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가 죽었다' 김세휘 감독. ㈜콘텐츠지오 제공※ 스포일러 주의
영화 '치외법권' '인천상륙작전' '덕구' 등 여러 영화에서 각색과 스크립터를 맡으며 내공을 쌓아 온 김세휘 감독이 '그녀가 죽었다'를 통해 연출자로서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김 감독의 꿈은 원래 재밌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었다. 10년 정도 연출부 생활을 하며 주위에서 연출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을 때도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현장에서 감독들을 보며 연출은 대단한 사람만 하는 거라는 생각이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런 김 감독이 자신이 쓴 '그녀가 죽었다'의 연출 제안을 받았던 날이다. 조용히 집에 돌아왔지만, 그의 안에서는 연출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김 감독에게 새로운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안을 받은 날부터 머릿속에서는 자신의 글을 어떤 식으로 이미지화 해야 할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다시는 작가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그녀가 죽었다'를 자신의 첫 연출작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영화는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포스터. ㈜콘텐츠지오 제공김 감독은 지금의 감정을 찬찬히 곱씹은 후 "배우들도 스태프도 나만 남겨두고 새 갈 길을 간 느낌이었다. 나만 남겨진 느낌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다시 놀러 와서 재밌게 노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 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끝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3년 동안 예쁜 새끼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고 있었는데, 주인이 나타난 거예요. 예뻐해 줄 거라 믿고 보내야 하는데, 너무 정이 들었거든요. 입혀주고, 먹여주고, 많은 애정을 쏟았으니까요. 이 친구를 생각하면 행복하기도 한데, 슬프기도 한 거죠." 이처럼 소중한 영화이기에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처음 '컷'을 외친 순간 역시 아직도 생생하다. 경찰들이 한소라(신혜선)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하는 신이었다. 제작사와 인연이 있는 이준익 감독이 슬레이트를 쳐주러 왔다.
김 감독은 "너무 많은 사람이 내 모니터 뒤에 있고, 심지어 이준익 감독님도 모니터를 내려다보셨다. 그래서 혹시 들릴까 봐 조용하게 무전기에 '컷!'하고 외쳤다. '오케이'도 되게 작게 했다"라며 웃었다.
현장을 떠올리자 내가 진짜 감독이 됐다는 걸 실감한 순간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바로 인터넷 방송 BJ 호루기(박예니)의 집을 촬영할 때였다. 철거촌 빈집에 마련된 세트, 한 스태프가 소품을 찾자 다른 스태프가 "호루기 집 계단 밑에 있다"라고 답했다. 별거 아닌 그 말이 김 감독에 마음에 와닿았다.
그는 "아무의 집도 아닌 곳인데, 백여 명의 스태프는 거길 '호루기 집'이라고 부르는 거다. 그리고 호루기 집 계단 밑이라고 하면 그 백여 명이 어딘지 다 아는 것"이라며 "연출부 스태프일 때는 '그게 뭐?' 했는데, 감독이 되니까 우리 스태프가 '호루기 집'이라고 불러주는 게 되게 묘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김세휘 감독. ㈜콘텐츠지오 제공아직은 감독이라는 호칭이 잘 실감이 나지 않고 어색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화감독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후 자리 잡은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바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김세휘 감독은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있겠지만, 일단 관객이 보기에 '와, 재밌는데?' 이런 소리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도, 트렌드의 변화도 영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나갈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고 당차게 밝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이 진짜 대단하다고 여기는 게 연세가 있으신데도 계속 도전하시잖아요. 그러면서도 너무 재밌고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이야기를 하세요.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그런 분을 롤 모델로 해서 나아가고 싶어요."(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