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종료 후 인터뷰 중인 KIA 최형우. 이우섭 기자베테랑이 팀에 필요한 이유를 최형우(40·KIA 타이거즈)가 확실하게 보여줬다.
23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리그'. KIA와 키움 히어로즈가 2 대 2로 맞선 10회초 2사 만루. 타석에 최형우가 들어섰다.
걱정이 많았다. 이날 최형우는 앞선 4번의 타석에서 2번의 뜬공과 2번의 삼진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4번째 타석에선 똑같은 상황인 2사 만루 기회에 삼진을 당했다.
"어떻게든 맞추기만 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 투수 조상우는 2스트라이크 1볼을 선점하며 최형우를 압박했다. 그때도 머릿속엔 오직 "맞추기만 하자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7구째 승부. 조상우는 130km짜리 슬라이더로 승부를 걸어왔고, 최형우는 자신 있게 방망이를 냈다.
타구는 시원하게 키움의 수비진을 가르며 중견수 앞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 2, 3루에 있던 주자들은 빠르게 홈으로 달려 베이스에 안착했다. 결승 2타점 적시타였다.
KIA 타이거즈 제공결국 이날 KIA는 연장 승부 끝에 키움을 5 대 2로 제압하고 1위를 공고히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최형우는 당시를 "아웃되더라도 어떻게든 맞추기만 하자. 만루니까 콘택트만 생각하자"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최형우는 최근 자신의 경기력에 큰 실망을 한 상태였다. "요즘 말도 안 되게 타격감이 안 좋아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타석도 "포기 상태였다"고 했다.
올 시즌 최형우는 25경기에 출전해 92타수 3홈런 23안타 20타점 14득점을 기록 중이다. 타율은 2할5푼으로 크게 나쁜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최형우는 "요새 며칠간 당황스러웠다. 누가 치라고 공을 줘도 못 칠 정도의 타격감이라 짜증이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며 만족하지 않았다.
중심 타자로서 책임감 때문이다. 최형우는 "저는 책임감이 좀 심하다"며 "경기에서 이기면 상관이 없지만, 지면 '내가 그때 쳤으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라고 알렸다. 그러면서 "젊었을 땐 컨디션이 떨어져도 바로 올라갔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매일 훈련은 하는데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우섭 기자그래도 최형우는 팀이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흡족하다. 무엇보다도 후배들의 기량 발전이 대견하다.
특히 최근 폭발적인 타격감을 보이고 있는 김도영과 이우성에 대해 언급했다. 최형우는 "당연히 후배들이 기특하다. 이 정도면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탑 수준'"이라며 "무척 만족스럽다. 다들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게 결과로 나오니까 지금은 그저 다 좋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령탑 이범호 감독 역시 최형우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다. 최형우의 이날 타격감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한 승부처에 대타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었지만 이 감독은 끝까지 최형우를 믿었다. 최형우 역시 "(타격감이 안 좋다고 해서) 나를 교체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고 말했다.
결국 노장 최형우는 보란듯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 반짝인 선수는 최형우였다.
이 감독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최형우가 상태 투수와 끈질긴 승부를 펼친 끝에 천금 같은 2타점 결승 적시타를 때려줬다. 그야말로 승부를 결정짓는 안타였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최형우를 향해 "베테랑의 진가가 드러났다"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