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중앙지방법원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를 타고 서부지법을 빠져나가고 있다. 황진환 기자2025년 1월 19일 새벽 3시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 인근은 순식간에 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당시 법원 주변에는 약 1100명의 시위자가 모여 있었다.
후문 인근에 있던 흥분한 시위대는 곧 경찰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벽돌과 유리병 등이 날아다니고 여러 경찰관이 부상을 당했다. 법원보안관리대원이 긴급 투입돼 경찰과 함께 월담을 저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새벽 3시 8분쯤 시위대는 후문을 강제 개방해 경내에 진입했다.
새벽 3시 22분쯤에는 본관 1층 당직실이 침입당했다. 시위대는 당직실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들어와 당직실 내 폐쇄회로(CC)TV, 컴퓨터 등을 파손했다. 이어 새벽 3시 25분쯤 1층 로비도 뚫렸다. 법원 직원 총 24명이 옥상 등으로 긴급 대피했다. 일부는 윤 전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했던 영장전담판사 사무실에까지 침입하기도 했다.
경찰은 새벽 3시 32분쯤 건물 내부의 폭동 가담자들에 대한 체포 작전에 나섰다. 당시 경내 시위대 약 50명은 집행관 사무실 쪽 통로에서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빼앗아 대치했다. 건물 내부와 경내 시위대가 완전히 진압된 건 새벽 5시 30분쯤. 경찰은 새벽 6시 10분에서야 '서부지법 인근 질서 완전 회복'을 선언했다.
다수의 군중이 집단으로 사법기관을 공격한 초유의 사건. 폭동에 가담한 이들은 무거운 형사 책임을 지게 됐고, 전례 없는 사태에 우리 사회는 한동안 충격에 빠졌다. 그 후로 1년이 지났지만,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책임과 배후를 둘러싼 해석은 여전히 갈라져 있다.
'폭동 배후' 의혹 수사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 난동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씨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경찰은 폭동 사태 배후로 사랑제일교회 목사 전광훈씨를 지목했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전씨와 보수 유튜브 '신의한수' 운영자 신혜식씨 등 9명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해 왔다. 이중 전씨는 현재 구속 상태로 수사받고 있다.
경찰은 전씨가 일부 신도들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이른바 '국민저항권' 논리를 주입하고, 다수의 시위대를 동원해 불법 집회를 강행하면서 폭동 사태가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전씨가 그의 최측근에서 행동대원으로 이어지는 조직적 지시·명령 체계를 운영하며 폭동을 교사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신혜식씨, 사랑제일교회 이영한 담임목사, 전씨의 수행비서 남모씨와 보수 성향 유튜버 등을 전씨의 최측근으로 분류했다. 전씨의 지시가 이들 최측근을 거쳐 신남성연대 대표 배모씨 등 행동대원들에게 전달됐다는 구조다. 이들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받고 있다.
폭동 배후 수사는 지난해 8월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본격화했다. 경찰은 지난해 8월 5일 전씨와 신씨 등 관련자의 주거지와 사랑제일교회 등을 압수수색했고, 9월에는 전씨의 딸 전한나씨와 사랑제일교회 이영한 담임목사 사무실 등에 대해서도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피의자 전원에 대해서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졌다.
경찰은 당시 전씨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전씨가 폭동 하루 전인 1월 18일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으로 이동하도록 선동했다고 판단했다. 영장에는 전씨가 "서울서부지방법원 주소를 한 번 띄워달라. 빨리 이동해야 되니까. 오늘 내로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을 찾아와야 한다"고 발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실제로 폭동에 가담해 실형을 선고받은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이모씨와 윤모씨 등 일부 인물들도 전씨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영장에는 "전씨가 종교적 신앙심을 이용한 가스라이팅과 그 지시에 따른 대가로 금전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심리적 지배하에 뒀다"고 적시됐다.
경찰은 두 차례 구속영장 신청 끝에 전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지난달 12일 전씨와 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반려됐고, 보완수사를 거친 후 재신청한 영장 가운데 전씨에 대해서만 청구가 이뤄졌다. 서부지법은 지난 13일 특수건조물침입 교사 등 혐의를 받는 전씨에 대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전씨 측의 구속적부심 청구도 기각됐다.
6개월 만에 딱 1명 구속…'폭동 배후' 입증되나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지난해 1월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황진환 기자반면 폭동의 배후로 지목된 주요 피의자들은 경찰의 무리한 표적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폭동을 교사한 구체적인 증거를 경찰이 제시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일부 언행을 문제 삼아 폭동의 배후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전씨나 신혜식씨는 정작 폭동의 배후는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신혜식씨는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교사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서부지법 인근에서 집회를 주최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폭력 행위를 부추기거나 폭동을 교사한 사실은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과격한 언사가 있을지언정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적도, 내린 적도 없었다고 한다.
