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가 '2026년 경제성장전략'(옛 경제정책방향)에서 '양극화'를 단순한 분배 문제가 아닌, 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규정했다. 성장의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저성장의 고착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판단이 정책 전면에 반영됐다.
별첨에 '양극화 현황·평가' 첫 포함…성장 전략의 문제의식 전환
9일 발표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보면, 이번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별첨 자료에 '양극화 현황 및 평가' 항목이 2쪽 분량으로 새롭게 포함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발표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는 없던 구성으로, 정부가 양극화 문제를 성장 전략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진단하고 다루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가 제시한 지표는 양극화의 현주소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23년 기준 0.323으로, OECD 평균(0.307)을 훨씬 웃돌았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 역시 5.7로, OECD 평균보다 0.5포인트 높았다.
정부는 이런 수준의 소득 격차가 고착될 경우 근로·교육 유인이 약화되고 계층 이동성이 저하돼 성장 기반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산 격차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순자산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지난해 3월 말 기준 0.625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특히 부동산 자산에 집중된 격차 구조를 양극화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수도권으로 인구와 기업이 몰리면서 주택 가격이 급등했고, 이로 인해 자산 축적 여부가 개인의 노력보다 거주 지역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자산 격차 확대는 소비 여력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이는 내수 기반 약화라는 성장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정경제부 제공대기업·IT 중심 성장의 그늘…중소기업 정체
정부는 양극화의 원인을 산업 구조에서도 찾았다. 1990년대 이후 개방화와 IT 중심 성장 과정에서 대기업과 정보통신(IT) 산업에 성장 동력이 집중된 반면, 비IT 산업과 중소기업은 중국의 기술 추격과 투자·인력 부족으로 성장 정체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임금 격차가 확대됐고, 노동시장 이중 구조 역시 고착화됐다. 정부는 이를 두고 "성장의 편중이 경제 전반의 역동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역 격차 역시 양극화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비수도권 산업 기반이 약화되자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기업 역시 인재 확보를 위해 수도권에 집중됐다. 이 흐름은 다시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자산 격차를 키우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이 심화될수록 주거·교통·보육 비용이 상승하고, 이는 출생률 하락과 인구 구조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성장이 지역 불균형을 낳고, 지역 불균형이 다시 성장을 제약하는 구조로 작용하는 꼴이다.
'K자형 성장' 고착 우려…양극화는 분배 아닌 성장의 한계
정부는 결국 현재의 'K자형 성장'을 양극화의 결과이자 우리 경제 성장의 결정적인 제약으로 평가했다. K자형 성장은 경기 회복이 상·하로 갈라져 한쪽은 빠르게 회복하고 다른 쪽은 정체·하락하는 양극화 구조를 뜻한다.
정부는 K자형 성장이 공급과 수요 양 측면에서 동시에 성장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는 소득·자산 격차 확대와 지역 간 불균형이 교육·훈련 기회 접근성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인적자본 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특히 수도권 집중과 주거비 상승은 청년층의 결혼·출산 선택에 영향을 미쳐 출생률 하락을 심화시키고,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 공급 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자산과 소득이 고소득층에 집중될수록 소비 여력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계층으로의 소득 집중이 내수 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저소득층의 소비 여력 약화는 소비 기반 축소로 이어져 경기 회복 속도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런 인식 아래 양극화 대응을 복지·분배 정책의 보완 과제가 아니라, 중장기 성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끌어올렸다. 단기 경기 반등만으로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구조적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고, 성장의 과실이 특정 계층과 지역에 집중되는 구조가 지속될 경우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전략에서 △국민균형정장 및 양극화 극복을 △거시경제 적극 관리 △잠재성장률 반등 △대도약 기반 강화 등과 묶어 4대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성장률 제고와 격차 완화를 동시에 추진하지 않으면 중장기 성장 경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구성이다.
정부는 올해를 잠재성장률 하락 흐름을 늦추고 성장 경로를 전환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재정 확대와 정책금융을 통한 경기 하방 방어와 함께, 국가전략산업 육성, 지역 주도 성장, 노동·금융 구조 개선 등을 병행해 성장 기반을 재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재경부 강기룡 차관보는 5일 사전 브리핑에서 "양극화는 소득 격차뿐 아니라 자산 격차가 악화하는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어, 정부도 굉장한 경각심을 가지고 종합 대책을 마련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