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충남대전, 전남·광주, 대구경북 지역의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과 관련한 논의가 한창이다. 연합뉴스정부와 여당이 지방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로써 신설될 통합특별시장에게 권한이 대거 집중되지만, 이를 견제·감시할 장치는 보강되지 않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선거 앞두고 '입법 속도전'…20조 원 쥔 '소통령' 탄생하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12일 전체회의를 열어 충남·대전, 전남·광주, 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을 위한 3개 특별법을 의결했다. 특별법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며, 여권은 오는 26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삼고 있다.
특별법 내용에 반기를 들었던 충남·대전을 중심으로 곧장 격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의결 다음 날 이장우 대전시장은 "법 외 주민투표와 시의회 재의결을 추진하겠다"며 '특별법 저지 투쟁'을 선언했다. 이 시장과 같은 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 반대 여론을 이유로 행안위 표결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법 통과를 늦출 생각이 없다. 행안위 의결 직전 김민석 국무총리는 신정훈 행안위원장을 찾아 "지역별 편차가 있으면 국가 전체적으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3개 특별법의 일괄 통과를 강조했다. 또 "7월 1일 통합 지방정부가 출범하려면 2월 말까지는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정부는 행정통합을 서둘러 국정과제인 '5극 3특' 체제를 달성해야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가시적인 성과를 확보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 속에서 '속도전'을 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행안위 문턱을 넘은 특별법에는 신설될 통합특별시에 중앙정부의 각종 지원과 교육자치 특례 등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정부는 지난달 통합특별시에 각각 4년간 최대 20조 원의 재정을 지원하고,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권한과 위상, 조직 확대를 약속한 바 있다.
서울시장은 지자체장 중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장관급 고위직이다. 50조 원이 넘는 예산과 1천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를 통솔하는 만큼, 어지간한 부처 장관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에서 '소통령'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이처럼 막강한 재정·인사 권한을 가진 통합시장이 3명 더 생기는 셈이다. 이 때문에 행정통합이 통합시장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특혜 쟁탈전'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방분권 아닌 특혜 종합세트"…법안 조문 84%가 '선심성'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최근 특별법안 3건의 조문 1035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전체 조문의 83.96%인 869개가 선심성 지역 민원과 재정 특혜, 무분별한 권한 이양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전남·광주가 85.75%로 가장 높았고, 대구·경북 85.67%, 충남·대전 79.94% 순이었다. 이러한 특혜 조항을 통합시장이 폭넓게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또 전체 조문의 27.6%(286개)가 재정 특혜와 관련된 내용으로, 나랏돈 낭비 우려도 제기됐다. 수조 원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거나, 국립시설 유치를 공모 없이 확정해 달라는 내용 등 타 지자체와의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는 지적이다.
특별법안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고유 권한인 환경영향평가 협의권과 국토교통부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권을 통합시장에게 넘기는 내용도 담겼다. 개발 주체가 심사 권한까지 행사하는 '셀프 인허가' 구조가 될 수 있어 난개발 우려도 나온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특별시 산하 기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할 수 없도록 한 '독소 조항'도 포함됐다. 경실련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감사를 제한하는 것은 부패와 비리를 은폐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경실련 서휘원 정치입법팀장은 "특별법은 특정 지역에만 예외적으로 지방세를 이양하는 특례 방식"이라며 "진정한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조례 입법권을 강화하고 지방세 비율을 높이는 등 기본법 차원의 제도 개편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행정통합이 오히려 통합 지역 내부의 농어촌을 더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는 성명을 통해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인구가 밀집한 도시로 쏠리는 반면, 도시의 혐오시설은 아무런 저항 없이 농어촌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당 독점' 구조 그대로…견제 장치는 '구멍'
더 큰 문제는 이처럼 비대해진 통합시장의 권한을 견제·감시할 제도적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에 비해 영세한 지역 언론,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어 응집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민사회 등 지역 특성을 감안하면 서울보다 더 강력한 견제 장치가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특히 지방 특유의 '일당 독점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제8회 지방선거 당시 영남과 호남의 광역의회 1당 의석 점유율은 각각 90% 내외였다. 이러한 구조가 유지된 채 행정통합이 이뤄질 경우 통합시장의 권력은 사실상 통제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광역의회 비례대표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기초의회까지 포함한 선거제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 팀장은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구조에서는 단체장과 지방의회 구성이 동일해진다"며 "지방선거 제도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행정통합이 가시권에 들어선 만큼, 최소한 특별법에 안전장치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가 지역 고위공직자를 감시하는 특별감사관제 도입, 지방의회의 전문성과 조사권 강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민변 광주전남지부 박인동 연대사업단장은 "통합특별시가 되면 인구와 면적이 크게 늘어나 주민발안·주민소환·감사청구 요건도 높아질 수밖에 없어 주민들의 직접 참여에 대한 문턱도 높아질 것"이라며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게 비율 기준을 더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