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12·3 내란사태'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쟁점들이 앞다퉈 나왔지만, 결국 파면 여부는 '헌법 위반의 중대성'과 '국민 신임 배반'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재가 이를 기준점으로 삼았던 점을 볼 때, 막바지에 접어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의 결과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9차 변론에서 국회 측은 비상계엄의 위헌성·국회 침탈·정치인 체포 등을 들어 파면 핵심 기준에 해당한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고, 윤 대통령 측은 이를 모두 부인하고 또 다시 부정선거와 하이브리드전 '음모론'을 꺼내 드는데 주력했다.
국회 '중대한 위헌성·국민 배신' vs 尹측 '부정선거·하이브리드전'
전날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은 국회 측과 윤 대통령 측이 현재까지의 주장과 서면증거 요지 등을 각각 2시간씩 정리해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회 측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가 제시한 대통령 파면의 기준을 토대로 윤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일하게 탄핵이 인용됐던 박 전 대통령 사례에서 헌재는 대통령 파면 결정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위법한 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반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우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 부분에서 국회 측은 윤 대통령이 헌법상 요건과 절차에 맞지 않는 비상계엄 선포 행위로 헌법 명문 규정부터 어겼다는 입장이다.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선포해야 할 계엄이 상황에 맞지 않게 선포된 것부터 독재정치나 군정통치의 선언과 다름없다고 국회 측은 주장했다. 선포 과정에서 국무회의 심의나 부서 등 헌법에 명시된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 침탈 행위도 지적했다. 병력을 동원해 국민 대의기관을 침입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건을 의결하고 있는 국회를 물리력으로 방해하고 무산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외에 윤 대통령이 국회 대신 비상입법기구를 설립하려 했다는 의혹과 그 목적이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억압 내지는 제거였다는 점도 '중대한 위반'의 근거로 제시했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점'은 윤 대통령 측의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은 계엄"이라는 주장이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민주공화정의 계속성과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 헌정질서 파괴 행위임에도 헌법 수호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자신을 선출한 국민의 신뢰를 정면으로 배신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의 사법기관에 대한 공격과 지지층 선동은 서부지법 폭동 사건을 불러왔고 만약 직무에 복귀한다면 권력을 동원해 다른 국가기관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결국 이러한 반헌법적 주장과 위헌적 사고는 국민 신임의 배신으로 연결된다는 게 국회 측 주장이다.
국회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는 "피청구인(윤 대통령)은 몇 년 전 그가 받았던 국민의 신임을 더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배신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신속하게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조하겠다며 부정선거와 하이브리드전을 또 다시 꺼내 들었다. 전통적 전쟁 방식에 정치공작과 심리전 등을 더한 하이브리드 전쟁이 국가 안보 위협으로 떠올랐고 중국이 이를 주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자체 정화 능력이 의심되고, 선거관리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되지 않으면 불의한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며, 그들과 연결된 해외 주권 침탈 세력으로부터 국가 주권이 예속된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윤 대통령 측 차기환 변호사는 "대통령께서 전시사변에 준하는 사태 판단한데에는 하이브리드전을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체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같은 '음모론'에 윤 대통령 측은 1시간여를 소요했다.
남은 시간 동안 윤 대통령 측은 여러 증언이 빗발치는 국회 봉쇄나 국회의원 끌어내기, 정치인 체포 지시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큰 물리적 충돌이나 국민들이 다치는 일이 전혀 없었고 단시간 내에 계엄이 해제됐다는 주장도 펼쳤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원·황진환 기자·대통령실 제공"조 청장! 국회의원 다 잡아"…尹 측 대리인 항의 퇴장
이날 변론에선 갖가지 주요 증거들도 공개됐다. 국회 측은 소추 사유 입증을 위한 증거로 조지호 경찰청장의 피의자 신문조사(피신조서) 일부를 공개했다.
피신조서에 따르면 조 청장은 "전화를 받았더니 대통령은 저에게 '조 청장!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고 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조 청장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1시 30분쯤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3분쯤까지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러한 내용으로 총 6회 전화를 받았다며 "대통령이 굉장히 다급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조 청장은 또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계엄 당시 첫 번째 통화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김동현 판사를 포함해 15명을 불러줬고 두 번째 통화에서 "한동훈(전 국민의힘 대표) 추가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국회 측은 여 전 사령관의 진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14명을 특정해 체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직후 장관으로부터 처음 들은 게 맞다"며 "(대통령이 평소에) 비상조치권을 사용하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아울러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대해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로 생각하지 않는다", "간담회 비슷한 형식이었다" 등으로 진술한 수사기관 조서도 공개됐다.
핵심 쟁점인 정치인 체포와 비상계엄의 절차적 위법성을 입증하는 증거지만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은 "진술 조서를 증거로 조사하는 것은 법률(형사소송법)에 위반된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심판정을 퇴장하기까지 했다.
헌재는 재판부의 증거 채택 결정은 이미 4차 기일에 이뤄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20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공범의 피신조서도 피고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지만 헌법재판은 다르다는 판단이다. 실제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해 진행하지만 헌재법에서 준용의 범위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범위'로 제한된다.
한편 헌재는 오는 20일 10차 변론을 열고 한덕수 국무총리,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하기로 했다. 10차 변론 이후 추가 증인 채택이 없으면 2월 말에 변론이 종결되고 3월 중 결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