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올해 개교 79년째를 맞은 육군사관학교가 그간 숱한 정치 개입으로 지탄을 받아온 것과 달리 미국 육사는 개교 20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지켜온 것으로 유명하다.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 시절부터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강조된 이래 미군은 특정 정파나 이념에 빠지는 것을 단지 규범 위반을 넘어선 심각한 불명예로 여겨왔다.
일례로 마크 밀리 전 합동참모의장은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에 의한 의사당 난동 사태 때 헌법 수호 의무를 강조하며 정치적 외압에 결연히 맞섰다.
그런 미국 육사와 한국 육사가 올해 묘하게 일치하는 점이 있다. 양쪽이 똑 같이 61대 교장이 재임 중이라는 것. 하지만 이는 생도 교육과 학교 운영에 대한 두 육사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는 또 다른 숫자다.
223년 역사의 미국 육사는 교장의 평균 재임 기간이 3.7년인 반면 한국 육사는 1.3년에 불과하다. 실제로 직전인 60대 교장(정형균 소장)은 7개월 만에 물러났고 58대 교장(전성대 소장)은 6개월도 못 채웠다. 57대 교장(강창구 중장)도 7개월짜리 단명에 그쳤다.
이처럼 스쳐가기 식 경력 쌓기나 군 생활의 마무리 직책 정도로 활용되다 보니 학교 운영 지도의 깊이와 일관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육사가 빛나는 전통을 쌓아온 반면 우리 육사는 구시대적 행태에 갇혀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미 육사는 순수 학문적 기준에서도 세계 유수의 대학과 비견된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합뉴스물론 이는 육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개교 79년을 맞는 해사도 똑 같이 61대 교장이 재임 중이며, 개교 76년이 된 공사도 57대 교장이 학교를 책임지고 있다. 이 역시 평균 1.3년꼴로 교장이 바뀌는 것이다.
엄효식(전 합참 공보실장)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육사 교장은 전방 군단장이나 사단장을 마치고 2차 보직으로 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오래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소신을 갖고 교육에 헌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개교 80주년을 맞는 육사는 현재 심각한 존폐 위기에 놓여있기도 하다. 12·3 내란사태의 여파로 사관학교 통합은 물론 육사 폐교까지 거론된다. 시대착오적 군사 쿠데타가 재발하고 죄다 육사 출신이 주축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현 교장인 소형기 중장의 경우는 방첩사 참모장으로 여인형 전 사령관을 보좌하다 12·3 사태 당일 취임했다. 여 전 사령관과 소 전 참모장, 김철진 전 기관실장까지 방첩사 3개 핵심 보직이 한꺼번에 외부 충원된 적이 없기에 내란 연루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