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을 접하고 있는 베링해가 얼어있다. 박중석 기자바다로 대륙을 잇는 신(新)실크로드 '북극항로'. 이동 거리 단축의 의미를 넘어 글로벌 무역 판도를 재편할 북극항로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이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우리나라 역시 북극항로 개척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며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북극항로 개척은 러시아와 미국, 북유럽 국가 등의 이해관계가 엮인 복잡하고도 민감한 구도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국내 북극항로 개척의 전진기지인 부산시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국가 간 외교보다 실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북극해 권역 도시들과의 유대를 통해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하고 나선 것이다. 그 현장을 따라가 봤다.
알래스카 놈(Nome), 골드러시 이후 100년 만에 찾아온 기회는 '북극항로'
베링해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도시 전체를 휘감는다. 꽁꽁 얼어붙은 앞바다는 그 끝자락이 수평선인지, 지평선인지조차 헛갈리게 한다.
오전 11시가 넘어서도 해가 뜨지 않아 사방이 어두컴컴한 도시의 모습은 이곳이 북극과 멀지 않음을 실감케 한다. (방문일 일출 시간은 오전 11시 36분이었다)
100여년 전 '세 명의 운 좋은 스웨덴인(Three Lucky Swedes)'이 금을 발견하면서 형성된 도시 알래스카 놈(Nome).
1900년대 초 해변 모래에서도 금이 나올 정도의 골드러시로 부흥하며 인구 2만명의 알래스카 최대 도시로 불린 적도 있지만, 추위와 단절의 벽 앞에서 지금은 3700여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소도시가 됐다.
놈시청. 시청 앞에 노르웨이의 전설적인 탐험가이자 북서항로를 개척한 아문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박중석 기자우리로 치면 소규모 면 단위 인구에 불과하지만, 없는 것 빼고 다 갖춘 엄연한 거점 도시다. 시청과 공항은 물론 박물관과 상공회의소, 병원 등이 도시 곳곳에 오밀조밀 몰려 있다.
케니 휴즈(Kenny Hughes)놈 시장은 "도시 인구의 절반 정도가 원주민이고, 나머지 절반은 백인 인구"라며 "도시에 다양한 기관들이 있어 주변 원주민 부족들을 연계하는 허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美 정부, 북극권 심해 항만 개발 프로젝트 추진…북극항로 기착지
놈 시가 갖춘 인프라의 핵심은 항만이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맹추위에 얼어붙은 바다와 북극 칼바람의 요란한 소리에 다소 황량해 보이기까지 한 항구에서 100년 전 골드러시 때와 같은 희망이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북극항로 시대를 앞두고 북극해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놈항을 전략적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내놨다. 투입되는 예산만 6억 달러(한화 8800여억원)에 달한다.
놈 심해 항만 개발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사업은 군함과 쇄빙선, 대형 크루즈선 등이 항구에 직접 접안할 수 있는 수심을 확보해 이곳을 북극항로의 기착지로 만들려는 목적이다.
올해 4월부터 공사에 나서 현재 6.7m인 수심을 12.2m까지 단계적으로 준설하고, 방파제와 부두 규모를 확장한다.
오는 2033년 3단계에 걸친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놈항은 부산항을 출발한 대형 컨테이너선이 북극해에 진입하기 전 연료를 채우고 선박을 정비할 수 있는 '주유소이자 서비스센터'로서의 역할로 변모할 전망이다.
조이 베이커 놈항만 국장이 박형준 시장에게 항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특히, 그때가 되면 현재 5월 말에서 11월 초까지만 이용이 가능한 놈항의 해빙 기간이 길어지고 쇄빙 기술이 발전해 사실상 1년 내내 항만이 가동될 수 있다.
조이 베이커(Joy Baker) 놈항만 국장은 "항만 확장을 통해 대형 선박들이 해안가에 닻을 내리는 대신 항구에 직접 접안할 수 있게 된다"며 "놈의 전략적 위치는 미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북극을 통과하는 상업용 선박들을 지원하는 데 매우 핵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가능성 뿐인 미지의 땅…부산시 대표단을 환대한 이유는?
놈시의 미래 가치는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아직은 가능성을 지닌 작은 도시에 불과하다. 그만큼 외부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다.
부산시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인구 327만을 보유한 대한민국 2대 도시 대표단의 방문에 놈시 관계자들은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올드 세이트 조 홀'에는 케니 휴즈 시장을 비롯한 시 주요 인사들이 자리를 잡고 박형준 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부산시 대표단을 맞이했다.
휴즈 시장 등은 마이크를 돌려가며 놈시의 현황과 가능성을 알리고, 부산시와의 우호 관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부산시 대표단과 놈시 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시 제공
휴즈 시장은 "놈시는 우리의 경제와 환경적 목표와 부합하는 책임감 있는 투자를 환영한다"며 "일부 인센티브는 주 정부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관리되지만 시 차원에서도 신속한 인허가 조정과 토지 이용 계획 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휴즈 시장 등은 공식 만남 자리 이후에도 대표단과 동행하며 놈시의 가능성을 설파했다. 자신들의 미래 가치를 알아봐 준 외부의 관심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된다. 지금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부산시의 전략은 도시외교 통한 외연 확장…"북극항로 기착지 선점"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서는 해양수산부로 대표되는 중앙정부와 부산시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다만, 정부와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권한에 차이가 있는 만큼 유기적인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알래스카 서부에 위치한 놈은 북극항로 기착지로 주목받고 있다. 구글맵 캡처주변국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엮어 있는 북극항로로의 첫발을 부산시는 도시외교를 통해 내디뎠다. 그리고 북극해 입구에 위치한 놈 시에서 도시외교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박형준 시장은 "북극항로를 어떻게 개척하느냐에 따라서 대한민국의 물류 영토가 완전히 달라지고, 그 가운데에서 부산이 글로벌 물류 초격차 도시로 앞서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놈을 비롯해 앞으로 주요 항만이 될 도시들과의 협력을 통해 북극항로의 거점을 선점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