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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최상목 대통령 대행은 왜 대미 무역흑자가 '일시적'이라 했나?
최근 몇년간 대미 무역흑자 급증했지만 대미 직접투자도 급증
한국 기업이 한국 아닌 미국서 공장 지으니 한국 중간재 수출↑
한국 기업들 2023년에만 미국에 양질의 일자리 2만여개 창출
투자·고용 확대로 일군 동맹…트럼프 시대엔 이나마 무용지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회사진취재단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회사진취재단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일시적'이라고 강조할 계획입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공개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한 대목이다.

최 대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가 언급한 대미 무역흑자가 '일시적'이라는 부분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대미 무역수지는 2023년 444억 2430만 달러를 기록해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무역수지 흑자 1위국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무역흑자도 556억 6508만 달러에 달한다.

반면 대규모 흑자를 기록해오던 대중 무역수지는 같은 기간 각각 180억 달러, 68억 6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수교 이후 처음으로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사실상의 '탈중국'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것이 최 대행이라는 점에서 대미 무역흑자 확대는 현 정부와 최 대행의 큰 자랑거리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최 대행이 이런 대미 무역흑자가 '일시적'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 이유는 바로 현 정부 들어 급격하게 증가한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에 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연평균 143억 8천만 달러였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투자액은 269억 2천만 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무역흑자 규모의 71% 수준이다. 즉, 대미 무역흑자가 과거에 비해 급증했지만 상당액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여기다 무역흑자의 성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몇년간 삼성과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대기업들은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지었다.

미국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말 바이든 당시 대통령은 "나는 한국에 가서 삼성이 수십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도록 설득했다"며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성과로 꼽았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한국의 장비와 자재들이 미국으로 건너간다. 협력업체들도 따라간다. 이에따라 대미 수출 비중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이는 바꿔말하면 대미 수출이나 무역흑자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은 미국 현지에 한국 대기업들이 공장을 많이 짓는 등 투자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WSJ은 "한국의 대기업이 바이든 행정부가 제공한 인센티브 영향으로 미국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해왔다"며 "지난 2년간 미국에 '그린필드 투자'(생산시설·법인 설립)를 가장 많이 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설명했다.

최 대행이 대미 무역흑자가 '일시적'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호기롭게 탈중국을 외치며 시장 다변화를 추구해 얻은 성과인데 이것이 '일시적'이라고 강조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

그의 설명처럼 한국 기업들이 미국 공장 건설을 끝내고 제품 생산이 본격화되면 한국의 무역흑자 규모도 줄 수 있다. 미국은 현지 생산 제품의 소재도 미국산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기업에 더 많은 공장 건설 등 대미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어 당분간 한국 중간재 수요가 꾸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하면 한국 대기업이 더이상 한국이 아닌 미국에 더 많은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는 점에서 '탈한국'을 의미한다.

실제로 2023년 미국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로 창출된 일자리는 2만 360개로 중국, 일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한국 기업들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향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에서 최근 몇년간 한국 기업의 투자 증가가 미국 경제와 고용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은 좋은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이 협상 카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지속적인 대미 투자 확대를 전제로 깔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정치적 혼란과 내수 부진, 그리고 기업 경쟁력 약화, 저출생 고령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럴때일수록 국내 투자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주요 기업들은 미국 투자에 보다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가 별로 크지 않은듯 하다.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경제 상황이 나은 대만 조차 자국이 보유한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 TSMC의 대미 투자가 늘어나자 '탈대만'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 잠잠하다.

돌아보면 지난 몇년간 미국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국,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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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윤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하자 내빈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장면은 한국 대통령의 위상이 높아진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등 지도부가 한국 대통령을 불러 장기를 뽐낼 판을 깔아주고 챙긴 것은 한국 대표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와 미국인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였다.

현 정부는 '한미동맹'이 역대 최고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공짜 동맹은 없다. 오히려 트럼프 2.0 시대에는 그나마 돈을 쏟아부어 일군 동맹조차 무의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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