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대국민 토론회'가 진행되는 모습. 최서윤 기자23일 정부가 플라스틱 총량을 줄이기 위한 종합대책 초안을 공개한 자리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차례 시행 착오를 거친 '종이→플라스틱 빨대' 사태처럼 '컵 따로 계산제' 등 세부 정책이 효과를 내기보단 '풍선효과'를 야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상 진단과 대책의 근간이 되는 관련 통계부터 정확하지 않거나 미비해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여러 의견을 들어 내년 상반기 최종대책을 확정·발표한다는 계획인데, 한동안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 마련…배달·택배 포장 규제도 예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소재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대국민 토론회'를 열고, 대책 초안을 발표했다.
기후부에 따르면 3년간 물질 흐름 통계를 분석한 결과 국내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연간 7.1% 증가하고 있으며, 사용 수명이 짧은 포장지의 용기류가 절반 가량 차지한다. 이 중 물질재활용은 아직 26% 수준에 머무르고 단순 소각·매립이 36% 정도로 여전히 큰 비중(화학적재활용 1%, 열적 재활용 37%)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기후부 진단이다.
기후부 이정미 자원순환정책과장은 "물질 흐름 분석을 통해 주요 감량 타깃인 포장재·용기류 그리고 물질 재활용 확대라는 출발점의 지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도달 목표로는 △채굴·소비의 원천 감량 △지속가능한 설계·생산 △한 단계 높은 재활용 △순환경제 산업육성 4가지를 제시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플라스틱 사용 총량을 줄이기 위해 포장재·용기류 원천 감량과 물질재활용 중심의 처리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기후부 발표 자료 캡처 원천감량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으론 △2012년부터 동결된 폐기물부담금 현실화 △컵 따로 계산제(컵 가격 별도 표시)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 품목 도입 확대 △장례식장 일회용품 사용 규제 △배달 용기와 택배 포장 규제 △재생원료 사용 강화(내년 5천t 이상 생산자 10% 혼합 의무→2030년 1천 톤(t) 이상 생산자 30% 혼합 의무) 등을 준비 중이다.
설계·생산 과정에선 재활용이 어려우면 생산자에게 패널티를 부여하고 쉬우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유럽연합(EU) 에코디자인지침(ESPR)과 같은 규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장은 "EU 동향과 K-GX(한국형 녹색전환) 전략을 반영해 중점 대상 제품을 정하고 재활용 용이성, 내구성, 수리 용이성, 재생원료 사용량, 탄소발자국 등 세부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시범 사업 및 법령 정비를 거쳐 2028년부터는 EU와 상호 인정 가능한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EU는 기존에 30여개 품목에만 적용하던 지속 가능한 제품 설계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을 역내 유통되는 모든 일반 제품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안건을 지난해 유럽의회에서 의결했다. 제품 패스포트(여권) 도입으로, 구성 정보와 원자재 출처 및 재활용 이력 등을 다 공개해 제품 겉과 속이 전부 친환경 소재로 리디자인(re-design) 되도록 하는 규제다.
기후부는 이밖에도 EPR 제도 대상 품목을 완구류, 플라스틱 컵, 전기전자 제품 등으로 확대하는 등 고품질 물질 재활용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의류도 EPR 대상 품목으로 도입해 미판매 의류 소각을 줄여간다. 아울러, 플라스틱 수노한이용 기술력을 높여 산업경쟁력으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이 과장은 이 같은 대책들을 통해 "2030년 일회용품 폐기물 배출량은 10만t 이상 줄이고 페트병 30억 개 분량의 페트 재생원료를 사용하겠다"며 "다회용 배달 서비스는 3배 이상, 다회용 택배 서비스도 2배 이상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현재 연간 50만 톤에 달하는 일회용품 폐기물 배출량을 2030년 40만 톤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기후부 발표자료 캡처 "플라스틱 본진 일회용 포장용기 대책 통째로 빠져", "산업계 피해 최소화해야"
정부 초안 발표 뒤 이어진 패널토론에선 저마다의 시각에서 우려를 쏟아냈다. 시민사회에서는 대책의 미비를 지적했고, 산업계에선 영세업체들의 피해 최소화를 당부했다. 청중 가운데서도 질의와 건의가 쏟아졌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정부 목표에서 감량의 목표가 구체적 수치로 제시됨 점은 한단계 진전된 내용"이라면서도 "문제는 플라스틱의 본진인 일회용 포장용기의 포장재를 어떻게 줄일지 대책이 통으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소주시장도 재사용 유리병에서 일회용 페트병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런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면 의미있는 감량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포장재 감량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U의 경우 별도의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PPWR)이 올해 2월 발효돼 내년 8월부터 시행된다. 포장재의 재활용성 등급을 70% 이상으로 하고, 플라스틱 포장재는 폐기물에서 회수한 재생 플라스틱을 일정 비율 혼합해야 하는 규제다.
