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 본 전시관인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본 전시장 입구. 김민수 기자제주도립미술관 전경. 김민수 기자'표류'를 주제로 내년 2월 16일까지 83일간 제주도립미술관 등 주요 예술 거점에서 열리는 '2024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예술과 자연이 맞닿는 독특한 순간을 선사한다.
제주도립미술관을 비롯해 제주아트플랫폼, 제주현대미술관 공공수장고 등 다섯 곳에 14개국 87명의 작가가 참여한 작품이 전시된다.
비엔날레 연계 전시로 제주도립미술관 장리석 기념관에서 '누이왁' 특별전이 개최되며 협력 전시로 제주현대미술관에서 내년 3월 30일까지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전이 열린다. 제주자연사박물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도 다채로운 전시가 펼쳐진다.
내년 2월 16일까지 제주 미술·아트 거점 5곳에서 펼쳐져
본 전시가 열리는 제주도립미술관은 '아파기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The Drift of Apagi: The Way of Water, Wind, and Stars)을 주제로 미술관 입구의 조형물이 관객들을 맞는다. 전시장 1, 2층과 복도까지 회화, 조각, 설치, 공예,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시선을 끈다.
'표류'라는 키워드는 사회, 문화, 정치적 이슈 전체를 포괄한다. 제주는 섬이라는 배경 속에서 다양한 문화권이 교류하게 되는 표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표류에 의한 이동과 이주는 남방문화와 북방문화의 공존과 충돌로 이어지며 제주에 독특한 생태 환경과 정체성을 형성하게 했다.
본 전시 '아파기 표류기'는 제주 왕자 아파기를 바탕으로 한 가상과 상상의 기록을 통해 표류를 통한 문명이 여정과 자연과 문화예술의 이동과 이주, 생존과 변용의 생태계를 내포한다.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싱가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이완, 일본, 제주 작가들을 비롯한 아시아권 작가들과 폴란드, 영국, 독일 등의 유럽 작가, 그리고 미국, 캐나다의 미주 작가들이 포함되며 이들은 국제적 맥락 안에서 형성되는 보편적 의제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다.
김민수 기자제주도립미술관 장리석기념관 특별전 '누이왁'. 김민수 기자제주도립미술관 장리석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누이왁' 전시. 김민수 기자제주와 닮은 공간…표류하고 흩어지고 만나는 문화
제주도립미술관에 들어서자, 첫 번째 전시 공간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시 제목처럼, 물, 바람, 별을 매개로 한 작품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장리석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전시 '누이왁'전은 '누(너울)'와 '이왁(이야기)'를 합한 단어로, 너울을 넘어온 이상적인 이야기를 의미한다. 아파기가 표류 중 마주한 낙원과 같은 이상향이 담겨 있다.
전시는 화가의 시선 속 해녀, 관광사진 속 해녀, 제주인들의 해녀 등 3가지 주제로 구분해 선보였다.
'화가의 시선 속 해녀'에서는 평양 출신인 장리석(1916~2019) 화백이 제주에 4년간 머물면서 그린 제주 해녀의 모습을 담은 작품 12점을 만나볼 수 있다. 장리석의 작품 속 해녀는 원시 미술에서 나타는 인체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풍만한 신체를 투박한 붓질과 물감을 두텁게 발라 제주의 해녀들에게 받은 인상을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그려냈다.
'관광사진 속 해녀'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제주의 관광정책에 따라 제주의 대표 이미지로 활용된 해녀의 이미지를 담았고, '제주인들의 해녀'에서는 외부인들의 시선이 아닌 제주인들의 시선으로 기록된 해녀의 모습을 소개한다.
해녀들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가 홍정표(1907~1992), 윤세철(1932~2011), 고광민(1952~)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 기록적 가치를 사진작품 22점에 담아냈다.
본 전시 '아파기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 김민수 기자 김민수 기자 가상의 '아파기 왕자 표류기' 제주 스토리 확장
'아파기(阿波伎) 표류기'는 가상과 상상의 기록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661년 5월에 일본 사신이 당나라와 교역 중에 표류하여 탐라에 도착한다. 이 배편에 탐라왕자 아파기(阿波伎) 등이 일본에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아파기의 가상의 표류는 제주의 정체성에서 스토리를 확장하는 장치이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미시적 언어를 통해 표류의 거시적 주제들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했다.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큼 높은 산을 의미하는 가상의 섬 '운한뫼'에서 아파기의 항해가 시작된다. 항해의 첫 여정인 노질하는 곳을 뜻하는 '네위디'를 거쳐 풍랑을 만나 새들이 쉬고 가는 낙도 '사바당'을 지나 별이 이끄는 '칸파트'를 만난다. 마지막으로 아파기가 표류 중 마주한 낙원과 같은 이상향이 담긴 '누이왁'으로 물과 바람과 별이 이끄는 항해를 통해 성숙해 가며 마침내 이상향에 도달한다.
이야기꾼 아파기의 가상 표류기를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을 들여다 본다. 항해와 표류의 깊은 의미를 담아낸 에필로그 '자근테'로 표류기는 마무리된다. 아파기의 항해는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항해이자 표류임을 표현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 공간의 선택에서도 제주와 표류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살렸다. 제주현대미술관 공공수장고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통한 실시간 생성형 그래픽으로 구현된 표류 체험을 할 수 있다. 아티피셜 네이쳐(지하루+그라함 웨이크필드) 팀의 몰입형 AI+인터렉티브 작품 '천 겹의 표류'를 선보인다.
제주아트플랫폼에서는 인간 지각의 감각적 현상을 공간 속에서 구현하는 부지현의 작품 '궁극공간'과 한승구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주는 메타버스 작품 '소멸의 도시'와 AR(증강현실)과 HMD(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조각 '공존의 도시'로 꾸며진 미래적 시대를 표류해 볼 수 있다.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을 떠나, 작가들의 이야기도 이번 비엔날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일부 작가들은 현장에서 직접 작업을 진행하며, 관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작품의 구상과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한 작가는 '표류'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자신이 제주를 방문한 경험과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풀어내며, '예술은 그 자체로 항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해양 쓰레기들 이용한 전시 바구니 명칭과 양식을 통해 유사한 문화권이 공유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김민수 기자김민수 기자 세계가 만나는 교차로 '제주'
제주비엔날레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 사회와 세계 예술계가 만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오는 주말에는 작가들과의 대화가 이어질 예정이며, 제주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워크숍도 계획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도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개막 이후 참여 작가와 도내 활동 작가들의 네트워킹 프로그램 '커넥트 제주'가 지난달 27일과 28일 이틀간 열렸다. 제주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각 국에서 온 참여 작가들과 소통을 시간을 가졌다.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학생들과도 만나 이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작가들의 피드백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참여작가들은 제주도라는 특별한 공간에서의 전시가 주는 의미와 그로 인해 얻은 창작의 영감을 강조했다. 한 참여 작가는 "제주도에서의 전시가 제 작품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주었다"며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이곳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내년 2월 16일까지 제주 곳곳에서 진행된다. 각기 다른 전시 공간과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동안 관람객들은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전 세계 작가들의 창의력이 결합된 예술의 항해를 경험할 수 있다. 내년 1월에는 본 전시 주제 '표류'와 관련된 컨퍼런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제주비엔날레는 단순한 미술 전시를 넘어서, 제주와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예술적 교차로로서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물과 바람, 별이 함께하는 예술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