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연말 정국이 아직 시작도 안 한 '이혜훈 인사청문회'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송곳 검증'을 벼르는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친정인 국민의힘이다.
인사발표 당일 제명을 단행한 국민의힘의 반발은 상상 이상이다. "배신자", "부역자" 등의 총공세가 이어지는 중이다.
여권에서도 '윤 어게인'(Yoon Again) 인사의 영전을 마뜩찮아 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만약
적격성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 비위의혹이 크게 불거진다면, 조기 낙마가 가능하다는 관측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장동혁 "양지 부른다고, 소신 버리고 지옥行" 맹폭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의힘은 자당 출신인 이혜훈 전 의원의 기획예산처 장관행(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예산처는 현 정부 조직 개편의 산물이란 점에서 상징성이 작지 않다. 내년 1월 2일부터 기획재정부에서 분리되는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과 재정정책·관리 및 중장기 전략을 총괄하는 핵심 부처로 꼽힌다.
국민의힘은
5개월여 남은 지방선거의 키를 쥔 수도권(서울 중·성동을) 현직 당협위원장이 당적도 정리하지 않은 채 '자리 욕심'을 챙긴 것은 "등에 칼을 꽂은 것"(당 관계자)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분위기다.
장동혁 대표는 전날, 이 대통령의 협치 제스처에 제명으로 어깃장을 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 "이 전 의원 기용은 '무늬만 협치'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잠시 볕이 드는 곳이라고 해서 본인이 가져온 소신·가치와 동지들을 버리고, 지옥에라도 갈 수 있단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며 이 전 의원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연이어 "참담하다"거나 "개탄을 금할 수 없다"는 감정적인 표현들도 쏟아냈다. 당 중앙윤리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이 전 의원을 '즉결 처분'한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진영을 초월한 인사란 점에서, 이 전 의원이 이례적인 경우는 아니다. 이 대통령은 이미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농림축산식품부 송미령 장관을 유임시켰고,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권오을 전 의원을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기용한 바 있다. 이번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지명된 김성식 전 의원도 바른미래당 출신이다.
다만,
이 전 의원의 경우 보수정당이 휩쓸어온 서울 서초갑에서 17·18·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최근까지 서울시당에 지역 민원을 넣었다는 점에서 '금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계파를 불문하고
"영혼을 팔았다"(김재원 최고위원)거나 "변절"(이성권 의원) 등의 반응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내부에선 탄핵 찬반으로 갈렸던 당이 모처럼 단일대오를 이루고 있다는 평마저 나온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빨리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증 과정에서 뭔가 (논란이) 터져 나왔을 때 '보수의 문제'라는 프레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라며 "당의 기강 차원에서도 싹을 잘라야 했다"고 전했다.
노선, 추가의혹 등 검증 벼르는 국힘…'조기낙마' 가능성도 거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운데)가 29일 오후 전남 현안 사업 현장인 해남군 산이면 솔라시도를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에 새해 초로 예상되는 인사청문회는 난타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과거 이 대통령의 '기본소득' 정책을 공개 비판한 이 전 의원의 노선 △제보에 기반한 추가의혹 등을 샅샅이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을 겨냥해 "긴축 재정 등 우리 당에서 지금껏 가져온 정체성을 다 바꿔야 되지 않겠나"라며
"본인이 살아온 삶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그걸 송두리째 갖다버릴 만큼 장관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결국
청문회를 거쳐도 후보자가 이 정책적 간극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긴 어려울 거라는 게 국민의힘의 시각이다. 이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성장과 복지 모두를 달성하고 지속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이재명정부의 국정목표는 평생 경제를 공부하고 고민해온 제 입장과 똑같다"고만 해명했다.
야권에서는
상황에 따라, 여성가족부 강선우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킨 '보좌진 갑질 의혹' 등 치명타가 될 만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런) 이슈들이 터진다면 과연 민주당에서도 버텨줄까 싶다. 이 전 의원은 원래 그쪽(여권) 사람도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범야권에 속하는 개혁신당도 조기낙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전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배신자 낙인찍기는 국민 눈높이에 안 맞다고 본다"고 했다. 동시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반대(반탄) 집회에 참여한 점 등은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청문회 경과에 따라, 이 전 의원 지명 철회도 가능하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본다"고 답하기도 했다.
여권에서도 이 전 의원의 '반탄' 이력 관련 사과 또는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 중이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이 전 의원에 대해 내란과의 단절 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