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이 5일(현지 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포효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황진환 기자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가장 기뻐해야 할 순간이었지만 잔치 분위기는 산산히 깨졌고, 벌집을 쑤신 듯 논란이 커졌다.
안세영(22·삼성생명)이 진정한 배드민턴 여왕으로 등극한 뒤 던진 폭탄 발언 때문이다. 28년 만의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따낸 뒤 인터뷰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와 대표팀 운영에 불만을 터뜨렸다.
5일(현지 시각) 안세영은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허빙자오(중국)를 눌렀다. 세트 스코어 2 대 0(21-13 21-16) 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후 안세영은 CBS노컷뉴스 등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제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조금 많이 실망했다"면서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조금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결승 당시 입은 오른 무릎 부상 이후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안세영은 또 "제가 부상을 겪는 상황에서 대표팀에 대해 너무 크게 실망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어 "처음에 오진이 났던 순간부터 계속 참으면서 경기했는데 작년 말 다시 검진해보니 많이 안 좋더라"면서 "꿋꿋이 참고 한수정 선생님(트레이너)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부상 뒤 안세영은 지난해 10월 첫 검진에서는 2주 정도 재활 진단이 나왔다. 그러나 재검진에서는 한동안 통증을 안고 뛰어야 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후 안세영이 올림픽을 준비하기까지 과정에서 협회와 대표팀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안세영은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선수들이 보호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의견을 추가했다. 이어 "본의 아니게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의 기사들에 또 한번 상처를 받게 된다"면서 "권력보단 소통에 대해 언젠가는 이야기드리고 싶었다"고 썼다. 자신의 부상에 대한 관리 미흡은 물론 협회나 대표팀 안의 알력 다툼까지도 암시하는 내용이다.
안세영이 5일(현지 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따내자 김학균 감독(왼쪽)과 아구스티누스 코치가 축하해주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황진환 기자사실 그동안 대표팀 안에서 형성된 미묘한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감지가 됐던 부분이다. 여자 단식의 안세영이 한국 배드민턴 간판으로 떠오르면서 생긴 복식 등 다른 종목 선수들과 형평성에 대한 사안이다. 올림픽을 앞둔 시점이라 쉬쉬해왔는데 안세영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자마자 협회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협회는 그동안 안세영에 대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는 입장이다. 안세영에 앞서 여자 단식 간판으로 활약한 성지현 코치는 물론 인도네시아 출신의 로니 아구스티누스 코치가 전담으로 붙었다. 안세영이 세계 정상급으로 도약한 만큼 배드민턴의 다른 종목에는 없는 외국인 코치를 영입했다.
부상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게 협회 설명이다. 협회 관계자는 "안세영이 올림픽에 앞선 유럽 전지 훈련에서 발목을 접질렸을 때 국내에서 한의사를 파견해 치료를 받게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세영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안세영이 대표팀에 발탈된 2018년 당시 대표팀은 복식 선수들이 강세였다. 때문에 안세영은 대표팀이 복식 종목 위주로 운영이 되는 데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안세영은 "단식과 복식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협회는 모든 것을 다 막고, 그러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안세영이 인터뷰에서 고맙다고 언급했던 '한수정 선생님'이 이번 대회에 동행하지 못했다. 지난해 협회가 영입한 트레이너로 올해부터 안세영을 전담해왔는데 계약 기간이 끝났다.
올림픽에 앞선 미디어 데이에서 안세영은 "파리에서 낭만 있게 끝내고 오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그러면서 "트레이너 선생님이 부상에서 일깨워주기 위해 해주신 좋은 말씀"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만큼 안세영이 믿고 의지했던 인물이 오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국가대표 미디어 데이에 참석한 코치진과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황진환 기자하지만 안세영이 느끼기에는 부족한 처우가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는 '특혜'로 비쳐질 수 있다. 협회 관계자는 "대표팀에는 안세영만 있는 게 아니다"면서 "남녀 단식 및 복식, 혼합 복식까지 선수에 코치까지 수십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어 "안세영에게 전담 트레이너까지 붙여줬는데 다른 선수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배드민턴 관계자는 "안세영도 잘 하는 선수지만 대표팀에는 세계선수권과 전영 오픈 등에서 우승한 복식 선수들이 있다"면서 "다른 선수들도 왜 나는 전담 트레이너가 없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배드민턴 용품과 관련해 대표팀 안에서 특정 선수의 불만이 제기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안세영이 지적한 부분은 매우 예민한 데다 상대적일 수 있어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안세영에게는 차별일 수 있는데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는 어쩌면 특혜가 될 수 있는, 괴리감이 생기는 지점이다. 비단 배드민턴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일이다.
협회 고위 관계자는 "안세영이 제기한 부분과 관련해 협회나 대표팀 운영에 문제가 없었는지 면밀히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과연 안세영과 현재 협회, 대표팀이 함께 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