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29일 앞둔 12일 인천 미추홀구 한 유치원에서 인천시선관위 주최로 열린 '4월 10일 엄마 아빠 투표해요' 어린이 모의사전 투표체험에서 어린이들이 투표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 싣는 순서 |
①너도나도 '저출산' 대책 발표…4년 전 약속은 지켰나 (계속) |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선택한 제1호 공약은 하나같이 '저출산 대책'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부총리급 저출산 해결 컨트롤타워를 새로 세우고, 각각 연간 10조, 28조 원 규모의 예산을 쏟겠다고 앞다투어 약속했다. 육아휴가·휴직 지원을 확대하고 아이돌봄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장밋빛 대책들도 잊지 않았다.
합계출산율 0.6명 시대. 8년 연속 출생아 수가 줄어들며 미래가 사라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4년 뒤의 변화를 기대할 여력이 없다. 그렇기에 정당들은 선거철마다 '국가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한다. 하지만 지난 총선의 허술한 공약과 부족한 이행 상황에 비춰보면, 지금의 야단법석이 당선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힐까 우려된다.
난임치료 비용에 절망…4년 전 '전액' 해준다더니
"오늘이 마지막이에요."지난 23일 서울 동대문구 마리아병원에서 만난 여성 A(40)씨는 마지막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정부 지원) 횟수를 초과해서 치료비 전액을 사비로 부담하고 있다"며 "시술비가 1년에 1천만 원이 넘는데 부담스러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울먹였다.
'난임부부들이 찾는 마지막 종착지'로 불리는 서울 중구 차병원 난임센터에서 만난 40대 남성 B씨 부부는 난임 치료 3년 차다. B씨는 "(난임시술은) 비급여 항목이 많기 때문에 난포를 성장시키는 약 등 비급여 항목 2개만 들어가면 지원금액은 그냥 없어진다"며 "(3년간) 정부 지원, 소득공제 등 다 받고도 (본인부담금을) 대략 2천만 원은 썼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아이를 낳고 키울 의지가 충분한 난임부부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도 지난 21대 총선 저출산 공약으로 '20만 난임부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난임시술비 전액 지원'을 내걸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난임부부 지원은 여전히 횟수를 제한한다. 난임시술비는 신선·동결 배아 20회, 인공수정 5회 등 총 25회까지만 건강보험 등이 적용되는 식이다.
농·어촌 국공립 돌봄 확충?…'숫자의 함정'
연합뉴스희귀질환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오모(34)는 매일 차로 15분 가량을 운전해 서울의 한 '든든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 집 근처에도 어린이집이 있지만, 정부에서 운영해 믿음직한 곳이라 매일 아침 운전길도 힘들지 않다.
오씨는 "발달 지연이 있어서 몸의 움직임이나 컨디션, 식단 등에 많이 신경 써줘야 하는데, 선생님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하고 발달에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든든어린이집은 공공돌봄을 담당하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수탁해 운영된다. 지역 여건과 보육 수요에 맞게 설계된 데다, 보육교사를 정직원으로 채용해 보육환경도 안정적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당시 이러한 공공돌봄 시설과 체계를 농·어촌에도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실제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국공립 어린이집이 총 1229곳 늘었고, 이 가운데 비수도권에서만 655곳(53.3%) 늘었다.
얼핏 공약이 이행된 것 같지만, 공약이 제대로 이행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국공립 어린이집 수의 격차는 여전히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별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을 살펴보면 수도권은 △2020년 17.0% △2021년 19.3% △2022년 21.7% △2023년 24.3%로 나타났다. 반면 비수도권은 △2020년 11.0% △2021년 13.2% △2022년 15.6% △2023년 18.2%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공공돌봄 격차는 6%p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턱없이 낮은 공급…청년들은 '전세사기 늪'으로
21대 총선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은 '2022년까지 청년, 신혼부부 각 100만 가구에 공공주택 지원' 등 공공주택 확대 공약을 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간 청년·신혼부부 등에 공급한 공공분양주택 실적을 다 합쳐도 14만 7천 호에 그친다.
또 청년·신혼부부 등에게 시세의 80%로 장기간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의 경우에도 △2020년 2만 9천 호 △2021년 3만 5천 호 △2022년 1만 9천 호 △2023년 1만 1천 호로 4개년 평균 2만 호 가량에 머물러 '100만 가구' 목표치에 도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민의힘은 '1인가구·청년·신혼부부 주거희망 사다리 구축'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실제 이행한 공약은 '주택에 대한 과세표준 공제금액 상향', '재건축·재개발 과정 인허가 간소화' 등 주택을 이미 소유한 계층을 위한 각종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도권에서 계약 만료 후 전세보증금 3억 2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김승현(34)씨는 "청년 대상 공공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몇 년간 계속 알아봤지만 조건이 안 돼 일반 전세자금 대출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2021년 계약 당시만 해도 대출 이자가 2~3%대였다"고 하소연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 보증금 회수 절차를 밟고 있는 김씨는 "공공주택 조건이 까다로워 웬만한 사람들은 이용하기 어렵다"며 "소득 기준 등 자격 요건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김씨의 호소와 달리, 오히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3년 예산안에서는 공공임대 예산이 5조 원가량 삭감됐다. 특히 매입임대주택 기금이 6조 763억 원으로 전년(9조 1559억 원) 대비 3조 796억 원 감소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등 매입임대주택이 필요한 사람은 계속 늘고 있는데, 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출범한 지난해 6월 1일 이후 전세사기 피해자 등으로 결정된 임차인은 총 1만 4천여 건에 달한다. 특히 피해자 가운데 40세 미만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73.46%에 이른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공공주택 공급이) 계획대로 잘 추진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며 "전세형 공공임대주택이 많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결국 민간 시장에서 구할 수밖에 없게 됐고 (전세사기) 피해 규모를 키우게 된 이유"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