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올해 초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정부 지원책에 힘입어 집값 급락세는 주춤해졌지만, 고금리 환경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경기는 여전히 불안한 모양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올해에 이어 내년도 해당 대출 부실화 가능성이 금융시장의 주요 우려 사항으로 꼽힌다. 대규모 부실이 현실화 될 경우 건설 현장은 물론, 금융권, 나아가 일반 차주까지 고통이 확산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집값 급락 멈췄지만…여전히 불안한 부동산 경기
주택 가격은 작년 말, 올해 초의 급락세가 멈춘 뒤 소폭 상승해 유지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전국의 주택종합매매가격(전월 대비, 아파트·연립·단독주택)은 작년 6월부터 하락 전환(-0.01%)된 뒤 11월 -1.37% 12월 -1.98%로 낙폭을 확대해왔다. 올해에도 1월 -1.49%, 2월 -1.15%로 1%대 하락 흐름을 이어오다가 3월(-0.78%)부터 0%대로 낙폭을 줄였으며, 7월(+0.03%)엔 상승 전환돼 8월 +0.16%, 9월 +0.25%, 10월 +0.20%를, 11월 +0.04%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주택 가격 추락세가 멈춘 배경에 대해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연초 대비 낮아진 신규 대출금리 등의 영향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집값 경착륙에 따른 시장 충격을 막기 위해 정부가 올해 초 집중 동원한 각종 규제 완화책과 특례보금자리론으로 대표되는 주택담보대출 지원 등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당장의 충격을 피했을 뿐, 부동산 경기가 안정됐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주택 매매거래량은 9월에 감소세로 재전환돼 10월엔 전월 대비 3.3% 다시 줄어든 4만9448건으로 나타났다. 이와 맞물려 집값 상승폭이 최근 두 달 연속 축소된 데다가, 10월 '악성 미분양'으로 여겨지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 수는 전월 대비 7.5% 증가한 1만224호로 집계돼 2021년 2월(1만779호) 이후 2년 8개월 만에 1만호를 넘어섰다. 같은 달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도 전월 대비 0.08% 떨어져 올해 처음으로 하락 전환했다.
내년에도 고금리·저성장 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집값 연착륙에 정책 초점을 맞췄던 정부가 '빚 폭탄' 우려에 직면하자 올해 하반기 들어 특례보금자리론 지원 축소 등 가계부채 관리 쪽에도 뒤늦게 무게를 두면서 부동산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도시와경제'의 송승현 대표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대출에 대한 부담이 덜해져야 시장이 살아날 텐데, 기준금리가 내년에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폭이 크진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 사정도 어렵다 보니 내년에도 부동산 시장 상황이 좋을 거라고 보긴 힘들다"며 "수요자들도 집값 하락을 기대하며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내년도 고금리·불경기 예상…PF 대출 대규모 부실화 공포
스마트이미지 제공이 같은 경기 냉각 상황 속에서 '부동산PF 대출 부실화 가능성'은 금융시장의 주요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PF대출이란 말 그대로 부동산 사업을 진행할 때 이뤄지는 대출이다.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부동산 불패론'에 편승해 사업 자금을 무리하게 빌리고 빌려줬던 건설사‧금융기관들이 '도미노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시장의 불안은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부동산 PF대출 문제를 한국경제의 잠재 위험 요인으로 꼽으면서 "부동산 PF 연착륙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철저히 관리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30일 금융통회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위험은 많이 줄었다"면서도 "그래서 부동산PF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느냐 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올 3분기(9월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은 2.42%로, 작년 말(1.19%)의 두 배 수준으로 상승했다. 부동산PF 대출 잔액 합계도 134조3천억 원으로 전(前) 분기보다 1조2천억 원, 작년 말보다는 4조 원 증가했다. 업권별로는 은행권만 제외하고 증권·보험·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상호금융권의 해당 대출 연체율이 작년 말 대비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상호금융권의 경우 0.09%였던 연체율이 3분기 4.18%로 뛰어 금융권에서 상승폭이 가장 컸다. 다만 금융위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하면서 상호금융권 연체율과 관련해선 "자본과 충당금적립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업권의 건전성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최대 15조 원 손실 가능성도…한꺼번에 현실화 땐 경제 충격"
연합뉴스금융당국 메시지는 시장 심리 안정을 위한 것으로도 풀이되지만, 시장에선 특정 중견 건설사 워크아웃설이 나돌고 해당 건설사가 이를 일축하는 등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다. 이와 별개로 일각에선 부동산 PF대출의 일종인 브릿지론을 중심으로 대규모 손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구체적 조언도 나온다.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의 이혁준 금융평가본부본부장은 이달 낸 보고서에서 "고금리가 장기화 할 경우 브릿지론 가운데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금액이 일거에 손실로 반영되면 경제 시스템은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브릿지론은 토지 매입‧인허가 비용 등에 투입되는 부동산PF 초기 대출로, 본격적인 시공 단계에 돌입하면 본PF 대출을 받아 브릿지론을 상환하는 게 대체적이다. 하지만 고물가·고금리에 사업이 원활하게 진척되지 못하다 보니 본PF 단계로 전환되지 못하고 브릿지론 만기 연장이 거듭되고 있는 사업장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이 좌초돼 토지 경매·공매가 이뤄지면 보통 대출 금액 대비 30~50% 낮은 수준에서 매매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30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브릿지론에서 9조~15조 원의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게 이혁준 본부장의 분석이다.
이 본부장은 통화에서 "(손실이 한꺼번에 현실화 되면) 도산하는 건설·금융사들이 나오고, 레고랜드 사태 때처럼 신용 경색으로 시장 금리가 폭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보고서에 "풍선에서 서서히 바람을 빼듯 사업성이 낮은 브릿지론을 수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 4월 PF 대주단 협의체를 출범시켜 대출 만기 연장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노력해왔던 당국도 부실 사업장을 질서 있게 '정리'해 나가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 기류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14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한계기업 등에 대해선 정상화 가능성 평가를 토대로 자구 노력과 손실 부담 등 자기 책임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통해 잠재 부실 누적을 예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부동산 PF 사업장 가운데 사업성이 부족한 곳에 대한 정리·재구조화가 추진되고 있다며 경·공매가 진행되거나 예정된 사업장은 지난 9월말 기준 120곳으로, 6월 말(100곳) 대비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당국의 '건전성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 새마을금고 상황를 면밀히 주시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정안전부, 새마을금고중앙회 등과 공동검사권·자료요청권을 핵심으로 하는 업무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다. 새마을금고의 건설업·부동산업 기업 대출 연체율 등이 치솟은 상황에서 당국의 상호금융권 관리 체제 하에 사실상 편입해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