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재명 정부 들어 기후·에너지·환경 분야 주요 정책을 시민 의견 수렴을 거쳐 정하겠다는 취지의 '사회적 공론화' 시도가 활발하다. 그러나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실제 추진한 두 차례 공론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요식 절차'에 불과했다는 낙제점을 줬다. 숙의가 이뤄지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고, 정보 공개도 불투명해 공론화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 기후특위가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는 탄소중립법 개정에 앞서 준비 중인 공론화에 대해서도 기대는 낮고 우려는 크다. 정부·여당은 숙의형 기후 거버넌스를 확립해 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기존의 유명무실한 위원회·공론 절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형식과 요건을 제대로 갖춰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두 차례 공론화 낙제점…NDC '깜깜이'·신규원전 '답정너' 논란
기후부는 지난해 유엔에 제출할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을 위해 9월 19일부터 11월 6일까지 7차례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후 마련한 정부안은 고위 당정 협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심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1월 11일 확정됐다.
첫 토론회에서 기후부는 감축 목표안으로 △48%(산업계 요구) △53%(선형 감축) △61%(국제사회 권고) △65%(시민사회 요구) 등 4가지 안을 제시했다. 시민사회는 "어떻게 최저치가 48%로 도출됐는지" 의문을 품은 채 논의를 시작했고, 산업계 역시 시민사회 목표치를 당일 처음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견만 대립하던 끝에 정부안은 하한 50~53%, 상한 60%로 마지막 토론회 당일 '통보'됐고, 주말 고위당정을 거쳐 53~61%로 '돌연' 수정돼 최종 확정됐다. 산업연구원 정은미 선임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의사결정 과정은 철저히 대외비로 처리됐고, 의견을 주고받을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며 "공론화가 아닌 요식 절차였다"고 평가했다.
애초 4개의 안을 도출하는 과정부터 공론화의 시작이어야 하지만, 절차는 생략된 채 '깜깜이'로 진행됐다는 지적이다. 정 연구위원은 "참여자들은 개인이 아니라 이해집단의 대표인데도 외부와 소통하지 못한 채 각자 판단해야 했다"며 "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모두 비공개인 상태에서 2~3주 공론화를 진행하니 결국 말싸움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산업계와 시민사회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53%와 61%라는 두 개의 수치를 범위 형태로 제시하는 방식의 목표가 수립됐다. 그는 "기술·투자·실현 가능성이라는 산업계의 논리와 선형 감축이라는 시민사회의 당위성이 충분한 정보와 토론을 통해 교차 검증됐어야 했다"며 "애초 2~3주 논의로는 불가능한 사안이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 결정 과정 역시 "공론화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평화갈등연구소 정주진 소장(평화학 박사)은 "생중계가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패널 10여 명이 토론하는 방식이었고, 대다수 국민은 사후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며 "이를 공론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규 원전 토론회는 참석자를 100명으로 제한한 채 진행됐다. 취재진 역시 사전 신청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도록 신분 확인을 거쳤고, 탈핵 활동가 6명이 진행하려던 침묵시위도 제지를 받았다. 최종 판단의 근거는 찬성 69.6%(한국갤럽), 61.9%(리얼미터)라는 여론조사 결과였다.
