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민감국가 리스트 관련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는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에 '보안 문제'가 있다고 밝혔지만 의문이 완벽하게 해소되진 않고 있다. 보안 문제의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지 않으며 개별 사건들에 대한 추측만 이어지는 상황이다. 아울러 '외교정책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 지은 발표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는 이어지고 있다.
정부도, 美대사관도 '보안문제' 탓…구체적 사안은 언급 안 해
외교부는 지난 17일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한 것은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했다"고 공지했다.
다만 구체적인 보안 문제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국내에선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 도급업체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반출하려고 시도한 사건이 보안규정 사례 중 하나가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미국 에너지국 감사관실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직원이 한국으로 가져가려고 한 정보는 INL이 소유한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로, 특허 정보에 해당한다.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 보고서. 에너지부 감사관실 제공감사관실은 직원의 정부 이메일과 메신저 기록을 조사한 결과 직원과 외국정부 간 소통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외교부 측은 해당 사안은 민감국가 지정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도 주한미국대사관을 앞세워 진화에 나섰다. 조셉 윤 미국대사대리는 18일 민감국가 지정에 대해 "큰 문제는 아니다"라며 "상황이 통제불능으로 된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윤 대사대리는 "에너지부 산하에 반출이 금지된 품목을 다루는 연구소가 있는데 이곳에 지난 해에만 2천명이 넘는 한국 학생, 공무원, 연구원이 방문했다"며 "한국에서 온 방문객이 너무 많다보니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방문객이 반출 금지품목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역시 구체적인 사건은 설명하진 않았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가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초청 특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외교정책상 문제 아니라는 정부…核논쟁 파장 최소화 의도?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이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내 핵무장 여론이 단초가 됐을 것이란 분석에 선을 그었다. 다만 단순 보안 문제로 동맹국을 민감국가 목록에 올리는 것이 합당하느냐는 문제제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한 관료 출신 전문가는 "외교부가 민감국가 지정을 촉발한 직접적인 이유만 가지고 설명하려는 것 같다"며 "그간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가 우리 과학자들의 핵과 원자력 관련 정보 문제가 생기니 (민감국가 지정이)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민감국가 목록에 이름을 올린 지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상황을 인지하고, 원인 파악도 늦었던 외교 난맥상에 대한 비판은 이어질 전망이다. 급기야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미국으로 급파해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민감국가 효력이 발효되는 다음달 15일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우리 정부의 요청이 수용될지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