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천안시민사회단체협의회와 충남환경운동연합이 기자회견을 열고 호남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천안지역에 345㎸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모습. 인상준 기자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앞세운 행정통합 논의가 한창인 충남과 대전에서는 여전히 '수도권 집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송전선로 문제가 진행 중이다. 행정통합의 명분인 국가균형발전의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이 같은 문제들을 곱씹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전력공사의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에는 충남과 대전, 세종 등을 지나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포함돼있다.
수도권, 특히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들어갈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호남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는 충남의 송전선로를 지나 수도권에 공급된다. 충남 15개 시군 가운데 13개 시군이 경유 구간에 포함됐다.
충남지역은 대규모 반도체 단지가 들어설 용인 등 수도권 남부 지역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맞춤형 노선'으로 쓰이는 모양새다.
충남은 이미 1395㎞에 달하는 송전선로와 수천 개의 송전탑으로도 고통받고 있다. 석탄화력발전 등을 통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했지만 대부분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충남의 경우 수도권 등으로의 전력 공급을 위해 전국의 10%에 해당하는 고압 송전탑 4164개가 집중돼있고 765㎸ 초고압 송전선로는 21.1%가 설치된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이 같이 전력 생산과 운반은 지방에서, 전력 소비는 수도권에서 이뤄지는 방식은 에너지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지난해 12월 지역 환경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송전선로 사업과 관련한 대전시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세영 기자
이런 상황에서 행정통합 논의가 국가균형발전을 앞세워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지역 구성원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송전선로를 비롯한 '오랜 불균형'을 깨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그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충남 3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행정통합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행정통합의 다른 면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선로의 입지 선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도 미래도 수도권을 떠받치기 위한 역할을 강요받는 와중에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의 유희종 본부장은 "행정통합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선전하는 건 노동자와 주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예를 들어 용인에 집중되고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을 충청권이나 호남, 영남으로 이전한다면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이것이 행정통합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지방 살리기의 핵심은 지역의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실질적 투자에 있다"며, "왜 지금은 더 많은 예산을 줄 수 없는 건지, 왜 더 많은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지 않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단체들은 물었다.
김태흠 충남지사도 최근 기자들을 만나 이 문제를 언급했다. 김태흠 지사는 "오히려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 쪽으로 산업을 진흥시키고 분산을 시켜야지 왜 전력을 중앙으로 공급하는 부분을 자제하지 않는지 의문"이라며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전력 수요 분산 대책과 전력 생산 지역에 기업이 입주해 전기를 쓰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정책, 전력 자급률에 기초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시행 등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