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KBS 전경. 황진환 기자공영방송에게 2023년 한 해는 그야말로 혹독한 한파였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로 위기를 맞은 가운데 불공정·편파 논쟁이 다시 대두됐다. MBC는 지난해 '바이든-날리면' 보도 이후 정권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준공영방송이라 불리던 YTN 역시 민영화라는 현실 앞에 놓였다.
공적 성격이 강한 방송사들이 다시금 정권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내년 총선 전에 방송 질서를 '여권 우위'로 재편하기 위해 언론 길들이기에 돌입했다는 비판이 상당하다.
CBS노컷뉴스가 올 한 해 공영방송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봤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 위기 속 '정치 논쟁' 한가운데
지난 7월 TV 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고지·징수하도록 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본격 시행됐다.
개정안 추진부터 KBS 김의철 전 사장은 정부에 고개를 숙여 "만일 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사장직을 내려놓겠다. 그러니 대통령께서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즉각 철회해 주시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그러나 결국 수신료 분리징수는 3월 대통령실의 온라인 국민제안부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국무회의 문턱을 넘어 최종 대통령 재가까지 일사천리로 4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수신료가 KBS의 주요 재원인 만큼 이를 분리징수해 회피·미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재원을 대체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KBS는 지난해 6200억 원대였던 순 수신료 수입이 6분의 1 수준인 1천억 원대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사보를 통해서도 내년 수신료 수입 결손 비율을 30%로 가정하면 2600억 원대의 결손액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KBS는 수신료 위탁 징수의 주체인 한국전력공사와 분리징수 협의 중에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도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제한 시행령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출했다. 이번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이 언론과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에 위헌이라는 것이다. 앞서 헌재도 여러 차례 KBS 수신료 관련 판결에서 선택이 아닌 납부 의무가 있는 요금임을 확인한 바 있다.
박민 KBS 사장. 박종민 기자소용돌이는 이제 시작이었다. 야권인 남영진 전 이사장과 윤석년 이사가 해임되면서 여권인 서기석 이사장과 황근 이사가 선임됐다. 이렇게 여권 우세 구도가 성립되자 김의철 전 사장 해임안이 안건에 올라왔다. 야권 이사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해임안이 통과됐고, 이후 새 사장 선임과정에서도 여야 이사들 사이 격론이 계속됐다. 그 결과 야권 이사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KBS본부)의 반발을 뚫고 지난달 박민 사장이 새롭게 선임됐다.
보궐 사장이라 남은 임기는 1년 가량이지만 박 사장은 임기 초부터 KBS본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그 동안 KBS 보도·시사 프로그램들이 불공정·편파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KBS 시사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하고, 정치 성향을 문제 삼아 게스트 하차를 요구하면서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과잉 심의 논란이 있는 김만배 녹취록 인용 보도 관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과징금 3천만 원 제재도 타 언론사들과 달리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KBS본부는 "11월 13일을 전후해 KBS에서는 자격이 없는 보직 내정자가 제작진에게 진행자 하차와 프로그램 폐지를 지시하거나 책임자가 실무자와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했다"며 '주진우 라이브' '최강시사' '더 라이브' 등의 편성 삭제·폐지와 보도 공정성을 '셀프 비판'한 '뉴스 9' 앵커 리포트를 사례로 들었다. 지난 12일에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담당 PD가 게스트 하차 지시를 거부하자 업무에서 배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KBS본부는 박민 사장을 방송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단체협약위반 고발 및 특별근로감독 청원, 국민감사청구 등을 차례로 이어나가고 있다.
MBC 압수수색 시도부터 YTN 민영화까지
경찰이 지난 5월 상암동 MBC 사옥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MBC는 지난해 '바이든-날리면' 보도 여파를 지금까지 겪고 있다. 당시 MBC가 이를 최초 보도했지만 다른 국내외 언론사들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고, 이로 인해 해당 논란이 확산됐다.
그러나 최초 보도한 MBC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순방 취재 전용기 배제 이후에도 MBC 뉴스룸 압수수색을 시도하는가 하면,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위원회(이하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은 한 차례 법원 결정에도 해임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 5월 경찰은 MBC A기자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개인정보를 유출했단 혐의로 A기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주거지와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를 명목으로 MBC 뉴스룸까지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MBC와 협의 끝에 사측 변호사를 대동해 압수 대상 물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MBC는 A기자가 '바이든-날리면' 보도의 당사자이고, 이미 명예훼손 수사를 받고 있기에 표적 수사의 여지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업계에서도 보복성 과잉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방문진 야권 인사인 권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부터 해임됐다가 법원이 해임 처분 집행 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복귀했다. 이에 따라 방문진은 현재까지 야권 우위로 남아있다. 그러나 법원의 제동에도 여전히 권 이사장과 여권 이사에 대한 해임 시도는 여전하다. 지난달에는 보수 성향 MBC 제3노조 고발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가 권 이사장과 김석환 이사가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소지를 확인했다며 조사 내용을 경찰에 넘겼다.
그런가 하면 방심위는 뉴스타파 김만배 녹취록 인용 보도와 관련해 MBC에 가장 큰 과징금을 부과했다. '뉴스데스크'와 'PD수첩'이 각기 4500만 원과 1500만 원, 도합 6천만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중징계에 해당하는 과징금은 방송사 재허가 심사에서 10점이 감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권 위원들 반대로 전체회의에서 의견진술이 거부된 MBC는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보도전문채널 YTN은 지난 10월 유진그룹이 공기업 지분 30.95%를 낙찰하면서 민영화 절차를 밟게 됐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공익적 고려나 구성원들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달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조 고한석 YTN 지부장은 "YTN 민영화에 공익적 고려는 없다. 공적 자원인 보도전문채널을 민영화하는데, 그 어떤 사회적 논의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YTN 구성원들의 의견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이토록 폭력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시간표에 쫓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내년 4월 총선 전 반드시 끝내야 할 언론장악, YTN 무력화 시나리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