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 ②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③"지역에 돈이 안 돈다"…기업·청년 실종보고서[영상] ④어르신 돌보고, 음악가 꿈 키우고…내 고향 지키는 '기부금' ⑤한은이 띄운 '대입 지역비례선발제', 지방소멸 해법인가? ⑥'유치가 아닌 기획' 지역활성화 투자펀드로 일으키는 지역 경제 ⑦"생활인구 확보해야 소멸 막는다" 팔 걷어붙인 위기 지역들 (계속) |
4438명 → 1003명.
6334명 → 1932명.
9104명 → 2952명.
5852명 → 1974명.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위 숫자는 사라져 없어질 위기에 처한 지방 곳곳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반 이상이 토막난 숫자는 지난 20년간 경북 군위, 경남 합천, 전남 고흥, 전남 보성의 사라진 청년(20~39세)들을 의미한다. 지난해 경북 영양군의 청년 인구는 세자릿수까지 줄었다.
전체 인구 역시 가파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지방 소도시, 특히 농촌 지역은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다.
광역시마저 무너졌다. 부산은 15개 구·군 중 11개가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출산 장려, 거주지 이전을 위한 지역 홍보만으로는 인구 위기와 지방소멸의 답을 찾기 어려운 현실. 정부는 난제를 풀 해답을 '생활인구'로 보고 올해부터 이 개념을 정식 도입해 산정에 나섰다.
출산이 장기적 인구 증대 정책, 타 지역 인구 유입이 '돌려막기'라면 생활인구 확보는 '지역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생존법'에 비유할 수 있다.
생활인구란 정주인구뿐 아니라 3시간 이상 그 지역에 체류하며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인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통근, 통학, 관광 등을 통해 해당 지역에서 소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인구를 일컫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인구감소 지역의 여가 소비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인구 감소 지역 여가 업종 소비의 약 절반을 비거주자가 차지했다. 거주자가 아닌 체류인구가 지역 경제의 상당 부분을 견인하고 있다는 의미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곳곳이 생활인구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정부가 내년부터 생활인구를 보통교부세 산정 기준으로도 반영할 계획이어서 생활인구 확보는 지방이 외면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조감도. 경상북도 제공소멸위험지수 1위 군위, 위기 탈출에 총력
소멸위험지수 1위 지역인 군위군은 생활인구 개념이 널리 사용되기 전부터 이미 생활인구 증대를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
지난 2020년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유치를 이뤄낸 것이 소멸 위기 탈출을 위한 군위군의 첫번째 공식 행보.
다사다난했던 이전지 선정 과정을 거쳐 현재 대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TK신공항이 군위·의성으로 옮겨가기로 결정됐다. 당시 군위는 두 개 지역을 후보지로 내세우고 전격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일부 주민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지역 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그마저 불식시켰다.
주민들은 군공항이 이전함으로써 소음 등 불편함이 예상됨에도 2천세대 규모의 공군 관사 설치, 민간공항 유치에 따른 대규모 체류인구 유입 등 기대효과가 더 크다고 보고 한마음으로 공항 유치를 희망했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공항 건설로 약 40만명의 취업이 유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통합신공항이 중장거리 노선을 운행할 계획이어서 공항 이용객과 관련 업종 종사자의 체류가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공항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대구시 편입을 내걸었던 군위는 지난했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지난해 경북에서 대구로 소속을 바꿨다. 공항 이전지 확정이 시급했던 정치적 상황을 이용해 대구 편입을 이뤄낸 것. 이 역시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묘수였다.
고령화된 농촌 상황이 계속 유지될 경우 인구 감소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 광역시인 대구로 편입되면 각종 미래산업을 유치하고 체류인구를 늘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편입 추진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실제로 편입 1년 만에 군위는 대구 내 '기회의 땅'이 됐다. 대구시는 군위에 복합휴양 관광단지, 첨단산업단지, 메디컬센터 조성 추진에 나섰다.
대구시티투어에 군위군 코스가 신설되면서 관광 인기가 급증해 실제 체류인구도 급격히 늘었다. 그 영향으로 지난 6월 기준 군위의 체류인구는 19만2669명으로 주민등록인구의 8.4배에 달했다.
군위군은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한 자체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방소멸 대응 기금과 자체 예산을 투입해 180홀 규모의 파크골프장을 조성하고 인접 부지에 임대형 타운하우스를 짓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전원주택을 1년 단위로 임대해 별장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1년간 머물 임차인들이 군위를 직접 경험하겠다는 계획이다. 체류 인구 확보로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이루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최근 군위는 대구 도심 내 군부대 이전 유치에도 사활을 걸었다.
대구시는 현재 도심 내에 있는 제2작전사령부, 제50보병사단, 제5군수지원사령부, 공군방공포병학교, 미군부대 3개 등 모든 군부대의 인근 지역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유치를 신청한 곳은 네 곳으로 군위군은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다. 원래 경북 소속이었기에 도심과는 거리가 꽤 있으면서도, 편입 이후 대구시 소속이 돼 행정 처리가 쉽고 군부대 유치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전방위적으로 군부대 이전 유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는 군위군은 "군부대가 들어서면 1500세대의 군인 아파트가 조성돼 주민등록인구만 최소 2천명 이상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군위 인구의 10%에 달한다"며 "처음엔 군부대가 들어선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우려와 반감이 일부 있었지만 워낙 인구 증가 효과가 크기 때문에 지금은 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염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숙 군위군 정책추진단장은 "지방소멸 위기 1위 지역으로서 소멸을 막기 위한 절실함에서 각종 사업을 벌이다보니 이것이 자연스레 생활인구 확보로 이어졌다. 현재 하루 7천명인 군위의 생활인구를 만명까지 늘리고 소멸대응기금 지급이 끝나는 2031년 전에 소멸 위험 지역에서 탈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강원 양양군 홈페이지 캡처강원, 전남 생활인구 효과 입증
이미 생활인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강원 양양군은 전국에서 등록인구 대비 체류인구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통계청의 2024년 2/4분기 생활인구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강원 양양군의 생활인구는 총 51만 5708명. 이 중 체류인구(48만 7673명)는 등록인구(2만 7579명) 대비 17.4배 더 많았다.
