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강원도 고성문화재단은 대진초등학교 명파분교와 홀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시우군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지역주민들과 공유했다. 명파분교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 ②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계속) |
강원도 최북단에 위치한 대진초등학교 명파분교의 전교생은 1명이다. 김시우(13)군이 마지막 학생으로 남아 학교를 지키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이 학교를 지킨 유일한 학생인 김 군은, 3년 전부터 그나마 남아있던 서너명의 학생들이 모두 시내권으로 전학을 가면서 홀로 학교에서 공부하고 급식을 먹으며 지낸다. 김 군을 끝으로 내년 1월 명파분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김 군은 "1학년 때는 누나와 형들이 있었지만 5학년 때부터 혼자돼 외롭고 힘들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이 학교가 저만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졸업 후 학교가 폐교되어도 이 학교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김 군의 바람이다.
박지혜 담임교사도 김 군과 함께 명파분교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2년 반 동안 학생과 교사 둘만의 교실을 꾸려온 박 교사는 "묵묵히 2년을 보낸 마지막 졸업생은 이 학교의 역사를 지킨 주인공이다"라며 "처음에는 친구 없는 학교생활로 미안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익숙해져 더욱 단단한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명파분교의 폐교는 단순히 학교가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마을 쇠락의 상징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 김모(84) 씨는 "옛날엔 금강산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줄지어 들어온 차들이 꽉 들어찼다"면서 "젊은 사람들도 이 동네 들어와서 장사도 하고, 돈 벌 맛이 났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빈집이 넘쳐나고 어린애 울음소리를 못 들은지 오래"라고 김씨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40년전 이 동네로 이사 온 이모(72)씨도 "젊은 사람이 없으니 다 노인들이고 사십대가 가장 젊어 적막하다, 나 죽을 때까지는 이 마을이 없어지지 않겠냐"며 쓴 웃음을 지었다.
문을 닫는 학교의 이야기가 과연 지역만의 문제일까? 도심으로까지 번진 폐교의 불씨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인천의 한 폐교. 진유정 기자 2020년에는 서울염강초등학교와 공진중학교가, 2023년에는 서울화양초등학교가 폐교했다. 올 3월 폐교한 서울 도봉고는 일반고 폐교의 첫 사례로 주목 받기도 했다. 2003년 개교한 도봉고는 개교 이후 학생 수 200명대를 유지하다가 2021년 75명, 2022년 42명으로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결국 문을 닫게됐다. 서울 성수동 카페거리 인근의 성수공고도 폐교됐다.
지역 주민 박모씨(66)씨는 "고등학교가 초등학교 분교 수준으로, 학교는 큰데 학생들이 적으니 학교 운영이 제대로 되겠냐"며 "학생들이 있고 없고는 마을 분위기를 바꾸는데,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은 다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성국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20~2024년) 시도별 초·중등 폐교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137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 101곳, 중학교 30곳, 고등학교 6곳으로 초등학교 비율이 70%을 넘었다. 문 닫은 학교의 81.8%(112곳)가 비수도권에 있는 학교로 강원이 22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도 20곳이었다. 수도권도 서울 6곳, 경기 17곳, 인천 2곳 등 25개교(18.2%)가 폐교했다.
"응애" 소리마저 희귀한 마을들, 대한민국의 축소판
함양 금반초등학교는 지난 2008년 폐교 위기에 처했지만 전국 최초로 '아토피 제로(zero) 특성화 학교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진유정 기자학교가 문을 닫으니 아이는 더욱 귀해졌다.
경상남도 함양 금반마을에서는 최근 1998년 이후 27년 만에 갓난아이가 태어났다.
귀촌한 부부의 셋째 아이 '예솜이'가 주인공으로, 예솜이 부모는 "우연히 함양으로 여행을 왔는데 첫째 아이와 둘째가 자연속에 뛰어 노는 모습과 경치에 푹 빠져 이사를 오게 됐다"며 "예솜이가 태어나서 주민 모두가 기뻐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골이라 병원 등의 시설이 부족해 수시로 타지로 나가야 하는 불편은 감내해야 한다.
금반마을 이장 김성웅씨는 "제가 지난 1998년 아들을 이곳에서 낳았는데, 그 뒤로 처음"이라며 "마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모두 축하해줬다"고 밝혔다.
마을의 중심이었던 금반초등학교는 몇해 전 폐교될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아토피 특수 기숙학교로 전환하면서 명맥은 잇고 있다.
김성웅 이장은 "대부분 외지 학생인데 학원이 없어 마을회관에 '금바실 학당'을 만들어 영어, 예체능 수업을 마을 주민들이 무료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학교도 마을도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라 아이들이 떠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선군 북평면 장열2리 마을주민들이 25년만에 태어난 아기의 특별한 백일잔치에 참석해 축하하고 있다. 정선군 제공이밖에 강원 정선군 북평면 장열2리 작은 마을에서 지난 8월 이진영·최영화 씨의 첫째 아들 이강 군이 25년만에 출생했고, 강원 횡성군 둔내면 두원2리에는 지난 2022년 원형묵·사오속혼(캄보디아 출신) 부부의 장녀가 무려 28년 만에 귀한 손님으로 태어났다.
횡성에 사는 주민 최모(77)씨는 "극단적이지만 30년꼴에 한명이 태어난다고 하면 100년에 아기 3명이 태어난다는 것인데 다른 지역도 조사해보면 이런 마을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와 '2023년 12월 인구동향'을 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24만9200명)보다 7.7% 줄었다. 합계출산율도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2023년에는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통계청의 '2024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93만8천명으로 전체의 19.2%를 차지했다. 내년이면 인구 5명 중 1명이 고령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CBS 스마트뉴스팀 제작조영태 서울대 교수(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는 "인구 정책은 중장기적 과제이면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판단이 필요했는데, 그동안은 '이거 하나면 돼'라는 식으로 특정 영역에만 집착했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이어 "특히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사실상 전무했다"며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궁극적으로 서울, 수도권으로의 집중이고 여성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너무 집중된 현실도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기존 산업의 개편을 통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인구의 근본적 반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