공급자'로서도 이처럼 여러 난관을 거쳐야 하는데, '수요자' 입장에서 정규앨범이 '매력적일지'도 장담할 수 없다. 대부분이 음원으로 음악을 즐기는 스트리밍 시대, 단위는 앨범이어도 타이틀곡이나 후속곡 등 활동곡이 아니면 청취의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게 현실이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집' 발매 기념 라운드 인터뷰에서 자이언티는 "싱글 앨범 두세 장 내는 게 정규앨범 한 장 내는 것보다 수입이 더 많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규 3집 '집'은 정규앨범으로서는 6년 10개월 만에 나온 결과물이다. 사진은 '집' 앨범 표지. 더블랙레이블 제공이번 앨범에는 인트로 '하우 투 유즈'(How To Use)와 트리플 타이틀곡 '언러브'(Unlove)(prod. 혼네) '모르는 사람' '브이'(V)(feat. 악뮤)를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feat. 베니 베넥 3세) '낫 포 세일'(NOT FOR SALE) '투명인간' '불 꺼진 방 안에서'(feat. 윤석철) '돌고래' '해피엔딩.'까지 신곡 10곡으로 꽉 차 있다. 수익 면에서는 고민되기도 했겠지만, '그런데도' 정규앨범을 낸 이유는 있다.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프로듀서로 활약했고 이를 통해 발표한 노래도 사랑받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많은 페스티벌과 공연 무대에서 관객을 만났다. "활동을 쉬었던 건 아니"고, "직업인으로서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아티스트로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랜만이기 때문에 정규앨범을 택했다. 그는 "최근작이 싱글이어서 리스너(청취자)나 팬분들이 들었을 때 아쉽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에 정규앨범을 냈다"라고 설명했다.
'집'을 영어로 표기하면 'Zip'이다. 압축파일의 확장자에서 따왔다. "창작을 할 때 노래보다 제목을 먼저 짓는 경향도 있다. 좋은 그릇이 있어야 (거기에) 뭘 담을지 생각이 들더라"라고 한 자이언티는 "여러 제목이 있었고 실험적인 음악, 전자 음악도 있었는데 자전적인 음악이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그냥 여러 장르를 한 번에 잘 담고 싶어서 압축파일이라는 의미, 또 '집'이라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지었다"라고 말했다.
많은 후보곡이 탈락하고 또 탈락해 추린 것이 10곡. "그냥 보여드릴 것만 보여주자" 하는 생각으로 골랐다. 어떤 기준으로 곡을 모았는지 묻자, 자이언티는 "가진 노래 중 태도, 애티튜드(attitude) 면을 많이 고려한 것 같다. 제가 탈락시킨 노래는 약간 좀 건방지거나 말을 좀 너무 빨리하거나 너무 신나는 노래"라고 답했다. 연말과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잘 맞는 선곡을 했다고.
이번 앨범에는 '언러브' '모르는 사람' '브이'까지 총 3곡이 타이틀곡이며, 신곡 10곡이 담겼다. 더블랙레이블 제공'건방진 태도'의 노래란 뭘까. 자이언티는 "태도 자체가 건방지고, 많이 발칙한 그런 노래도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노래들은 '집'(에 어울릴 곡)은 아니고… 어딘가 암튼 건방졌다"라고 부연했다.
확실히,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곡 비중이 높다. 이번 앨범에서도 자이언티는 '실험'한 부분이 있다. 자이언티는 "어떤 의미로 실험적이냐면 재즈가 주를 이룬다"라며 "장르 면에서 실험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앨범 분류가 '재즈'는 아니다. 그는 "유통사에 등록할 때 (제 앨범을) 재즈로 등록할 수 없더라. 스탠더드 재즈인데, 가요는 재즈(로 등록)가 될 수 없다고 해서 굉장히 안타까웠다. 발라드나 알앤비로 해야 한단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 재즈에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인지 묻자, 자이언티는 "재즈는 진짜 배운 자들만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어쭙잖게 시작했다가는 망신당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본인의 프로덕션에 재즈 전공자도 있고, 주변에 "진짜 재즈 사랑하는 사람"이 많고, "저 스스로도 재즈랑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생각한 것 등 여러 겹이 만난 결과다.
