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카드 아히. KOVO 제공더 많은 '외국인 주장'을 V-리그에서 볼 수 있을까. 부상 탓에 일찍 한국 무대를 떠나지만 미시엘 아히(우리카드·등록명 아히)를 통해 충분한 가능성을 봤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프로배구 남자부 우리카드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은 2024-2025시즌을 시작하며 새 주장으로 아히를 낙점했다.
파에스 감독이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아히는 시즌 개막 직전 "감독님이 요청을 하셔서 주장직을 맡게 됐다"며 "기대에 맞게 움직여 보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그러면서 "개인의 수준을 절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가 더 중요하다"며 "선수들이 코트에서 능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시즌을 그렸다.
지금껏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주장을 맡은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언어적 문제가 가장 컸다.
호흡이 중요한 스포츠인 배구에서 팀원들 간 원활한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애매한 판정이 나왔을 때 심판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역할 또한 주장의 몫이다. 그래서 줄곧 주장은 국내 선수들이 도맡아왔다.
공격하는 아히. KOVO 제공걱정의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히는 코트 안팎에서 역할을 다 해냈다. V-리그 데뷔전인 1라운드 첫 경기 현대캐피탈전부터 30점을 쏟아냈다. 팀은 5세트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2-3(18-25 18-25 25-20 25-21 13-15)으로 패했지만, 아히는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점수를 뽑았다.
이후에도 아히는 꾸준하게 20점 이상을 해결했다. 특히 지난달 8일 대한항공전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다. 5세트를 모두 뛰며 23득점 공격성공률 52.38%를 기록하고 역전승의 주역이 됐다. 먼저 1, 2세트를 내주고 궁지에 몰린 팀을 위기에서 빼냈다. 4, 5세트 고비 상황마다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고 세트스코어 3-2(22-25 19-25 25-23 31-29 15-13) 대역전극을 장식했다.
11월 12일 열린 OK저축은행전에서는 올 시즌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이날 아히는 56.46%의 높은 공격성공률로 무려 37점을 맹폭했다. 전위는 물론 백어택, 블로킹, 서브까지 다양하게 점수를 얻었다.
심판에게 항의하는 아히. KOVO 제공코트 밖에서도 팀의 중심이었다. 아히는 팀원들에게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언급했다고 했다. "챔프전에 진출해서 경기를 해보자"는 말도 전했다. 소통과 관련해서도 "전술적인 부분은 문제가 없다"며 "한국 선수들도 그런 부분은 이해를 잘 한다"며 개의치 않아 했다.
10월 30일 한국전력전에서는 경기 종료 후 심판진을 찾아간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날 경기 중 발생한 판정에 대해 직접 연습구까지 들고 와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히 주장 체제에서 우리카드는 1라운드를 3위(4승 2패)로 무난하게 마쳤다. 그러나 곧장 악재가 덮쳤다. 1라운드 직후 부상으로 쓰러졌다. 우리카드는 지난달 19일 "훈련 중 왼쪽 발목을 다친 아히가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은 결과 전치 6~8주 진단을 받았다"고 알렸다.
우리카드는 아히의 대체 선수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구단은 3일 "세르비아 리그 MVP 출신 두산 니콜리치(등록명 니콜리치)를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니콜리치는 4일 삼성화재전부터 경기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호하는 우리카드 새 주장 이강원. KOVO 제공주장직은 부주장이던 이강원이 물려받는다. 아히는 개막 전 "부주장 이강원과 소통이 잘 된다. 호흡이 잘 맞는다"고 칭찬한 바 있다.
이강원은 이번 시즌 9경기에 출전해 30세트를 뛰며 33득점 49.18%의 공격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최근 3시즌 동안 가장 많은 경기를 뛰고 있다. 특히 지난달 20일 OK저축은행전에서는 모처럼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2022년 12월 14일 현대캐피탈전 이후 처음이다. 23일 현대캐피탈전에서는 11득점을 올리며 2년 8개월 만에 두 자릿수 득점을 했다.
다만 27일 KB손해보험전 이후로는 휴식이 필요한 상태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파에스 감독은 이강원의 우측 팔꿈치 통증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서 신체 컨디션이 완벽하게 돌아오기 전까지는 경기에 투입하지 않겠다는 결정도 공유했다.
KOVO 제공외국인 선수에게 주장직을 넘긴 것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아히는 그 역할을 충실하게 다 해냈다. 파에스 감독 역시 아쉽게 팀을 떠나는 '첫 주장' 아히에게 위로의 말을 남겼다. 파에스 감독은 "그동안 팀을 위해 헌신한 아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빠른 쾌유를 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