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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vs "금리"…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도 정책당국 공방만

"추경" vs "금리"…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도 정책당국 공방만

성장 전망 1.5%로 하향…물가상승률은 1.9% 이상 예측
저성장 속 고물가 '스태그플레이션'…지속되면 불평등↑
경기위축 대책 놓고 이견…한은 "추경" vs KDI "금리"
"정치권이 의지 갖고 구조조정해야" 지적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못미치는 1%대 초중반에 그치고, 물가상승률은 2%대에 달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일본식 저성장이 가시화되는데도 대책을 내놔야 할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은 책임 회피에 가까운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3일 한국은행이 지난주 발표한 경제전망(Indigo Book)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1.9%에서 1.5%로 하향조정됐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BOK 이슈노트)'에서 2024~2026년 잠재성장률을 2% 수준으로 추정한 바 있다. 올해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훨씬 밑도는 저성장에 빠지는 셈이다.

한은은 "美관세정책 예고 및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심리위축 등 영향으로 1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0.2%에 그쳐 당초 예상치 0.5%를 하회할 전망"이라고 조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2분기 이후에는 정치 불확실성이 점차 해소되는 가운데 금융여건 완화 영향도 나타나면서 내수는 완만하게 회복될 것"이라며 "반면 수출은 통상환경 악화로 연말로 갈수록 하방압력이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금융여건 완화란 금리인하로 돈을 빌리기 쉬운 환경을 의미하는데, 수출기업이 아닌 내수 부문에서의 영향이면 가계 빚 증가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숫자로 보는' 내수지표는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가계 소득이 늘고 소비가 활성화돼 돈이 돌아야 한다.

문제는 지난 한 해 가계소비를 위축시킨 고물가가 지속·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올해 성장 전망치를 0.4%p나 깎으면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전망과 동일한 1.9%를 유지했다. 기존 전망치(1.9% 성장, 1.9% 물가상승) 상황에서보다 경제주체가 체감할 고물가는 더 심화하는 것이다. 가계로선 소득은 늘지 않고 물가만 높아져 지갑을 닫을 유인이 된다. 그런데도 한은의 전망처럼 소비가 늘어 내수가 '회복'되려면 부채를 늘려야 한다.

한은은 물가상승률 1.9% 전망과 관련해 정부 관리 목표 수준인 2% 이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상방요인과, 낮은 수요압력 및 정부 물가안정대책 등 하방요인이 상쇄된다"고 평했다. 그러나 성장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은 상황에서 '2% 이하'란 기준선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한은은 경제전망 발표 이틀 뒤 낸 '환율의 장단기 물가 전가효과 분석: 개별 품목을 통한 파급경로를 중심으로'란 보고서에서도 전망치 1.9%보다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은은 환율 장기민감물가가 시차를 두고 오랜 기간 영향이 나타나는 점을 들어 "지난해 11월부터 치솟은 환율 영향이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향후 정치 불확실성 해소로 환율이 지금보다는 안정되더라도 이미 지난해 말부터 1500원 선까지 위협하며 요동친 고환율의 물가 영향이 계속될 것이란 점을 시사한 대목이 눈에 띈다.

日침체 서막 스태그플레이션…정치혼란 속 당국 책임 공방만  

연합뉴스연합뉴스
한은이 제시한 수치를 종합하면, 올해 우리경제는 심각한 저성장과 침체 국면에서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stagnation+물가상승 inflation)의 깊은 터널을 지나게 된다. 성장하지 못하는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소득과 자산 불평등은 심화한다. 일본식 침체의 서막이다.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현재 우리 경제는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바로 디플레이션으로 가긴 어렵고 일본식 저성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실제 경제상황이 한은의 수치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올해 성장률은 1.5~1.6%, 잠재성장률은 어떻게 계산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2%가 안 되는 걸로 보인다. 1.7~1.8% 수준"이라며 "물가는 1%대가 아니라 (2%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반면, 기획재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진단은 엇갈린다. KDI는 지난달 '경제전망 수정'에서 올해 성장률을 1.6%, 물가상승률도 1.6%로 전망했는데, 이런 진단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일반적인 경기침체에 가깝다.

진단이 다르다 보니 해법도 엇갈린다. KDI는 금리인하에 초점을 맞췄다. KDI는 "통화정책은 좀 더 자주 조정할 수 있는 반면에 재정정책은 예산안이 있기 때문에 대개 1년에 한 번 정도 조정 가능하다"면서 "적어도 2~3차례 정도 (금리를) 내리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통화 당국에 촉구했다.

다만 KDI의 물가 전망은 같은 기재부 산하 통계청의 지표와도 괴리를 보인다. 통계청의 '2025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2%로 급등해 5개월 만에 다시 2%대로 올라선 상황이다.

KDI는 줄곧 내수침체의 원인이 고금리에 있다며 금리인하를 주문해 왔다. 지난해 8월 '경제전망 수정' 발표에선 "민간부채가 대규모로 누적된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가계 소비여력과 기업 투자여력이 제약되면서 내수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9월 들어 물가상승률이 1%대로 떨어지자 KDI는 11월 '최근 물가 변동 요인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가 정부지출보다 물가상승률에 보다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2%)를 하회하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지 않도록 통화정책의 긴축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주문하며 반박한다. 이 총재는 올 1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하면 어느 쪽이고 안 하면 어느 쪽이고 자꾸 정치적으로 해석돼 부담이지만, 성장률을 보완하기 위해 15조에서 20조 정도 추경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결국 금리인하를 단행한 2월 금통위 때도 이 총재는 "금리만으로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15조~20조 원 정도 추경을 하면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정도 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2월 금통위 직후 KDI의재반박이 나왔다. 조동철 KDI 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제정책을 펼 때는 우선순위와 효과를 따져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는 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이 더 신속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금리인하는 금통위원들이 의사결정을 하면 빠르게 집행이 될 수 있지만 재정정책은 여야 합의를 거치고 정부가 예산안을 짜야 하는 등 움직이는 것이 훨씬 무겁다"고 밝혔다.

'추경을 편성하라'는 한은과 '기준금리를 내리라'는 KDI의 이견이 반복되는 이같은 설전(舌戰)은 경제정책의 두 축인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이 '네 탓 공방'만 이어가는 모양새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12·3 내란사태에 따른 정치 혼란은 당국간 정책 이견을 조정할 정치적 해법 모색을 어렵게 한다. 김상봉 교수는 "(경제정책을) 공무원한테만 맡기기보단 정치권이 의지를 갖고 구조조정도 했었어야 되는데 시기를 놓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출 증가로 자영업자를 늘리기 보다 중소기업 직접 투자를 늘려 기술개발 인력 일자리를 늘리고, 금융지원은 서민 금융 확충에 한정하는 등 '무작정 돈 풀기'가 아닌, 치밀한 재정·통화의 운용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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