정 소장은 "공론화는 참여단을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해 대표성 있게 구성하고,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를 거쳐야 한다"며 "그런 절차 없이 단순 여론조사 수치를 근거로 삼으면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아주 비판적으로 보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디자인한 뒤 참여자들 내지는 국민을 이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대표 100명 이상·6개월 이상 숙의…투명성 확보해야"
신고리1·2호기 전경. 한수원 제공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한동안 공론화의 '모델'로 인식됐다. 2017년 7월 17일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9월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정해 한 달간 숙의를 거쳐 10월 20일 '건설 재개' 의견을 도출했다. 3개월간의 서툰 공론화였지만 대선 공약 철회로 이어지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흡했지만 의미 있었던 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김찬국 교수는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운영한 공론화위원회는 미흡하긴 했지만 논의나 절차, 과정을 시범적으로라도 해보려는 시도였다"며 "반면 최근 시도들은 이전의 공론화 절차보다 훨씬 간소했다. 서둘러 짧게 의견 수렴만 하고 절차를 갖추지 못한 채 공론화를 거쳤다고 하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문제는 이후의 공론화가 신고리 5·6호기 당시의 '시도'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 소장은 "당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성공적이었다고 정부가 자화자찬하면서 일종의 기준점이 됐고, 이후 여러 공공기관에서 3개월짜리 공론화를 반복해왔다"며 "실무적으로 3개월은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 회의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고리 5·6호기가 일종의 기준이 돼버렸는데, 이제는 그걸 뛰어넘는 공론화 모델이 나와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 시민 참여단을 구성한다면 최소 100명 이상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숙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과정을 모두 공개해 일반 시민이 흐름을 따라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기후·에너지·환경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장기적 과제인 만큼, 장기 정책은 시민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기후 논의와 담론을 이어가기 위해 이제라도 산업계와 시민사회 양 극단이 한데 모여 이상과 현실 간 괴리를 좁히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이준이 교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과학자문위원회와 시민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고, 숙의 기간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급하게 공론화를 진행하기보다는 기존의 유명무실했던 여러 국가위원회와 공론화 시도를 반복하지 않도록, 시민 참여형 기후 거버넌스를 신중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기본·신규댐·전기료 줄줄이 공론화 예고…기후 거버넌스 성숙해질까
올해는 기후·에너지·환경 분야에서 더 많은 공론화가 예정돼 있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는 2031~2049년 감축 목표를 누락해 2024년 8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녹색성장·탄소중립 기본법' 개정에 앞서 지난 3일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절차에 돌입했다. 2035 NDC가 확정된 만큼, 2036~2049년 감축 경로가 핵심 쟁점이다.
공론화위는 의제숙의단을 최대 40명(전문가 자문단 20명, 이해관계자 대표 18명, 미래세대 옴부즈맨 2명)으로 구성해 안을 좁히고, 시민대표단 최대 340명(만 15세 이상 10대부터 70대 이상까지 연령대별 인구비례 할당 300명, 중학생 20명, 초등학생 20명)을 선정해 숙의 절차 및 KBS 생중계 본토의를 거쳐 4월 15일까지 결론을 도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이 요구해온 형식적 요건은 갖춘 듯 보이지만, 설 연휴를 제외하면 실제 숙의 기간은 한 달 반에 불과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정보 공유 역시 추후 홈페이지를 개설해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진행된 두 차례 회의는 모두 비공개였다. 회의가 열릴 때마다 시민사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아울러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 지역별 차등요금제, 신규댐 7곳 추진 여부도 공론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12차 전기본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의 적정 비중, 전력망 운영 방안을 함께 결정해야 하는 계획으로, 이 과정에서 신규 원전 추가 여부도 다시 쟁점이 될 수 있다. 지역별 요금제 역시 전력 생산지 인근 지역의 전기요금을 낮추고 송·배전 비용이 추가로 드는 수도권 요금을 높이는 구조라 지역 갈등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 시절 기후 대응 명목으로 추진된 신규댐 14곳 후보지 가운데, 찬반이 첨예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7곳의 처리 방향 역시 민감한 사안이다.
김 장관은 앞선 두 차례 공론화에 대해 "국민 참여 규모를 따져보면 부족한 점이 있지만, 과거 NDC 결정 과정과 비교하면 상당히 공개적으로 토론했다"며 "원전 결정도 전면 신규 정책이었다면 더 긴 토론이 필요했겠지만, 11차 전기본에서 이미 확정된 계획을 정부가 바뀌었다고 크게 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2차 전기본은 여러 쟁점을 더 전면적으로 꺼내놓고 토론하겠다"며 "이재명 정부는 국무회의도 공개하는 만큼, 가능한 한 최대한 쟁점을 국민 앞에 드러내고, 묻고, 더 많은 지혜가 모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부족하더라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옛 탄녹위)는 '기후시민회의' 창설을 준비 중이다. 지역·연령·성별 등을 고려해 무작위로 선정한 시민 200명이 의제 학습과 숙의 토론을 거쳐 정책 권고안을 도출하면, 이를 정부가 국가 기후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의 국가 단위 상설 '기후 공론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