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여당이 14년간 금지해온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규제가 온라인 플랫폼 업체인 쿠팡의 시장 독점을 강화해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로 돌아간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문제는 당초 대형마트 규제를 통해 보호하려 했던 소상공인들이다. 새벽배송 빗장을 풀 경우 이들에게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촘촘한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정, 대형마트 새벽배송 전격 허용 추진…'쿠팡 견제' 포석
17일 정부 등에 따르면, 청와대·정부·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고위 협의회를 열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추진을 공식화했다. 2012년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제가 도입된 이후 14년 만의 정책 전환이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현재 유통법상 영업 규제는 오프라인 비중이 높던 시기에 도입돼 오프라인 유통 기업에만 적용되고 있다"며 "온·오프라인 규제 불균형을 해소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할 수 없고, 매달 이틀은 의무 휴업해야 한다. 오전 시간 영업 제한으로 매장을 통한 새벽배송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초 정부는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상생을 위해 이 같은 규제를 도입했지만,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온라인 플랫폼 업체가 빈틈을 파고들며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독과점 구조가 강화된 것이다.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논란을 빚은 쿠팡은 활발하게 새벽배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형마트는 이를 할 수 없어 '역차별'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26개 유통업체 가운데 대형마트 비중은 9.8%로 떨어지며 사상 처음 10%를 밑돌았다. 반면 온라인 부문 비중은 5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온라인 매출은 연평균 10.1% 증가한 반면, 대형마트 매출은 연평균 4.2% 감소했다. 쿠팡의 지난해 매출은 41조3천억원으로, 대형마트 전체 판매액 37조1천억원을 넘어섰다.
입법 취지였던 전통시장 보호 효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규제 도입 직후인 2013년 1502개였던 전통시장은 2023년 1393개로 줄었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11.5%에 그쳤다. 규제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유통 생태계의 불균형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정부·여당은 의무휴업일 같은 핵심 규제는 유지하되, 새벽배송 제한은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형마트 앱 등을 통한 온라인 주문에 대해서는 플랫폼 업체와 동일하게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규제가 완화되면 대형마트는 전국 300여 개 점포를 도심형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별도의 대규모 물류센터를 짓지 않고도 인근 지역에 신속 배송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규제가 풀리면 배송 거리가 줄어 소비자 편익이 커질 것"이라며 "단가 경쟁력이 확보되면 향후 도서·산간 지역 물류 효율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사반대하는 소상공인…"대기업과의 경쟁은 무차별 학살"
류영주 기자문제는 당초 대형마트 규제의 목적이었던 골목상권 보호다.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에 본격 진출할 경우 신선식품과 근거리 영업에 의존해 온 재래시장과 소규모 마트의 매출 감소는 피할 수 없다.
소상공인연합회·전국상인연합회·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공동성명을 내고 "온라인 플랫폼 확장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대형마트에 새벽배송 날개까지 달아주는 것은 골목상권의 숨통을 끊는 처사"라며 "자본력과 물류망을 갖춘 대기업과의 경쟁은 소상공인에게 경쟁이 아닌 무차별 학살일 뿐"이라고 반발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인태연 이사장도 취재진에 "새벽배송 허용이 가뜩이나 온라인 플랫폼 확장으로 어려움이 큰 소상공인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특히 소상공인·자영업자 문제는 경제적 효율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법 개정 시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소상공인 측은 아울러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장기적으로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대기업 독과점 시장을 형성해 소비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노동계 역시 우려를 표한다. 새벽배송 경쟁이 유통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심야 노동 증가와 건강권 침해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는 "심야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기업들의 책임 회피가 통용되고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은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생협력기금 확대 검토…"창의적 협력 필요"
정부·여당은 보호 대책으로 대형마트 이익 일부를 상생협력기금에 추가 출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대중소기업 상생 성장 전략을 발표하며 유통 업계의 상생협력기금 확대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해 기준 연평균 2663억원 규모였던 기금 규모를 올해부터 3천억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을 통해 얻는 추가 영업이익의 0.5~1%를 기금으로 추가 출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전통시장의 부족한 인프라를 보완하고, 소상공인이 대형마트 유통망을 활용하는 등의 협업 방안도 논의 중이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김동아 의원은 최근 라디오에서 "상생협력기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되지 않을까 싶다"며 "대형마트와 주변 전통시장이 양해각서를 통해 유통망을 함께 이용하는 등 창의적인 협력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는 단계라는 입장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상생협력기금 확대 방안과 관련해 "대·중소 유통업계의 상생협력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상생협력기금 출연·조성 등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