"아무래도 배운 자들의 음악이기 때문에 그루브, 스윙 등 제가 본능적으로 시도하는 부분과 뭔가 알고 해야 하는 부분 (그) 중간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동료 아티스트들 의견을 잘 수렴한 것 같아요."
타이틀곡 '언러브'는 외국 그룹 혼네가 프로듀싱했다. '언러브' 뮤직비디오 캡처타이틀곡이 세 곡이나 된다. '데이 원 ◑'(Day 1) '웜 온 어 콜드 나이트'(Warm On A Cold Night) 등의 곡으로 사랑받은 그룹 혼네(HONNE)가 프로듀싱한 '언러브'가 첫 번째다. 한 음원 플랫폼에서는 재생 목록에서 어떤 노래를 지울(뺄) 때 그걸 '언러브'라고 하는 데서 착안했다. 귀엽고 따뜻하면서도 펀치감 있는 유러피안 팝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
자이언티는 "혼네가 서울에 왔을 때 저희 스튜디오에 놀러 왔다. 멜로디를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들려주고 하다가 (음악이) 뚝딱 나오더라. '우와, 이렇게 나오는 거야?' 했다. 그동안 제 타이틀곡이 영어로만 된 게 없었는데 혼네랑 하는 김에 해 보자 했다"라고 전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선사하는 재즈풍 곡 '모르는 사람'은 뮤직비디오에 배우 최민식이 출연해서 화제가 됐다. "최민식 배우님께서 살면서 한 번도 뮤직비디오 출연한 적이 없다고 하신 걸 직접 들어서 엄청 영광이고 감사했다"라고 운을 뗀 자이언티는 "최민식이라는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알지만, (사실은) 그 사람에 관해 더 잘 모르지 않나 싶었다"라고 밝혔다. 최민식은 뮤직비디오 관련 의견도 많이 냈다고 자이언티는 설명했다.
마지막 타이틀곡 '브이'는 시부야 케이 장르 곡으로 남매 듀오 악뮤가 피처링했다. 반복되는 비트와 귀에 꽂히는 가사가 특징이며, 손가락으로 브이(V) 모양을 하는 상대를 향한 마음을 위트 있게 표현했다. 타이틀을 포함해 수록곡 중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곡이 무엇인지 질문이 나오자, 자이언티는 "사실 모든 곡이 그런 것 같다"라며 "창작하면서 제가 고민한 부분, 주변 보면서 제가 느낀 귀여운 요소, 좋은, 자극적인 요소를 잘 넣었다"라고 답했다.
'모르는 사람'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최민식이 출연했다. 왼쪽부터 최민식, 자이언티. 자이언티 공식 페이스북지금의 청자에게 익숙하지도, 선호되지도 않을 수 있는, 어쩌면 '모험'일 정규앨범. 하지만 자이언티에게 정규앨범이 "더 귀하게 느껴지고, 필요한 이유"가 있다. "해가 지나면서 점점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 저는 '리브랜딩'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놓은 그는 "브랜딩의 요소로서 정규앨범이라는 게, 진정성 있는 뮤지션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바라봤다.
두 번째 정규앨범 'OO'는 2017년 2월에 나왔다. 7년을 코앞에 뒀다. 자이언티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제 지난 앨범을 아는 분들은 많지만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분이 성인이 된 것"이라며 "기준점을 많이 낮췄다. 그동안 제가 40~50을 했다면, (인제) 저는 0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0에서 1(로 가는 게)이 목표다. 저는 그런 목적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제 앨범을 좀 통으로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노래를 제일 듣기 좋은 순간이 언제냐면요. 몸을 일으킬 정도의 정신이 들었을 때 나갈 준비하면서 듣는 거예요. 노래 러닝타임(분량)이 좀 짧아요. 30분 정도? 서울에서 어디 이동하면 이 정도(시간)면 다 되니까, 택시 안에서나 지하철 안에서 풀(full, 전체)로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올해 데뷔 12주년을 맞은 자이언티의 '향후 목표'는 두 가지다. "업계 안에서 '인재'(人才)로서 어떻게 클 수 있을지, 영향력으로 좋게 기여할 수 있는지"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아티스트로서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지"다. 자이언티는 "이 두 가지 방향성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제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비주얼 아티스트든 감독이든 아티스트든 (타인에게서) 계속 영감받으면서 녹슬지 않는 것, 그게 제 목표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