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투수 시라카와 케이쇼(왼쪽). SSG 랜더스 제공"마치 한국 드라마 같다."
일본 매체 '스포니치 아넥스'는 2일 오전 "일본 투수가 출연하는 '성공 스토리'가 이번 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KBO 리그 최초 대체 외국인 선수' 시라카와 케이쇼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 독립 리그에서 뛰던 젊은 투수가 한국 프로 스카우트의 눈에 들고 계약을 체결한다. △바다 건너 한국으로 넘어가 선발 투수로 제몫을 해낸다. △순박한 인품에 팬들은 매료되고 엄청난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된다. △하지만 그는 '대체 외국인 선수'. 6주 이후엔 계약이 만료된다.
매체는 시라카와의 현재 상황을 드라마 줄거리에 빗댄 후 "시라카와 주연의 드라마 시즌 1은 이번 주 최종화를 맞이한다"고 전했다. 이어 "시라카와의 향후 목적지 옵션은 'SSG 랜더스 잔류', '일본으로 복귀', 'KBO 타 구단으로 이적'까지 3가지"라고 덧붙였다.
이 중 첫 번째 옵션인 'SSG 잔류'는 가능성이 사라졌다. SSG는 같은 날 오후 "부상 대체 외국인 선수 시라카와와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라카와는 5월 22일 SSG와 6주 180만 엔(약 1570만 원)에 계약했다. SSG 외국인 투수 로에니스 엘리아스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SSG 제공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엘리아스의 복귀까지 버텨주기만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예상 밖의 활약을 이어갔다.
시라카와는 지난달 1일 키움 히어로즈와 원정 경기 데뷔전 등판부터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시라카와는 총 5경기를 뛰며 5경기 2승 2패 평균자책점 5.09의 성적을 남겼다.
SSG는 고민에 빠졌다. 엘리아스의 복귀와 시라카와의 잔류를 두고 1가지만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SSG는 엘리아스를 선택했고, 시라카와와 동행을 멈췄다.
이제 시라카와의 행선지에 큰 관심이 모인다. 옵션은 2가지가 남았다.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의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다.
당초 시라카와는 일본으로 복귀할 생각으로 한국행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시라카와는 SSG 이적이 확정됐던 당시 "일본프로야구(NPB) 드래프트 지명을 위해 KBO 리그에 뛰러 간다"며 "나중에 도쿠시마 팬들 앞에 등판할 때 한국에서 경험을 살려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복귀를 암시했다.
NPB 지명이 목표라면 일본 복귀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시라카와는 한국으로 오기 전 일본 독립 리그 도쿠시마 인디고삭스에서 매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로 출전했고, 올해는 도쿠시마에서 7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2.32를 기록했다. 도쿠시마가 소속된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plus' 기록 사이트에 따르면, 시라카와는 한국에 와 있던 약 한 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음에도 현재 리그 평균자책점 3위(2.32), 다승 공동 4위(4승)에 올라있다.
도쿠시마는 일본 독립 리그에서 가장 큰 규모의 팀 중 하나다. 매년 NPB 드래프트에서 지명 선수를 배출하는 팀이다. 스포니치 아넥스에 따르면, 도쿠시마 구단은 향후 시라카와의 복귀에 대해 "본인에게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에서 뛰던 시라카와. 일본 매체 '고교야구닷컴' 캡처한국에 남아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선택지도 있다. 마침 시라카와를 눈독 들이는 구단도 존재한다.
SSG는 3일 KBO에 시라카와의 웨이버 공시를 요청할 예정이다. 웨이버로 공시되면 나머지 구단은 공시 시점 순위 역순으로 시라카와를 지명할 수 있다. 대체 외국인 투수가 필요한 구단은 두산 베어스. 현재 두산은 44승 39패 2무를 기록하며 4위에 올라 있다.
두산은 외국인 투수 브랜든 와델이 지난달 23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어깨 부상을 당했다. 이후 검진 결과 왼쪽 갑하근 부분 손상 진단을 받아 6~7주 정도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미 시라카와는 대체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던 두산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던 선수다. 두산은 이전부터 시라카와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다만 시라카와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두산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에릭 요키시도 대체 외국인 선수 후보에 올려 지난달 30일 입단 테스트를 치렀다.
KBO 리그 타팀으로 둥지를 옮기는 것도 시라카와의 NPB 진출 꿈을 위해서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한국에서 뛰면서도 NPB 드래프트 지명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시라카와는 경기력으로, 순박한 이미지로, 간절한 태도로 한국 야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예고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지만 팬들이 시라카와의 행선지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