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들어진 논리가 한국으로 넘어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취득한 역사학자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독도종합연구소 명예소장)은 최근 한국에서 이어지는 일본군 성노예제(일본군 위안부) 부정 집회를 이렇게 바라봤다. 지난 11일 서울 목동에 있는 CBS사옥에서 만난 그는 "위안부를 부정하는 논리는 일본에서 형성된 뒤 국내로 유입돼 되풀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11일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명예소장이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박수연 기자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유학 시절 만난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정착했고, 2003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일본 출신 학자지만 일제강점기와 위안부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다.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실태를 다룬 '일본의 위안부 문제 증거자료집'을 펴내기도 했다.
호사카 교수는 최근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며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한 보수단체 대표 사건과 관련해 서울 서초경찰서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해당 단체의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경찰이 그를 불러 조사한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다 보면 위안부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한국 집회에 왜 일본어가?"
호사카 교수는 일본 극우 세력이 오랫동안 동일한 논리를 생산·확산해 왔고, 한국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쪽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성노예가 아니라 '성노동자였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미 사과도 했고 보상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논리가 그대로 한국으로 넘어와서,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그것을 주장하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위안부 등 역사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위험 신호로 봤다.
"일본에선 고노 담화를 완벽하게 무효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논리를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 재선출된 다카이치 총리는 그동안 고노 담화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왔습니다.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이기 때문에 영향이 너무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그는 이러한 정치적 흐름 속에서 한국에서 위안부를 부정하는 집회가 늘어나는 것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부 단체는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위안부는 사기' '위안부는 매춘 여성'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호사카 교수는 한국에서 열리는 일부 위안부 부정 집회에서 일본어 구호와 피켓이 등장하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모습이 일본 극우 세력과의 연결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당히 이상하죠. 한국에서 (집회를) 하는데 왜 일본 말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일본 사람들도 집회 활동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특히 일본 쪽에 그 사람들(부정 집회)의 활동을 알리는 단체 '나데시코 액션'이 있습니다."
일본 극우 시민단체 '나데시코 액션' 사이트 하단에 개시된 후원 유도 문구. 나데시코 액션 홈페이지 갈무리'나데시코 액션'은 위안부 강제동원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 단체다. 호사카 교수는 해당 단체 사이트에 위안부 부정 집회를 이끄는 인물을 지원하기 위한 일본 계좌번호가 공개돼 있다고 전했다. 일본 우체국 계열 은행 계좌로, 일본에서 송금이 가능한 구조이며 후원금이 해당 인물에게 전달된다는 안내 문구도 함께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방식이 일본 측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보다 한국 사람들이 '이건 잘못된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그렇게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피해자 사라져도 역사는 사라지지 않아"
호사카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피해 생존자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독일의 나치 범죄 대응을 사례로 들며, 피해자 사망 이후에도 기억과 책임을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은 피해자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도 그 역사를 계속 교육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도 부정 발언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명예소장이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박수연 기자호사카 교수는 또 역사 문제 대응에서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연구와 정책이 긴밀하게 연결돼 비교적 일관된 대응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은 정권 교체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은 연구자들이 만든 논리와 정책이 거의 하나처럼 움직입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기본적인 입장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연구자와 정책 결정자가 분리돼 있고, 정권이 바뀌면 이전의 논의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문제에 대한 접근이 달라지면 일관된 대응이 어렵습니다. 연구와 정책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야 합니다."
이어 최근 국내에서 제기되는 뉴라이트 계열 역사관 논쟁과 관련해, 이를 검증하고 대응할 연구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 등 기존 연구 성과와 다른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객관적인 자료와 학문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 문제는 정치적 주장만으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인 자료와 연구가 축적돼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기 위한 핵심은 결국 교육과 법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으로 남겨야 되는 것은 교육 그리고 법입니다."