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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능청스러운 조정석의 역지사지 하드캐리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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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능청스러운 조정석의 역지사지 하드캐리 '파일럿'

    핵심요약

    영화 '파일럿'(감독 김한결)

    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코미디 영화 속 배우 조정석은 관객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영화 '파일럿'에서도 조정석은 '역시 조정석'이었고, 그의 연기는 '조정석이 조정석했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여장 남자 캐릭터를 맡아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그려내며 '역지사지 ​코미디'를 완성했다.
     
    최고의 비행 실력을 갖춘 스타 파일럿이자 뜨거운 인기로 유명 TV쇼에도 출연할 만큼 고공행진 하던 한정우(조정석)는 순간의 잘못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실직까지 하게 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다시 받아줄 항공사는 어느 곳도 없었고, 궁지에 몰린 한정우는 여동생의 신분으로 완벽히 변신, 마침내 재취업에 성공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또다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지난 2019년 로맨틱 코미디 '가장 보통의 연애'로 데뷔한 김한결 감독이 이번엔 스웨덴 영화 '콕피트'(Cockpit, 2012)를 리메이크한 영화 '파일럿'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콕피트'는 일자리를 잃은 파일럿이 여자로 변장해 여성 파일럿을 모집하는 회사에 지원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파일럿'은 이러한 원작의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와 남성 주인공 한정우가 여동생 한정미(한선화)의 이름을 빌려 항공사에 재취업하며 생겨나는 일들을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여장 남자'라는 설정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남성이 여성처럼 변장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파일럿'은 장르가 코미디이고, 관객들의 몰입은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구호의 수용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파일럿'이 주는 웃음과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파일럿'의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진입장벽을 넘을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그 장벽을 넘는다면, 영화적 설정 뒤에 감춰진 사회 문제가 다가올 것이다.

    장벽을 넘어 열린 마음으로 '파일럿'을 마주한 관객을 기다리는 1번 타자는 오프닝 시퀀스다. 영화는 인기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며 재치 있게 문을 연다. 한정우의 '슬기로운 비행생활' 특집으로 마련된 '유퀴즈'는 현실의 '진짜'로 존재하는 것들을 영화 안에 녹여내겠다는 연출의 시작점이다.
     
    오프닝 시퀀스로 눈길 끌기를 시도한 '파일럿'은 사건의 발단이 되는 회식 사건을 보여준다. 외모 품평 등 성희롱이 난무하는 회식 모습을 묘사하며 '여장 남자'라는 소재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차별 문제를 풀어낼 것임을 예고한다. 일종의 '미러링', 즉 '역지사지'다.
     
    남성인 한정우는 성희롱 논란이 세상에 알려지며 다니던 항공사에서 쫓겨나고 재취업 역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다. 그런 한정우가 술김에 택한 생존 전략은 '여성'이 되는 것이었다. 여동생 한정미의 이름을 빌려 면접 자리에 나간 한정우를 기다린 건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차별적인 질문이다. 여성이 된 자신을 향한 차별을 돌파해 나간 한정우는 '여성 파일럿'으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재취업 후 첫 회식 자리, 성별이 바뀐 한정우가 경험한 것은 성차별이었다. 외모 품평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곳에서 한정우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차별의 언어가 '여성'으로 위장한 자신과 자신의 동료를 향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한다.
     
    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여기서 한정우 대신 차별적인 언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정미(한정우)의 든든한 직장 동료 파일럿 윤슬기(이주명)다. 경력이나 실력이 아닌 '외모'가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 왜 부당한 것인지, 과거 한정우가 회식에서 무엇을 잘못한 건지 해당 에피소드를 통해 알려준다.
     
    이후에도 한정미가 된 한정우는 여성을 향한 은근한 듯 노골적인 성희롱과 추파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본의 아니게 하나씩 깨부수며 '여성 파일럿'으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각종 광고와 TV에 출연하며 명성까지 얻게 된다.
     
    이처럼 한정우가 여성인 한정미가 되어 마주하는 직장과 일상에서의 일들은 현실의 여성들이 겪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코미디 영화 안에서 과장된 리액션이 있을지언정, 묘사한 현실은 '현실' 그 자체다.
     
    그렇기에 한정미가 된 한정우가 이를 직접 몸으로 겪고 부딪히며 깨부수는 모습은 응원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파일럿'이 이러한 방식을 택한 건 일종의 '역지사지'다. 영화를 통해 나와 다른 상대방의 처지를 대리 경험하고, 평소 아무렇지 않게 해 온 말과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일럿'에는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로 유명한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투씨'(감독 시드니 폴락, 1982)의 전개가 엿보이는 것은 물론 오마주 장면도 곳곳에 녹아있다. '투씨' 역시 남성 주인공이 여장을 한 채 여배우로 취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배경으로 업계 현실과 성차별 문제를 포착한 걸작이다.
     
    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그렇기에 '투씨'와 닮은 '파일럿'이 주인공의 여장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에 집중했더라면 성차별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물론 여장 남자 설정으로 인해 빚어지는 코미디가 더욱 견고해졌을 거라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파일럿'은 한정우가 여성 한정미로 분장한 후 재취업에 성공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는 와중에 가족애를 더한다. 일을 핑계로 가족들에게 소원했던 한정우의 사연을 더함으로써 가족을 끌어왔고, 이를 위해 가족들의 이야기를 더하다 보니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나 '파일럿'의 웃음을 책임진 조정석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여장 남자라는 영화적인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코미디 영화에서 조정석이란 배우가 얼마나 자신의 재능과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증명했다. 코미디 연기를 잘한다는 건 기본기가 탄탄하고, 내공이 깊다는 뜻이다. 그의 다음 연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110분 상영, 7월 3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파일럿'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파일럿'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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