홍 소장은 "재활용과 관련해서는 통계의 정비도 매우 시급하다"며 "특히 재생원료가 생산된 이후에 유통과 수출입 관련 통계가 있어야 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재생 원료의 재질별 생산과 수출과 수입에 대한 통계가 있어야 산업계에서 재생 원료 사용과 관련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EU의 PPWR과 연계시켜서 결국은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플라스틱 포장재의 재생 원료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에 관련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코앤파트너스 이한경 대표는 "EU의 ESPR, PPWR 등 이 모든 것들은 설계 단계에서 제조자들이 책임을 갖고 자원을 순환하도록 하는 규제"라며 "수입품에 대해 '쓰레기는 안 받겠다. 자원화 가능한 것만 받겠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EU는 하위 20~30%는 시장에서 퇴출하는 로드맵을 발표해 전반적으로 제품 순환성을 끌어올린다는 목적성이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규제가 실제 설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업체 입장에서) '그냥 부담금 내고 말지' 이렇게 돼선 (정부의 자원순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판매되는 커피. 연합뉴스반면, 관련 업계에선 일회용컵과 배달용기 관련 환경문제가 부풀려졌다고 호소했다.
한국플라스틱포장용기협회 이재형 부회장은 "테이크아웃 컵이랑 배달용기가 환경문제의 대부분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환경부의 2023년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흘라스틱 폐기물 총량 980만t 중 생활폐기물이 590만t, 사업장폐기물이 380만t이었다"며 "대부분 저희 회원사(105개 사)가 생산하는데 수요조사를 해보면 테이크아웃 컵은 최대 5만t, 배달용기 생산량은 약 20만~22만t이라 우리나라 1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의 약 0.5%, 2.8% 정도를 각각 차지한다"고 했다. 오히려 "비닐류는 국가통계를 보면 214만t을 사용하는데, 이 중 22%는 물질재활용이 안 되고 대부분 소각된다"고 지적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박호진 사무총장은 "컵 따로 계산제는 프랜차이즈 업계 입장에선 상당히 수용성 높은 정책"이라면서도 일부 영세 업체들은 도입에 애로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커피업체는 브랜드만 800개, 가맹점수만 2만 9천 곳에 달하고, 비(非)프랜차이즈를 포함하면 전체 매장은 약 10만 개로 추정된다. 제과제빵을 합치면 더 숫자가 커질 것"이라며 "대부분 영세한 중소상인, 소상공인 매장인데 단기간에 텀블러 할인 체계 마련하고 다회용컵 세척 장비를 갖추고 대응하는 건 굉장히 큰 숙제라 컵 비용을 별도로 떼어 할인해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편의점 커피시장도 함께 규제할 필요가 있다"며 "전체 편의점 숫자가 5만 9천 곳인데 대부분 일회용컵으로 포장판매한 커피를 판매하고 있어 이번 정책에서 편의점 카페가 제외되면 소비는 자연스레 규제가 없는 쪽으로 풀려가는 '풍선효과'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한국화학산업협회 심도용 실장은 "우리나라가 전세계 4위 규모의 석화-에틸렌 생산규모를 갖고 있고, 전세계 1위 빨대회사도 한국에 있는 등 산업적 역량이 뛰어난데, 산업계 타격을 고려해 산업부-기후부가 양면을 잘 고려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환경과 산업경쟁력이 조화를 이루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예컨대, 바이오 기반이나 생분해 소재 등 화학적 재료를 이용한 친환경 소재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탈플라스틱 산업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제안이다.
관련해 좌장을 맡은 충남대 환경공학과 장용철 교수도 "석유화학 기반의 버진플라스틱에 대한 통계뿐만 아니라, 유럽은 이미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통계도 내고 있고 일본도 바이오매스 플라스틱을 2030년까지 200만t 제공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며 "이런 부분들도 통계에 꼭 담아줬으면 좋겠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이날 토론회는 유튜브로도 생중계됐으며, 누구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기후부는 이렇게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초 관련 업계 등 이해관계자 개별 접촉 및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최종대책을 확정·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개회사와 폐회사를 통해 "오늘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시안적 성격"이라며 "국민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봐주시는 많은 분들이 가감 없이 의견을 주시면 충분히 담아서 최종안을 확정하도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