신씨는 또 최근 내란 특검(조은석 특별검사)에서 성삼영 전 대통령실 행정관에 무혐의 처분을 결정한 판단에 주목하고 있다. 내란 특검은 성 전 행정관에 대한 불기소 이유서에서 "성 전 행정관이 체포영장 집행 등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지지자를 동원해 사실상의 유형력을 행사해달라는 취지였다고 볼 수 있으나, 신씨가 이에 응해 지지자를 동원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성 전 행정관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교사 등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지지자 동원을 요청한 사실만으로 내란, 즉 폭동에 이를 정도의 폭력적인 행위를 선동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신씨 측은 이같은 특검 판단처럼 자신들 역시 서부지법 인근에서 집회를 주최했을 뿐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 행위나 폭동 등을 지시하거나 교사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전씨 역시 경찰 수사 초기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찰이 주장하는 '조직적 지시·명령 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명확한 지시나 실행 행위에 대한 구체적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해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윤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신씨 측은 폭동의 배후로 유튜브 '그라운드C' 운영자 김모씨나 전 디씨인사이드 국민의힘 비대위 마이너 갤러리 운영자 권모씨, 유튜브 '목격자K' 운영자 권모씨 등을 지목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당시 라이브 방송에서 "(여러분들이) 분노하셔야 한다",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면 다시 모여라", "폭력성이 없으니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다" 등의 취지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들 역시 특수공무집행방해 교사 등 혐의로 고발당해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실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1월 15일)한 다음 날(1월 16일) 오전부터 서부지법 근처로 개별 시위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미신고 집회가 이어지면서 서부지법 폭동 사태까지 일어났다는 게 '서울서부지법 1·19 폭동 사건 백서'(서부지법 폭동 백서)에 명시된 내용이다. 신씨는 "2박3일 간 이어진 철야 시위 과정에서 집회 열기가 점차 고조됐다"며 "당시 과격한 언행으로 폭력 시위 분위기를 조장하고 선동했던 자들이 청년과 지지자들을 불법행위로 이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 소속 석동현, 배의철 변호사와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등도 폭동을 부추겼다는 혐의로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고발당했다. 윤 의원은 폭동 전날인 1월 18일 밤 서부지법 앞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젊은이들이 담장을 넘다가 유치장에 있다고 해서 관계자와 얘기했고 곧 훈방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배 변호사 역시 서부지법 앞에서 이어진 집회 현장에 등장해 "법원 근처에서 집회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이런 불법을 통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폭동에 앞서 불법행위를 사전 모의한 혐의로 고발당했던 커뮤니티 이용자와 운영진들은 경찰 수사를 피해 갔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해 5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디시인사이드 운영진 4명과 이용자들의 내란 선동·방조 등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들이 모인 단체 'MZ결사대'도 폭동의 한 축으로 거론됐다. 경찰은 이들이 카카오톡 단체 오픈채팅방에서 폭동 사태를 사전에 모의했다고 의심하고 수사를 벌여왔다. MZ결사대 단장 이모씨는 법원 밖에서 페트병을 던져 유리창을 파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외 당시 주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포착된 이른바 '녹색 점퍼남' 전모씨도 MZ결사대 소속 인물로 알려졌으며,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부지법, '강성 시위자 선동·군중심리'가 폭동 원인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격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현판, 건물 벽면, 유리창 등을 파손한 흔적이 남아 있다. 황진환 기자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서부지법은 지난달 발간한 서부지법 폭동 백서에서 사건 발생 원인을 자체 분석했다. 법원은 먼저 "사법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사건 발생에 대한 예측 자체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어 "야간에 다수가 벽돌·유리병 등 위험한 물건을 투척하고, 법원 건물을 파손한 후 내부까지 난입한 전례는 없었기 때문에 사전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서부지법은 폭동의 주요 원인으로 '강성 시위자의 선동 행위'와 '야간 시간대 군중 심리'를 꼽았다. 법원은 일부 강성 시위자들이 폭동 발생 과정 전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봤다.
백서에서 "강성 시위자들은 법원 앞 시위대와 유사하게 시위를 주도하는 행태를 보이다가 영장 발부 사실이 알려진 이후 벽돌·유리병 등 위험한 물건을 경찰에게 투척하고, 법원 외벽·창문을 파손하며 청사 내부로 난입하는 등 폭력 시위를 선동하며 예측 범위를 넘어선 행태를 보였다"고 적었다. 또, "일부 선동자는 법원 청사 난입과 건물 파손 등 폭력적 행동이 정당한 것처럼 인식되게 할 수 있는 과격한 발언 및 선동 행위를 하기도 했다"고도 했다.
군중 심리의 특수성도 지적됐다. 법원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야간 시간대에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발표됐고, 약간의 선동으로도 사람들이 쉽게 집단적 폭력행위에 휩쓸리게 됐다고 봤다.
그러면서 "야간 및 새벽 시간대의 어두운 환경은 익명성이 강화되고, 심리적으로 개인의 책임감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강력범죄나 폭력, 상해, 재물손괴 등 불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야간에는 피로감과 낮은 인지능력으로 인해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통제력이 저하돼 소수의 과격 행동이 발생할 경우 다수가 군중 심리에 휩쓸려 과격 시위에 동조해 가담할 개연성이 높다"고도 분석했다.
경찰은 전씨를 겨냥한 폭동 배후 수사를 조만간 마무리할 전망이다. 다만 주요 당사자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또 다른 인물들을 주동자로 지목한 추가 고발도 경찰에 접수돼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폭동의 배후는 과연 있었나. 그 진실 규명은 여전히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