양양군은 해양 콘텐츠를 활용해 MZ세대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강원관광재단에 따르면 낙산해수욕장, 죽도서핑지역 등 양양군의 상위 9개 인기 해양 관광지에 올해 상반기에만 총 313만 7500여 명이 방문했다. 특히 서핑객들의 경우 반복 방문하거나 장기 체류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양양군은 남대천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2020년 남대천에 생태관광지와 파크골프장 등을 조성했고 매년 3월에는 아기연어 보내기 행사로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올해 상반기에만 약 91만 명이 남대천을 찾았다.
양양뿐 아니라 자연 경관과 관광 자원이 풍부한 강원 지자체들은 생활인구 확보에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평창군과 고성군의 체류인구는 등록인구 대비 12.6배, 16.3배에 달했다.
생활인구 효과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강원도는 도 차원의 정책도 정비했다. 지난 6월 전국 최초로 마련한 생활인구조례, '강원형 생활인구 조례(강원생활도민제도 운영에 관한 조례안)'는 강원에 주소지를 두지 않아도 장기간 강원도에 체류하거나 반복 방문하면 '강원생활도민'으로 인정하고 각종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원생활도민은 강원도 내 시·군에서 공공시설의 사용료를 감면받고 숙박, 레저 관광시설에서 이용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 축제, 관광 등과 관련된 정보도 제공한다.
전남은 국가대표 전지훈련 유치로 대규모 생활인구를 확보했다. 전남도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8월까지 2023~2024 시즌 전지훈련과 체육대회 참여를 위해 84만 명의 선수단이 전남을 찾았다고 밝혔다. 62개 종목에서 2436개 팀이 전남을 방문했으며 전남도는 801억 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해남군은 일본 주니어 육상 대표팀 지도자 출신인 고마츠 타카시를 초빙하는 등 종목별 선수단 맞춤형 프로그램을 준비해 전지훈련을 유치했다. 강진군은 인근에 있는 장흥군과 공동으로 한국중고펜싱연맹 펜싱선수권대회를 개최했고, 전지훈련 기간 동안 선수단을 위해 스포츠시설을 무료로 개방했다.
선수단의 방문으로 전남도 내 시·군의 체류인구는 크게 늘어났다. 훈련 기간 동안 체류인구는 해남 9만 3803명, 강진군은 8만 2761명, 목포시는 6만 8963명으로 집계됐다.
관광사업을 고도화해 생활인구를 크게 늘린 지역도 있다. 체류인구가 등록인구보다 약 8배 많은 전남 담양군은 전남도 내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머문 지역이다.
담양군은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길 등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해 연간 1500만 명이 담양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또 매년 5월 열리는 대나무축제도 방문객 유치에 크게 기여했다. 올해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열린 담양대나무축제에는 약 65만 4천 명이 방문했다.
담양군은 방문객들의 체류 기간을 더 늘리기 위해 2027년까지 사업비 110억여 원을 들여 담양생태야행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길에 야간산책로를 조성하고 조명 아트로 꾸며 밤에도 관광객들의 밤눈도 사로잡겠다는 취지다.
순천정원워케이션 자료 사진. 순천시 제공지역 자원 연계 활용해야 효과 극대화
정부 역시 힘 보태기에 나섰다.
지역의 체류형 콘텐츠 개발을 돕기 위해 지난해부터 '고향올래' 사업을 시작한 행정안전부는 1년에 총 2백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한다.
고향올래 사업지 선정지들은 각 지역의 특색과 관광 자원을 백분 활용해 방문과 체류를 성공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지난 5월 워케이션 사업을 본격 시작한 부산 해운대구는 많은 직장인들에게 바다를 보며 힐링할수 있는 업무 공간을 내어줬다. 평일, 기업을 대상으로 바다뷰의 세련된 업무 공간과 숙박 바우처를 지원하고 있는 워케이션 사업은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참가자들 역시 머리를 식히며 업무를 봄으로써 더 창의적 업무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업무가 끝나면 향토 음식, 서핑 등 부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숙박, 여가, 회식이 더해지니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톡톡하다.
고향올래 사업 우수사례로 선정된 순천정원워케이션은 국가정원이라는 자산을 이용해 5개월 만에 약 천여명의 워케이션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아름다운 국가정원 내에 있는 숙박공간과 업무공간이 평안하고 조용한 공간감을 제공해 많은 직장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캐빈하우스 형태의 숙박 공간은 캠핑 느낌을 물씬 풍겨 인기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각 지역의 자원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해야 생활인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연구원 안소현 부연구위원은 "자연 자원뿐 아니라 특화 대학, 특화 산업 등을 연계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이 갖고 있는 자원들을 최대한 엮어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것이 시작"이라고 밝혔다.
안 위원은 "그 후에는 단순 관광을 넘어 지역에 계속 머물고 재방문 또는 정주를 유도해야 한다. 생활인구 개념이 도입된 이유가 지방 소멸을 막거나 속도를 늦춰보자는 데 있기 때문에 관계를 형성해 재방문과 체류 일수를 늘리는, 질적인 쪽에 포커싱이 맞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