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깬 조규성. 연합뉴스마침내 침묵을 깼다. 하지만 조규성(미트윌란)은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1일(한국 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2로 승리했다.
한국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투입된 압둘라 하지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후반 종료 직전 조규성의 천금 같은 동점골이 터져 기사회생했다.
조규성의 이번 대회 첫 골이었다. 앞서 조별리그 3경기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한 그는 이 골로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승부차기에서는 조현우(울산 HD)의 선방쇼가 눈부셨다. 3, 4번 키커의 슛을 연달아 선방해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은 4번 키커까지 모두 득점에 성공했다.
경기 후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조규성은 "이겨서 기분은 당연히 좋다"면서도 "찬스를 더 살릴 수 있었고,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경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부분이 좀 아쉬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점골 상황에 대해서는 "솔직히 좋다기보다는 여태까지의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다"면서 "그래서 마냥 좋아하지 못했던 것 같고, '이제 한 골 들어갔네'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조규성은 앞서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지만, 이날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한국은 이날 포백 대신 스리백으로 변화를 주기도 했다.
후반 20분 이재성(마인츠) 대신 그라운드에 나선 조규성은 "일단 우리가 스리백으로 시작했는데, 훈련 때 너무 좋았다"면서 "오히려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벤치에서 잘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들어간다고 생각하며 준비했다"고 떠올렸다.
조규성 세리머니. 연합뉴스이날 경기가 열린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은 조규성에게 특별한 장소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가나를 상대로 멀티 골을 터뜨린 곳이다.
하지만 조규성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몰랐다. 처음 도착했을 때 익숙해서 봤더니 (황)희찬이 형이 그때 그 경기장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혼자 웃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조규성은 사우디를 상대로도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9월 영국에서 열린 사우디와 평가전에서도 한국의 1-0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터뜨린 바 있다.
이날 맞대결에 대해서는 "일단 쉽지 않은 상대다. 그때 한 번 골을 넣었는데, 이번에도 머리로 넣었다"면서 "(황)인범이 형이 우스갯소리로 '머리로 축구하냐'라고 하더라. 인정하는 부분이다"라고 껄껄 웃었다.
연장 후반에는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맞았으나 직접 처리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조규성은 "일단 내가 터치가 짧아서 직접 때리는 것보다 (홍)현석이에게 더 완벽한 찬스라 생각했다"면서 "그냥 때릴 걸 그랬나 싶었고, 형들도 자신 있게 때리라고 격려해줬다. 나도 그 장면이 가장 아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졌지만, 조규성은 "긴장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3번 키커로 나서 깔끔하게 득점에 성공했다.
8강에 오른 한국은 이틀 휴식 후 2월 3일 호주와 격돌한다. 이틀 전 16강전을 마쳐 나흘 쉬고 경기에 나서는 호주에 비해 체력이 고갈된 상태다. 이에 조규성은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회복을 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호주에는 신장이 큰 선수들이 많다. 조규성은 "중앙 수비수가 키가 크다"면서도 "덴마크에도 키가 큰 수비수가 많다. 열심히 부딪혀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끝으로 이날 열띤 응원을 펼친 '붉은 악마' 서포터즈에도 감사함을 전했다. 비록 사우디의 구름 관중이 몰려 응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조규성에게 큰 힘이 됐다.
조규성은 "분위기가 사우디 홈 경기장인 것 같았다. 하지만 붉은 악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면서 "해외에서는 한국어가 잘 들리지 않나. 골대 뒤에서 열심히 응원을 해주신 걸 봤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