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에 얼굴 가린 조규성. 연합뉴스'세계적인 공격수' 출신 감독이라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걸까. 국가대표 주전 스트라이커 조규성(미트윌란)은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의 지도를 받은 후 성장은커녕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거듭했다.
조규성은 이번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대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골 찬스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뿐더러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것도 수차례다. 특히 대표팀이 탈락한 7일(한국 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 준결승전, 모처럼 온 기회에서 슛 대신 '헐리웃 액션'을 선택하며 많은 축구 팬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하며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로 손꼽혔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지도를 1년 가까이 받았지만 오히려 조규성의 기량이 1년 전보다 퇴보한 것이다.
뛰어난 공격수였던 클린스만 감독은 도대체 조규성에게 어떤 부분을 지도한 걸까.
박종민 기자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2월 말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에도 지도력에 의문이 많아 감독 선임을 반대하는 여론이 거셌지만, 선수 시절 최전방 공격수로서 화려한 경력을 지닌 덕분에 대표팀 공격수들의 기량 향상엔 큰 도움이 될 것이란 평도 많았다.
대표팀 스트라이커들도 클린스만 감독 부임 당시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조규성은 작년 3월 20일 첫 대표팀 소집 당시 "아무래도 클린스만 감독님도 공격수 출신이니까 공격수로서 많이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공격수 출신 감독을 반겼다. 이어 "감독님도 타깃형이다 보니 골 결정력도 너무 좋다. 그런 부분을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오현규(셀틱) 역시 부임 초기 "(클린스만 감독은) 공격수에게 이기적인 부분을 주문한다"고 전한 바 있다. 이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시켜 주려고 하는 것 같다. 같은 스트라이커 출신으로 욕심을 내라고 말해줬다"고 덧붙였다.
이로부터 약 11개월이 지난 시점. 사실상 클린스만 감독의 시험대였던 아시안컵에서 조규성과 오현규의 골 기록은 둘이 합쳐 5경기 1골뿐이었다. 최전방 공격수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64년을 기다린 아시아 최정상의 순간은 또다시 뒤로 미뤄야 했다.
볼경합 벌이는 조규성. 연합뉴스이번 아시안컵 주전 스트라이커는 조규성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선수 시절과 포지션은 같지만 조규성의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클린스만 감독은 현역 시절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공을 잡으면 화려한 개인 기술과 정확한 판단 능력으로 직접 득점을 마무리 짓는 유형의 스트라이커였다. 타고난 순발력과 유연성을 활용해 다이빙 헤더, 오버 헤드킥, 발리 슛 등 화려한 골을 많이 넣었다.
하지만 조규성은 이와는 다른 유형이다. 직접 골을 마무리하기 보단 주변 동료들을 활용해 공격을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조규성은 한 방송 프로그램서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정통 공격수가 아니다 보니까 골밑에서의 장점이 없는 것 같다"며 "슈팅보단 저희 편을 먼저 찾는다"고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대학생 때까지 수비수를 봐왔던 조규성의 장점은 높은 타점의 헤더 능력이기도 하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 당시 조규성은 이 능력을 한껏 발휘해 대표팀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우뚝 섰다. 또 최전방 공격수임에도 많은 활동량으로 상대의 빌드 업을 차단하는 전방 압박에도 자주 나서는 선수다.
조규성이 페널티킥을 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차출한 선수의 기본 특성을 고려해 전술을 세우는 건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조규성의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기에 내세웠고, 조규성은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들로 조규성의 장점은 최소화, 단점은 극대화되고 말았다.
조규성의 개인 기량에도 문제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타적인 플레이가 편하다 한들, 스트라이커로서 과감한 슈팅이 필요한 순간마저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이번 아시안컵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 연장 후반, 골문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슛을 아낀 장면과 4강 요르단전에서 골키퍼와 1 대 1로 맞선 상황에서 나온 헐리웃 액션은 끝까지 조규성을 믿어준 축구 팬들을 실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전방 압박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아쉬운 모습이 자주 나왔다. 팀이 함께 움직여 차단해야 할 상대의 빌드업 과정을 혼자 막기 위해서 뛰쳐나가다 외려 패스 공간을 내주는 장면도 심심찮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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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규성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전술들이 우선적인 문제점이었다. 박스 안에서 헤더 준비를 하고 있을 땐 올라오지 않던 측면 크로스가 조규성이 교체 아웃된 이후 남발된 경기들이 수없이 목격됐다. 또 낮게만 오는 크로스에 조규성이 공을 높게 띄워달라는 수신호를 동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대회 내내 아쉬웠던 대표팀 공격력에 대해 "상당히 실망스러웠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화가 나고 많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다"며 "이런 상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해 봐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취임 기자 회견에서 "나는 공격수 출신이다. 공격 축구를 원한다"고 당당하게 말한 바 있다. 그러나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대표팀 전체는 물론이고, 자신이 가장 자신 있을 '스트라이커 지도'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