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당선인. 연합뉴스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라이칭더 당선인은 가난한 광부의 아들에서 의사를 거쳐 총통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라이 당선인은 1959년 신베이시의 시골 마을 완리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100일이 안돼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해 어머니 밑에서 5남매와 함께 자랐다. 선거 전날 고향 신베이시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면서 자신은 '자랑스러운 광부의 아들'이라고 강조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지만 라이 당선인은 국립대만대 의대에 입학한 뒤 미국 하버드대 공공보건학 석사를 거쳐 의사 생활을 했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계기는 1996년 3차 대만 위기였다. 그는 지난해 7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1996년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 해협을 위협하는 순간이 결정적 계기였다"며 "대만 민주주의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후 1999년 입법위원(국회의워)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섰다. 2010년까지 4선 의원을 지내고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대만 남부 타이난 시장을 지낸 뒤 2017년에는 차이잉원 정권의 두 번째 행정원장(총리)에 임명됐다.
2019년에는 민진당 내 총통 후보 경선에서 차이 총통과 경쟁했지만 패배했다.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의 러닝메이트로 뛰었고 결국 그해 5월 부총통이 됐다. 이를 통해 그는 차이 총통의 뒤를 잇는 민진당 내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라이 당선인은 대만 독립과 관련해 민진당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힐 정도로 '하나의 중국'과 '92합의' 원칙을 거부해왔다. 92합의는 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명칭과 표현은 각자 편의대로 하자는 내용이다. 그는 "이미 대만은 주권 국가"라고 주장해온 만큼 그가 총통 선거에 출마할 당시 중국은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며 비판했다.
라이 당선인의 강한 독립 성향을 감안할 때 중국의 대만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중국은 라이칭더 후보의 당선에 대해 중국과 국제 사회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는 5월 20일 총통 취임식을 앞두고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압박이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