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멕시코 국기. 연합뉴스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붙인 '관세 폭탄'이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다.
오는 4일부터 관세가 부과되는 캐나다·멕시코 등이 즉각 보복조치로 맞불을 놓고 있고, EU(유럽연합) 역시 향후 미국의 부당한 행위가 있을 경우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행정명령에 서명한 캐나다·멕시코·중국에 이어 EU까지 관세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경우 교역 규모 등을 감안했을 때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캐나다·멕시코에 25%, 중국에 추가로 10%의 보편적 관세를 각각 부과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관세 전쟁'의 시동을 걸었다.
이유는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을 포함한 마약이 미국 시민을 죽이는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고, 캐나다·멕시코·중국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으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원용했다.
IEEPA는 1977년에 제정된 법으로, 미국 대통령이 이 법에 따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외국과의 경제 거래를 규제하거나 금지할 수 있수 있게 된다. IEEPA로 외국에 관세를 부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관세에는 예외가 없지만, 수입량이 많아 미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캐나다산 원유 등 에너지 제품에 대해서만 10%의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예외 조항을 두지 않은 것은 미국 역시 경제적 위험을 감수할 뜻이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상대국에 대한 강한 압박을 가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여기다 미국은 '보복 조항'까지 넣었다. 상대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경우 관세를 더 올리거나 범위를 넓히는 등 추가 대응 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해당국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1일(현지시간)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5%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550억 캐나다달러(약 155조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 25%를 부과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트뤼도 총리는 애국심에 호소하며 "미국 켄터기 버번, 미국 플로리다산 오렌지 대신 자국산 제품을 사고 여름휴가를 미국 말고 국내에서 보내자"고 말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맞대응을 예고해온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멕시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장관에게 관세·비관세 조치를 포함한 플랜B를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멕시코는 오는 3일 구체적인 맞대응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 역시 "무역전쟁,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상응하는 반격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타깃으로 거론되는 EU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관세 부과 규모와 시점을 밝히진 않고 있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EU가 미국을 불공평하게 대우했다"며 강한 불만을 털어놓은 바 있다.
EU측은 "EU 상품에 대해 자의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모든 무역 파트너국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겠다"며 "우리의 대미 무역·투자 관계는 세계 최대 규모로 양측에 많은 것이 걸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EU에 따르면 양측의 상품·서비스 교역액은 2023년 기준 1조5천억유로(약 2천270조원)로, 전 세계 교역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멕시코·캐나다·중국 관세는 시작일 뿐"이라며 "2월 중순에 반도체, 의약품, 철강, 알루미늄, 구리, 석유·가스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조치에 이어 이달 중순 반도체 등에도 추가 관세를 매길 경우 한국 역시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며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매우 부유한 나라)'으로 칭한 적도 있다.
2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몬트리올 항구 쌓여있는 선적 컨테이너들. 연합뉴스미국 내에서도 '트럼프발 관세 전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 관세정책은 글로벌 통상전쟁 격화로 이어져 결국 미국내에도 물가 상승, 공급망 훼손, 일자리 손실 등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미국 철강노조(USW)는 성명을 통해 "USW는 오랫동안 무역 시스템에 대한 체계적인 개혁을 요구해왔지만, 캐나다와 같은 주요 동맹국을 공격하는 것은 산업 안정성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식품산업 단체인 소비자 브랜드 협회(CBA)도 "미국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와 상품에 대한 관세는 결국 소비자 가격을 높이고 미국 수출업체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대한 관세 조치는 오는 4일(현지시간) 오전 0시 01분부터 시작된다. 실제 관세 부과까지는 '협상 시간'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불법 이민자 송환 문제를 놓고 콜롬비아와 이견이 생기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가 협력 약속을 받아낸 후 9시간 만에 관세 부과를 전면 보류한 바 있다.
다만 그동안 캐나다·멕시코 고위관리들 사이에서 "미국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실망감이 나왔다는 점에 뾰족한 협상 카드가 나올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